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Jul 23. 2019

30원

1.

집 근처 세탁소에 정장 여러 벌을 맡겼다. 언젠가 돌아올 물건이지만 쌓여 있던 뭔가를 훌훌 털어버린 기분은 꽤 괜찮았다.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향하는데 문자메시지가 하나 왔다. 파손 알림. 알고 보니 내가 맡긴 옷 하나에 심각한 파손이 있으니 확인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자신들 책임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 금 심각한 발걸음으로 다시 세탁소로 향했다.


2.

세탁소 아주머니는 파손된 바지 빼야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잠깐 생각해 보니 바지가 망가졌으니 재킷만 있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상의도 빼 주시라 말씀드렸다. 다시 계산된 비용을 신용카드로 결제해 주시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옛날 사람들은 그냥 현금으로 차액을 환불해 주는 게 편하다며 몇천 몇백 몇십 원을 거슬러 주셨다. 요즘 사람인 내가 생각하기로는 신용카드 실적도 올리고 세탁소 실적도 쌓이니 이득처럼 느껴졌다.


3.

집에 돌아와 거스름돈을 책상 위에 던져놓았다. 망가진 바지는 꼴을 보니 고쳐 입을 정도도 아니어서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었다. 진이 빠져 한참 누워있다가 책상에 앉았다. 컴퓨터가 켜지는 시간을 기다리는데 동전과 함께 던져놓은 세탁소 영수증이 눈에 들어왔다. 상의 하나와 바지 하나 가격을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받은 돈을 확인하니 30원 더 들어와 있었다. 옷 찾으러 갈 때 돌려줘야지, 하고서는 잊어버리지 않게 핸드폰 메모장에도 적어두었다. "30원."


4.

옷을 찾으러 가는 날에는 출근하며 차를 타고 간다. 옷이 여러 벌이니 들고 걸어오는 것보다는 퇴근할 때 차에 싣고 오는 게 편하니까. 출근하면서 30원을 기억하고 책상 위에 있던 동전을 집어 주머니에 넣어뒀다. 퇴근 후 옷을 찾으며 말했다. 그런데 저번에 현금으로 거슬러 주시면서 30원을 더 주셨더라고요. 아주머니에게 작고 가벼운 10원짜리 3개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시며 아이고야,라고 했다. 고작 30원을 두고 이렇게 1주일이나 생각냐는 반응이다.


5.

사실 30원이야 없어도 별 일 없고 있어도 별 일 없을 그 정도의 무게다. 10원짜리가 그렇게 가벼웠던 것처럼. 30,000원이라면 어떨까? 30원과 30,000원은 1천 배나 차이가 지만, 찝찝한 소유로 짊어질 마음의 무게도 차이가 날까? 나는 떵떵거리지는 못해도 떳떳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큰 일 나지 않는다고 조용히 지나가면 마음이 조금씩 무뎌진다. 그런 식의 익숙해짐을 경계한다. 어떤 것도 결코 가볍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성 증진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