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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15. 2020

창문하다

3월 12일 일기





여섯 시를 넘겼다. 간신히 마감을 끝냈다.
천근만근이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지만, 춥지 않은 밤공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운다.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다 사진기를 꺼낸다.
음. 지금  행위는 '창문하다' 만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포르투갈어에는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가 있다. 창문(janela)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행위를 이렇게 표현한다고 한다.




창문을 바라보는 동안 펼쳐진 풍경.

건물 속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다. 군가는 그렇게 밤이 깊도록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 보이는 건물은 환경부를 비롯한 여러 청사들이다. 아마도 코로나 사태로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을 마다하지 않는 중인 것 같다.



요즘은 대체로 집순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나는 집순이 생활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해내는 편이다.


번역이 한가득 쌓였을 때,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야 할 때

그냥 집에 앉아 내내 타자기를 타닥타닥 두드리다

밤이 오면 샤워 후 발라당.


자발적 집순이 생활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비자발적 집순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오라고 하면 귀찮은데 나오지 말라고 하니

이 세상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창문하고 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괜히 이 순간을 잘 간직하고 싶어, 사진기를 꺼내 순간을 담는다.





오래 머물 오래 들여다보면
다른 면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슴푸레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이 시간을, 춥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이 계절을 무엇이라 표현할까

하나둘 켜지는 건물 속 누군가의 인사에 말을 건네고 싶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정류장에서 우리는 지나가는 것들은 지나갔음에 그리워할 수 있고, 다가올 것들은 다가올 것임에 설렐 수 있다.

그렇게 미련과 그리움은 셀렘으로 대체된다.

이 모든 순간이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랑이는 바람에 가디건을 걸쳐 입고 샤랄라 치마를 흩날리는 봄날의 아가씨가 되고 싶다.


창문을 하다, 생각에 빠지고,

ㅡ그 생각의 끝은 봄이다.

코로나가 잠식되어 다들 웃음을 되찾은 샤랄라 봄.




나의 일기는 언제나 시작은 있고,

결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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