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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Feb 27. 2020

의식하지 않는 글

감시받는 글



타닥타닥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웬일인지 집중이 잘 된다.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러다 음산한 기운이 스며들어 뒤를 바라본다.


이미 퇴근한 오빠,

고양이 발걸음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화들짝 놀란다. 빠에겐 적 달성이다.

"오빠 왔어? 아직 작업이 남았어! 잠시만"

집중이 흩어졌다. 오빠는 내 뒤에 놓인 간이침대에 털썩 앉아 그런 나를 바라본다.

이제 집중과는 더 멀어졌다.


사실 다시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는 집중이 깨져서가 아니다. 뒤에 누군가가 (그게 남편이라도) 있다는 것, 내 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물론 눈이 나빠서 침대에서 모니터에 있는 글자를 또렷이 볼 수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글을 쓸 수가 없다.


가끔은 남들이 다 보는 인스타그램, 브런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일적으로는 지역 사이트나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

그건,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있음을 알고 쓰는 글이다. 혹은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보길 바라고,

'좋아요' 눌러주길 바라며 쓰는 글이다.


그렇다면 글 쓰는 도중에도 누군가가 봐도 상관없어야 하는데, 난 자꾸 일기장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빨개진다.  누구나 볼 글을 쓰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옆 사람이 볼까

휴대폰 화면의 밝기를 최대한 낮추고

몸을 움츠린다. 카페에서도 최대한 구석진 곳으로 간다. 감시받는 기분이 들면 나도 모르게 손이 멈춰지고 사고가 멈춰진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그려보기 위해

새하얀 도화지에 연필을 쓱쓱 소리를 내며

그리는데,


다시 선생님이 이쪽으로 오면 연필 잡은 손이 뻘쭘하게 멈춰버린다.


색칠을 할 때도, 피드백을 받을 때도.

그대로 그려보라는데... 연습 작품인데도

마치 시험 보는 기분이 들고,

틀리면 어쩌지, 이게 맞나...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아까까지도 잘 그렸던 그림인데...


어차피 완성품은 찍어서 이곳저곳에 올리거면서...



누군가 보고 있다고 의식하지 않고 쓰는 글,

의식하지 않고 그린 그림.


좋아요를 바라면서, 댓글 피드백을 기다리면서

아무도 보지 않을 것처럼 쓰는 SNS 글.


그래서 나는 늘 야자시간에,

공부하는 척 연기하며 딴짓을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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