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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ug 06. 2019

우래옥

1.

우래옥은 을지로 4가에 있는 식당이다. 불고기와 갈비도 내세우지만 냉면이 가장 유명한 식당이다. 1946년에 개업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라고 한다. 아마 가장 비싼 냉면을 파는 곳일 텐데 냉면 한 그릇에 14,000원이나 받는다. 다만 한 끼 식사의 가격이라 생각했을 때 비싼 것인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겠다.


2.

내가 처음 우래옥에 갔던 때는 군 입대 전 대학생 시절이었다. 맛있는 냉면을 찾아 여러 곳을 다니던 시기였다. 요새는 냉면 문화가 넓어져서 서로들 냉면 철학이 하나씩은 있다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요즘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지도 않았으니 냉면 먹기는 좀 더 수월했던 시기였다. 우래옥 냉면을 처음 맛봤을 때 이 음식내가 좋아하게 되리라 번에 확신했다. 그만큼 내 취향에 맞았다. 그 뒤로 수업이 끝나면 혼자 자주 찾고는 했다. 대개는 좋아서 자주 찾는지 자주 찾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확실했다.


3.

가끔은 냉면의 ㄴ자도 모르는 친구들을 우래옥에 데려갔다. "우리가 생각하는 냉면이랑 맛이 좀 다른데 북한에서는 이런 냉면을 먹는다더라."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들을 우래옥에 데려갔다. 때로는 이성 친구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데려갔다고도 한다. 그럴 때면 꼭 우래옥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연락이 왔다. 거기가 을지로 어디지?, 을지로 4가 지하철역 4번 출구로 나가면 돼, 4가 역 4번.


4.

의무경찰로 서울에서 군 생활을 했다. 처음 6개월은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그다음 1년 6개월은 광화문 앞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근무했다. 군 생활 24개월 동안 두 번의 생일을 지난다. 나는 각 근무지에서 한 번생일을 보냈는데 운 좋게도 매번 우래옥에 갈 수 있었다. 생일이라고 우래옥에 보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던 기회를 틈탔다. 왜 하필 생일마다 아팠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이다. 그렇게 냉면을 먹고 있다 보면 어린아이들은 저기에 경찰 아저씨가 왔다며 그들의 부모에게 말했다. 두 번째 생일에 식사를 하고 일어설 때는 이제 그 말을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아웠다.


5.

사람들은 우래옥에 들어와 붓글씨로 크게 쓰인 '又來屋' 족자를 보면서 '또 오는 집'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올 수 있는 상황은 즐겁다. 오늘이 만족스럽고 앞으로도 거기 있을 곳이니 그런 생각 했겠다. 그런데 가끔은 또 오지 못할 언젠가의 식사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마지막 식사의 예감. 서로의 말 없음이 고요하기보다는 침묵에 가까울 때, 어지지 못하는 대화만 이어질 때, 대답 없는 물음만 어색하게 맴돌 때. 가끔 그런 기억이 떠올라 슬퍼질 때면 이른바 평행우주를 생각해 본다. 어떤 세계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아마도 그때 그 사람과 우래옥 냉면도 먹으며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세계에서 그 사람과는 우래옥에 가보지 못했다. 조금 더 봤더라면 가보지 않았을까. 여느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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