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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ul 06. 2019

감성 증진법

1.

어릴 때 예술 비슷한 걸 했었다. 하다 보니 여럿을 만나게 되고 각자 작법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형은 컴퓨터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 했다. "형, 컴퓨터로 하면 느낌이 좀 나와요?" 종이에 끄적이는 방식으로 뭔가 만들어내던 나에게는 그 형의 전면적 디지털 작법이 낯설었다.


2.

2019년이 벌써 절반이 넘게 지나간 오늘도, 나는 유선 이어폰을 쓰고 mp3 플레이어(요새는 고상하게 dap, 즉 digital audio player의 줄임말, 라고 하는)를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나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선이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멜론 등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유튜브를 켜놓고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든 걸 스마트폰으로 다 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일 수는 있다.


새로운 음악을 mp3 플레이어에 입력하는 일은 상당히 고되다. 요새는 잘 쓰지 않는 규격의 케이블을 준비하고 컴퓨터에 연결한 뒤 파일을 옮기는데, 앨범 아트 같은 게 잘 뜨지 않으면 태그 정리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수정한 다음 위 과정을 반복한다. mp3 플레이어는 새 파일을 입력하고 재부팅을 시키면 상당한 시간 동안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야 비로소 새로운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되는 것이다.


유튜브나 길거리, 카페에서 듣는 음악은 내 음악이 아니다. 그 제목을 알게 되고 찾게 되고 나름의 소유(컴퓨터 기억장치에 입력하는 일)를 해서 최종적으로 mp3 플레이어로 들어갈 때 비로소 나는 그 음악을 진지하게 들을 준비가 된다. 그 노래는 이제 내 노래가 고 가사 하나하나 한 단어씩 들어오게 된다.


3.

내가 알던 그 사람은 항상 필름 카메라를 썼다.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사진을 찍지만 여행을 갈 때면 굳이 필름 카메라를 가져왔다. 수동 카메라란 상당히 번거로운 것이었다. 한 장면을 찍기 위해서 초점 링을 돌리고 노출을 맞춰야 했다. 다 찍은 뒤에는 이제 몇 남지도 않은 사진 인화 업체를 힘들게 찾아가 필름을 맡기기도 해야 한다. 주의해서 사진을 찍었어도 나중에 인화해보면 못 쓰는 사진도 상당히 많다. 디지털카메라라면 즉각 즉각 지웠을 그런 사진이다.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던 날, 나는 그렇게 인화된 사진을 한 움큼 받았다. 이제야 나왔다는 그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중 내 얼굴이 반쯤 나와있고 잘못 찍어 절반은 허옇게 날아가버린 사진이 아직 기억난다. 깨끗하게 잘 찍힌 사진이었든지 jpg 파일을 전송받았다면 특별한 기억이 아니었을 일이다.


4.

조금 멀리 떠나오며 종이책을 한 권 샀다. 최근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전자책 애호가가 되었지만, 전자책 책장을 넘길 때 그 까슬까슬한 액정 화면 터치하는 감촉이 아직도 낯설다. 어디쯤을 읽는지 직관적으로 알기도 어렵다.


아마도 나는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책장을 넘기는 순간의 감성을 좀 더 오래 가져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감성이 필요한 시기에는 새로운 물건, 새로운 소유가 필요하다.


5.

이 글은 스마트폰을 두들겨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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