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쩔 줄 몰라했다. 망쳐버린 수능, 이미 지나간 일이니 앞으로만 생각하자고 했지만, 고등학교 삼 년의 시간, 중학교와 초등학교까지 합친다면 총 12년의 시간이 성적표에 찍힌 숫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점수는 노력의 비례한다고 하지만, 사교육과 타고난 머리, 그리고 정보력으로도 좌지우지될 수 있는 거였다.
물론 지금은 수능 점수로만 대학 가는 시대는 지났다. 그보다 더 많은 숫자들이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대학교에 가면 이제 학점과 취업을 위한 토익 점수에 열중한다. 숫자를 좀 더 높이는 것이 입사를 위해 내가 했던 최선이었다. 그렇게 높이다 보면 어느새 취업. 이제야 숫자의 세계에서 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회사 생활은 여전히 바쁘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바라본다. 그래, 내일도 꾹 참는다. 숫자는 월급날 올랐다, 카드 결제 날 다시 내려간다. 적금과 월세, 이것저것 생활비에 보태면 또 숫자는 확 줄어든다.
잠시 현실을 잊기 위해 sns를 켠다. 좋아요 수가 전보다 낮다. 팔로워 수는 요지부동이다. 원하는 숫자가 아니다. 힐링하겠다고 sns를 켰는데 다시 시무룩.
지인의 sns를 본다. 다들 잘 먹고 잘 놀고 행복해 보인다. 게다가 그들의 좋아요와 팔로우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내 숫자는 왜 이렇게 매일 낮거나 그대로인지.
이 숫자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수단, 좋은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수단, 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지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일 때가 많다. 그런데 인생에선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
좋은 대학에 갔음에도 그 뒤의 역량이 딸려 아예 취업을 못 하는 사람도 있고,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에 갔음에도 자기 시간이 없어 불행한 사람이 있고, 회사를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로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고, sns를 전혀 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그런데도 그 숫자가 진짜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 숫자에 행복을 저당 잡혀 산다. 숫자는 나의 경쟁심에 불을 지핀다. 경쟁 사회 속에 들어간다는 건 사이좋게 손 잡고 희희낙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떨 땐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할 때도 있고, 그저 내가 그려놓은 비교 차트에 의해 내가 짓밟히는 경우도 있다.
성적이 높으면 행복할까.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할까.
좋아요와 팔로우가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할까.
그게 진짜 행복을 보장해줄까.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가치관, 목표, 그리고 사람과 행복을 찾아 나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유튜브 구독자가 올라서 기뻐하다가
고작 이 숫자가 뭐라고 나는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거지, 자괴감이 들어 쓰는 자기반성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