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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Dec 14. 2019

집순이의 주말 일상

바쁘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다 갔다.


뒤척인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일을 보냈다. 이불속 온기는 따뜻하다. 따뜻함이 소용돌이를 덮었다. 잠시 쉬어도 된다고.


폰을 들었다. 잠자던 소용돌이가 다시 휘몰아친다. 왜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지. 다른 사람이 보면 나도 똑같으려나. 폰을 끄고 싶지만 끌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일상이 궁금한 건 아니다. 그냥 소용돌이처럼 빠져들 뿐이다.


엄마의 말이 옳았다. 좋은 일이 생길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너무 떠벌리면 분명 시샘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그리고 적도 생긴다고. 그 말이 옳았다. sns에 웬 자랑질이야.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도 댓글엔 '좋겠다. 축하해'라고 남긴다. 적나라한 내 감정이다. 미안하다.




눈을 꿈뻑꿈뻑. 눈이 뻐근하다. 결국 내 의지가 아니라 어떤 신호로 인해 폰을 내려둔다. 배가 고프다. 꾸역꾸역 몸을 일으킨다. 눈을 뜨면 엄마가 차린 집밥이 식탁 위에 탁 차려져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면 그 엄마는 누가 하냐? 누군가는 엄마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 누군가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차려야 한다는 건데 귀찮고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의 엄마 노릇은 내가 해야지. (물론 난 아이가 없다.)


아침인가 점심인가 헷갈리는 시간에 먹은 식사를 끝내고 다시 눕는다. 먹고 누우면 살이 뒤룩뒤룩 찐다는데 그럼 어떡하지. 다시 몸을 세워 일어나려다, 다시 발라당 눕는다. 한 번뿐인 인생, 게다가 세른 세 살 11월 둘째 주 주말은 내 생에 처음이잖아.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이지만, 나는 설득 당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한 주말인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선물은 나에게 해줄 수 있잖아.



한 숨 잠이 들었다. 이게 한 숨인가. 아까운 오전이 다 날아가고 오후의 반도 날아갔다. 내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꾸역꾸역 들고 왔다. 하루 종일 움직인 거라고는 안방과 주방뿐인데, 내 방에 들어갔다.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몰아본다. 이불 위에는 과자가 널브러져 있다. 맥주도 있다. 엄마가 봤으면 이불 위에서 그러지 말라고 등짝을 내려쳤을 수도 있지만, 뭐 어때! 내 마음인데. 이불 위에 맥주를 쏟으면 화가 나겠지만 내가 빨면 그만이다.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건 거기에 따른 어떤 일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거다.



먹고 자고만 했더니 밤이 되어도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 하루 종일 연락 한통이 오지 않았다. 뭐, 기다린 연락은 없다. 평일엔 불이 나던 톡도 주말에는 고요하다. 각자 바쁘게 주말을 보내고 있나 보다. 톡이 오면 또 답장을 해야 하고.


이번 주말엔 그런 활동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거기에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주말을 방해하려 톡을 보내려다 폰을 내린다. 굳이 그러지는 말자. 방해하고 싶지 않은 주말이다. 아니, 방해하고 싶지 않은 나의 주말이다.


꾸역꾸역 일어나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뭐 이렇게 바쁜 주말이 다 있다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주말이 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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