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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Dec 17. 2019

조기교육을 반대하지만 조기교육을 시키는 이유

나의 어릴 적 이야기


우리 동네엔 말도 잘하고 제법 싹싹한 똑순이가 있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내가 세 살 될 무렵 우린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엄마끼리도 동네 친구였으니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겠지, 정도만 알고 있다. 그 친구에 비하면 나는 말도 느리고 습득도 느렸다.


비교 대상이 바로 옆에 있으니 나였다면 조바심이 나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조기 교육에 열을 올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가 안타까웠다고 한다. 또래에 비해 작고 느린 아이. 아이는 아이답게 키워야 한다며, 습득이 느리면 느린 대로 내버려 두셨다. 그러니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은 올챙이 잡으러 동네 오빠들 따라서 저수지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던 기억과 매미 잡으러 나무에 올라타 깔깔 웃었던 기억밖에 없다. 남들 다 다니는 유치원에 가지 않았고, 학교 들어가기 전 일 년간 학원에 다녔던 게 전부였다. 결코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 일이다. 슬슬  시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책을 덮으며, 구구단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고, 그때 반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숫자들을 나열했다. 구구단이 뭔지도 모르는 나로선 처음 듣는 숫자들의 조합이었다. 다다닥. 다다닥. 나에게 음악처럼 들렸던 이이는 사 이삼 육 이사 팔.


 반장의 구구단이 구단까지 끝이 났다. 친구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리곤 서로 구구단을 말하겠다며 손을 번쩍번쩍 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한 번도 배운 적도 없는 구구단을 너도 나도 안다고 손을 든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구구단을 다 외운 사람만 집으로 보내줬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니 마음이 불안했다. 구구단이 대체 뭘까? 뭐길래 외우라는 걸까. 그저 시키니 달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친구들이 다 떠나고 다섯 명 정도가 복도에 남아 있었다. 아마 세시까지 학교에 남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체감 시간으로는 꽤 긴 시간이었다. 다섯 명이 쪼르르 복도에 무릎 꿇고 앉아 벌이라도 서는 것처럼 구구단을 달달 외웠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안 사실인데, 하교 시간이면 제각 집으로 오던 내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엄마는 깜짝 놀라 학교로 뛰어갔다고 한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꼬마, 그러니깐 우리 동네 까불이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반으로 쫌 가봐달라고 부탁더니

내가 복도에 앉아서 구구단을 외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구구단을 못 외워서 집으로 못 간다고. 너털너털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때 엄마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죄책감이 들었을까. 안도감이 들었을까. 너털너털 그 걸음이  새삼 미안하다.

난 평소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가 밤새 엄마의 지도 아래 구구단을 외웠다.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아직도 그 얘기를 하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건 내 잘못도, 엄마 잘못도 아닌데 그날 우린 벌을 섰던 거다.

이유 없이 집에 가지 못해 남은 아이들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구구단.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국어 시간에 '기억, 니은, 디귿'을 차례로 배우는데 수학 시간이면 '영희가 어쩌고 저쩌고' 국어를 모르면 풀 수 없는 문제가 나온다고. 논술을 가르치는 친구가

 과외로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유치원생까지도 가르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새삼 놀기도 했다. 그 어린 아이들이 뭘 안다고 논술을 배우는 걸까.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뒤처지기 시작하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것이 아이의 성적뿐만 아니라 성격에도 영향을 주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구구단을 못 외워 집에 가지 못했던 나는 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화공 기술팀에서 근무했으며, 번역서를 출간한 번역가 되었다. 무엇보다 공부에는 자기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서간 친구들을 따라잡기는 늘 어려웠지만.


그렇다면 어디까지 선행학습이 필요한 걸까. 정말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선행학습 없이도 학교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걸까.


어떤 시대가 되었던간에, 나는 아이가 생기면 학교 보내기 전에 반드시 구구단만은 가르칠 것이다. 적어도 그것만은, 적어도 구구단만은, 적어도 영어만은, 적어도 미적분만은, 적어도 논술만은 적어도 적어도...적어도!


그것이....우리가 조기교육을 반대하지만, 조기 교육을 시키는 이유다.




 (헤헤, 이건 나의 개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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