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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강쥐 Jun 21. 2020

'진짜'만이 의미가 있다

가짜에 허비할 시간이 없어 


홍진경과 정신의 사이처럼 진짜/진심인 삶은 글로만 읽어도 감동을 준다. [우리가 아는 그 홍진경 맞음] 

"가짜에게 허비할 시간이 없다. '진짜'만 가지고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 6개월이 채 안 되는 직장생활을 하며 내가 만든 가치관이다. 그동안은 진짜든 가짜든 가리지 않고 다 끌어안고 가보자는 태도가 가치관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된 이유는 있고, 진짜와 가짜는 원래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자기가 필요할 때만 규칙을 지키는 친구도, 나의 이야기를 자꾸 아이스브레이킹용으로 쓰는 사람도 다 끌어안고 가려했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도, 내 멋대로 행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안됐다. 근묵자흑이었고, 유유상종이며, 초록동색인 것이 이치였다. 가짜까지 끌어안다 보면 결국 나도 가짜를 닮게 되고, 진짜는 떠나 있었다. 상대방이 정의한 것을 반박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지형을 바꾸려는 의도로, "진짜 착함" "진짜 행복" "진짜 페미"들을 나누는 맥락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진짜로 여기는 기준이 있어야 했다. 내게 진짜는 진심과 솔직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진실만이 진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짜들은 몇백만 개를 모아도 드래곤볼을 완성시킬 수 없다. 아무리 긁어봐야 꽝만 나오는 복권이고, 수십만 평을 사도 재개발이 안될 지역이다. 거짓 감정, 흉내, 기만, 수단 등이 이렇다. 심지어 이것들은 다 표시가 나서 조금이라도 진짜를 원하는 사람 앞이라면 다 탄로가 나게 돼있다. 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가짜는 다 싫어한다. 

남들에게 맞춰준다는 생각으로 가짜들 사이에서 거짓 웃음과 박수를 치며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인생은 대놓고 가짜를 알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진짜인 것처럼 위장하고 숨어있는 가짜를 상대하고 있기에는 너무 짧다. 뭐 이쯤이면 되겠지, 원래 이런 거지 뭐, 저 사람이 저렇게 원하는 느낌이니 나도 이렇게 해버리지 뭐 같은 태도는 나에게는 물론이고 상대방에게도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 딴에는 상대방을 위해 꾸며낸 행동인데도 말이다. 신기하게 이런 태도는 결국 다 티가 난다. 

더 진심으로, 순도 100%에 가까워지기 위해 항상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것만이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가짜인 것을 알았다면 떠날 수 있어지자마자 박차고 나와야 한다. 아 조금 아쉬운데라거나 나중에 아깝게 느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면 진짜로 탈출할 수 있는 문이 닫혀있다. 

6개월간 일단 해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나는 사회부를 원하고, 80%의 힘없는 장삼이사들 관점으로 쓰고 싶지만, 회사는 그렇지 않고, 상사는 내가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하지 않고, 사회생활은 원래 윗사람들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그들이 좋아할 것 같은 말을 하고,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거니 시키는 대로 쓰자는 생각과 그에 걸맞은 행동을 했으며, 원래 임금노동자가 이런 거지 뭐라며 마치 흡사 나도 드디어 평범한 축에 속할 수 있게 된 것이 가라는 자신만의 만족감에 취해있었다. 그 사이 난 가짜가 돼가고 있었다. 허언증이 심한 사람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허언증에 홀려있느라 진짜인 친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네네라는 답변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켰고, 동기들 중에 네가 제일 낫다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의미도 없는 평하나를 얻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것도 아주 어패가 있는.. 평으로. 진짜를 추구하지 않으면 가짜가 되기 십상이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자기 앞의 생> 모모는 말했다. 사랑만이 진심이고 진짜다. 사랑의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다 결국 자기 아집과 피해의식, 열등감, 이기심에 빠져 가짜가 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서 사는 삶이 대표적인 예다. 내 앞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는 말은 나를 갉아먹는 핑계가 된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하라고 원한 것 같은 내 착각이다. 설사 원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아줄 의무는 없다. 

내가 속한 조직의 룰에 맞춰 인정받고, 적당한 임금을 받고, 적당한 소비를 하는 삶은 최악의 삶이다. 30년 근속을 해도 진짜가 될 수 없다. 정말 짜증 나게 가짜인 사람들도 순도 100% 진짜는 알아본다. 

나만이 나의 진짜를 알 수 있다. 쉬운 건 아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대충 살다 보면 나도 내 가짜를 진짜로 여기고 살아 진짜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이렇게 살다 보면 뇌도 심장도 죽고 만다. 훗날 공부가 괴롭고, 통장 잔고가 줄어 현재의 삶을 그리워할까 봐 남기는 글이다. 가짜의 삶은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다. 내 뇌를 굳게 할 뿐이다. 그러니 진짜로 살자. 핑계는 다 가짜를 포장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다. 

회피, 핑계, 두려움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직면, 응원, 감사, 여유를 더하자. 진짜만 남겨놓자. 그러지 않고 살다 보면 가짜들만 남고 공허해 죽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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