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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r 04. 2019

피아노

어릴 때 경기도 안양에 살았다. 내가 살던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언제 어떻게 그것을 집에 들였는지 모르지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 최초의 시기부터 말이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아마도 2학년이었거나 3학년 즈음이었다. 피아노 학원은 동네 뒷산 길을 지나 약간 언덕 같은 아파트 근처 상가에 있었다. 합판 같은 표면의 까슬까슬한 나무판자 벽으로 만든 여러 개의 방에 피아노가 한 대씩 놓여 있고 방들이 둘러싼 중앙에는 거실 같은 장소가 있었다. 나무판자 같은 벽은 쓱 문지르면 손에 가시 한 두 개쯤 박힐 것 같았고 방음이 잘 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바이엘, 체르니, 하농을 배우고 쳤다. 여름날 그늘진 합판 사이에 앉아 하농의 단조로운 곡조를 반복할 때면 밖에서 들리는 매미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어느 날 피아노 학원에서 발표회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목적으로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런 의문이 없었다. 하니까 하는 거다. 나는 쇼팽의 이별의 노래를 연주하기로 하고 그 곡만 연습했다. 내가 골랐는지 누가 정해줬는지 지금은 잘 생각나진 않는다. 그럭저럭 악보 없이도 연주할 정도로 연습이 되었다 할 때쯤 발표회 날이 되었다.

발표회는 안양문예회관에서 열렸다. 나는 하얀색 반팔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했다. 이별의 노래 첫 곡조는 무난히 연주했던 기억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그 부분은 외우고 있으니 아마 그때는 더 잘 연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부분부터 연주할 곡조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주를 멈추거나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연주했다. 다만 원래 연주하기로 했던 쇼팽의 노래는 아니었거나 약간씩 다른 곡조였을 것이다. 이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그 기억은 지워진 것처럼 잘 생각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잊으려는 방어기제인지.


그 뒤로는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몇 년 뒤 서울로 이사 오면서 피아노를 팔았든지 이사하고서 팔았든지 어쨌든 피아노는 누군가에게로 옮겨갔다. 넓지 않은 집이 조금은 넓어졌다고 좋아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피아노를 전혀 연주하지 못한다. 이별의 노래 첫 소절을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것 빼고는. 가끔 어떻게 내가 피아노를 그리 치고 연주회까지 했는지 의아하면서도 막연한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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