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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an 15. 2020

프리랜서와 전화

콜포비아


"안녕하세요. A기관입니다. 이번 달 원고료가 **만 원이 넘어서 세금 처리를 해야 하는데요. 이 번호로 주민등록번호 부탁드립니다."


처음 보는 번호다. 분명 내가 활동하는 기관이 맞고, 저번 달에 여행기를 제법 많이 제출한 것도 맞다. 그런데 내용은 누가 봐도 보이스피싱이다.


"제가 개인 번호로 저의 개인정보를 말하기가 좀 그런데 그 기관 게시판에 비밀글로 올려도 될까요?"


"올리셔도 되지만, 그 게시판은 6명이 관리하고 있어서 더 많은 사람이 개인정보를 볼 수 있어요."


다급한 마음에 아는 시민기자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 담당자의 번호를 확인한다. 그런데 담당자의 번호가 맞다.


"언니, 웃기지 않아요? 이런 거 물어볼 때 보통 회사 번호로 전화하지 않아요?"


- 몰랐어? 그분 전화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셔.


흔히들 이런 걸 콜포비아라고 한다. 전화 공포증. 공포증이라고 하니 엄청난 거 같지만, 사실 우린 전화보다 문자가 더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5명이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 한다.


전화보다는 문자나 메일이 나은 이유. 대답할 시간을 벌 수 있고, 또 생각을 정리한 후 답할 수도 있기 때문. 




번역 의뢰든, 컴플레인이든 늘 전화로 주는 한 업체가 있었다. 꼭 주말이나 밤, 일하기 힘든 시간에만 연락이 왔고, 그래서 더 일을 거절하는 게 어려웠다. 차라리 문자라면, 지금은 못한다고 메시지를 보 수 있는데 말로 하긴 웠다. 그 업체는 그런 점을 이용하는 거 같았다.


따르릉.


울리는 전화에 덜컥 겁부터 다. 구지. 왜 전화했지. 급한 일인가.


급한 일이 아니면 톡으로 보냈을 텐데. 불안하다. 전화가 울리면 전화의 목적이 메시지 떴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원고료 입금은 언제 되나요?' 이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렵다. 문자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볼 수 있는데 전화로는 그게 힘들다.

정당한 대가인데 너무 원고료에 얽매여있는 것처럼 보여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원고료 한 달 넘게 주지 않은 B기관.  담당자의 개인 연락처가 없으니 전화로 밖에 연락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보다 간편한... 민원 문의에 글을 남겼 그것이 민원 처리가 되어 곧바로 원고료가 입금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완납은 아니었다. 건이 누락되었다. 하지만 원고료 때문에 민원처리 넣은 게 내심 미안해 나머지 반은 말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


담당자 개인 연락처를 알았다면 단박에 문자를 날렸을 것이다. 원고료 언제 주냐고. 왜 미입금이냐고. 그런데 전화다. 나는 또 자신이 사라진다.  또한 콜포비아족이다. 전화를 거는 것도, 갑작스럽게 전화를 받는 것도 어려워졌다.



거슬러 올라가콜포비아는 스마트폰 탓만은 아닌 것 같다. 피씨로 채팅하던 시절, 그게 전화와 편지 외에 유일한 소통이었던 시절에도 그런 게 있었다. 채팅창에선 분명 활발하고 잔망스럽고 끼가 넘치는데, 실제로 보면 눈도 못 마주치고 인사도 제대로 못했던 그 아이. 제이. 제이가 생각난다.


'전화보단 메시지가 더 편해.'로 시작해서 '전화는 두려워.'로 변했겠지.




내가 일적으로 만난 사람의 전화를 기피하는 이유 한 가지다. 대다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목소리로 나를 판단할 수밖에. 그런데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말투가 내내 걸린다. '생각보다 어리신가 봐'라고 말하면 나이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대부분 놀란다. 어린 목소리로 인해 나의 전문성을 의심받을 때도 있다. 


그게 콜포비아의 시초였다.



회사 다닐 땐 그럴 필요가 없었다. 회사의 위치(갑인지 을인지), 직급의 높낮음이 나를 대표했으니깐.


그렇다면  A기관 담당자는 왜 전화를 싫어할까. 그냥 귀찮아서? 문자가 더 편해져서? 온라인으로 일을 주고받은 나로선 그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무얼 말하고 있는지, 목소리의 높낮이도 알 수 없다. 그저 그 사람은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받아 세금 신고를 하면 그뿐이니깐.



웃음 이모티콘이 표정을 대체할 뿐이다.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누군지 확인한다. 한참을 바라보다 시간이 흐르니 전화가 끊긴다.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잘 계시죠? 혹시 어떤 일로 전화하셨나요. 제가 지금 밖에 있어서 전화받기 곤란해서요.'


전화받기 곤란한건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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