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김주임의 시선 (1)

당신의 포기를 삽니다

by 봄단풍


김 주임에게 회사는 쉽지 않았다.


그가 처음부터 사회적이지 못한 성격은 아니었다. 학창시절에는 늘 교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모범생이었고, 목표로 했던 국내 최고의 대학에 입학했고,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군대도 일찍 다녀왔고, 최우수 졸업을 통해 자신이 원했던 분야의 최고 기업에 입사까지 했으니까. 다만 사회는 그가 겪었던 어떤 학교와도 달랐다.


『김 주임, 숟가락 젓가락 세팅은 기본 아냐?』

『김 주임님, 점심 메뉴 좀 받아주세요. 아파서 못 드신다고요? 그래도 주문만 해주세요.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다들 바쁜데.』

『이 사람아, 모르면 물어보고 했어야지. 지금 김 주임이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런 것 까지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해? 스스로 찾아서 해봐, 좀.』

『김 주임님, 학교 다닐 때 왕따였어요? 오호호호. 아, 잘못했다고 뭐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인사팀은 뭐하는 거야? 부서에 맞는 사람을 배정해줘야지…….』


김 주임은 군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도 어지간히 많이 맞았었지만, 적어도 그 때는 모든 일처리가 불합리할 제도나 규칙으로부터 기인할지언정 일관성은 있었다. 한 달이라도 빨리 들어온 인간의 명령이 우선순위에 있음을, 한 달이라도 늦게 들어온 인간에게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 주어짐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덕에 고문관 취급을 받던 그도 몇 달 만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후임들에게는 악명높은 선임으로 남았을지언정.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이제 입사한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뿐인데, 군대에서 겪었던 것보다 훨씬 다채롭게 엿같은 상황이 발생했고, 대처는 매번 달랐고, 모든 대처에 대한 대가로 욕과 추가근무를 비롯한 가혹행위를 감내해야했고, 대신 그 모든 시간을 수당으로 보상받아야 하는데 그 마저도 전부 받지는 못했다.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왔던 김 주임도 돈이 다가 아니라는 노랫말에 처음으로 공감하며 하루하루 잠들곤 했다.


다만 그는 세운 목표를 이루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공부도 그러했고, 대학입학부터 졸업까지, 그 사이에 다녀온 군대에서도, 목표를 삼은 일이 있으면 실패를 겪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바둑돌 두듯, 기찻길 따라 걷듯 차곡차곡 사는 삶에 익숙한 사람. 심지어 그 어렵다는 취업의 문턱도 첫 시도에 가볍게 넘으며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이니까. 그래서 그는 자신이 부딪힌 사회생활의 한계를 뚫기 위한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는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김 주임도 담배 펴?”

“예. 막 시작했습니다.”

“의외네, 모범생인 줄 알았는데. 요새 일이 힘든 가보지?”

“아닙니다.”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바른 생활만을 고집하며 술도 담배도 멀리 했었지만, 딱 한 번 군대에 있을 때, 작업 중 쉬는 사람들에 섞여 말이라도 섞기 위해 억지로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물론 담배를 한 모금이라도 빨았던 날에는, 마시는 물, 먹는 밥, 들이마시는 공기 모든 곳에 담배 냄새가 자리했었고, 그 맛에 적응하지 못한 터라 금세 끊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김 주임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는데. 홍보팀이 적당히 빡세야지.”

“아닙니다. 할 만 합니다.”

“아니긴 무슨, 솔직히 걱정 많이 했지. 김 주임 스타일이 딱 그렇잖아. 진짜 열심히는 하는데 요령이 요만큼 부족한 거. 무슨 말인지 알지?”


부서 사수인 장 대리의 말에 김 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인즉슨 열심히 하든지 말든지 관심은 없으나 요령은 무진장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그는 군대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물론 깊게 들이마셨다가는 대번에 콜록댈 것이 뻔하니까, 입천장을 조금 들어올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 때쯤 건물 뒤편의 골목에서 펑퍼짐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안 과장님.”

“담배도 안 피우시면서 매번 나오셔요.”


김 주임이 얼른 고개를 숙이는 사이, 옆에서 바닥에 침을 뱉고 있던 장 대리는 웃으면서 그 뚱뚱한 그림자를 맞이했다. 긴 머리를 반으로 갈라 양 옆으로 넘긴 안 과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느릿하게 걸어왔다.


“담배는 예전에 피웠었어, 나도.”


김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한 번 더 빨았다. 그로서는 적응하기 어려운 씁쓸한 맛이 다시 한 번 높아진 입천장을 돌고 돌아 혀끝에 닿았다.


“그냥 건강 생각해서 안 피우는 거지. 장 대리도 끊을 수 있음 끊어.”

“에이, 죽을 거 생각하면 할 게 없죠, 세상에.”

안 과장은 껄껄 웃더니 장 대리의 등을 몇 번 두드렸다.

“김 주임도 담배 피웠었어?”

“아, 네.”

“김 주임은 뭐 아직 젊으니까……. 그렇다고 너무 의지하지 말고, 힘든 일이 있으면 차라리 나한테 와서 편하게 얘기를 해. 술이라도 사줄게.”


김 주임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아니다, 감사하다를 반복했다. 여전히 흐뭇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는 안 과장에게, 장 대리는 갑자기 물었다.


“과장님, 솔직히 말해 봐요.”

“뭘?”

“솔직히 월급 나오면 후배들 술 사주는 데 다 쓰죠?”


푸하하핫, 걸걸한 웃음소리가 흡연 구역을 꽉 메웠다. 어딘가 열려있을 창문으로 충분히 새어 들어가고 남았을 법한 웃음소리였다.


“노총각 선배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거 말고 더 있겠냐.”

“아유, 서른아홉은 아직 적령기라니까. 나중에 열심히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면 되죠 뭘. 껄껄껄.”


김 주임은 웃음소리에 맞춰 웃고, 또 멈추는 데에 신경 쓰며 대화에 집중했다. 서른아홉, 그러고 보면 안 과장은 꽤나 노안인 편이다. 첫 인상으로는 사십 대 초 중반으로 보였으니까.


“과장님 근데 어제 김 부장님 문상 가셨어요?”

“아니. 빙모상인가 그랬나?”

“네네.”

“나는 어제 일이 있어서 못 갔지.”


안 과장은 팔짱을 낀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여유가 넘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생긴 것인지, 그는 늘 무표정할 때도 어딘가 흐뭇함이 표정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흐뭇이라고 해야 하나, 므흣이라고 해야 하나. 도심 한 가운데 떠있는 무인도에 홀로 남아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 같은, 미소와 비슷하지만 미소는 아닌 애매한 얼굴.


“저는 팀장님이 가자고 해서 억지로 갔는데. 과장님한테는 얘기 안하셨었나보네.”

“갈 사람은 가고 안 갈 사람 마는 거지 뭘 그걸 단체로 가.”

“다 과장님 같았으면 좋겠네. 얼른 승진해서 팀장도 달고 부장도 달아주세요.”


안 과장의 입이 양 옆으로 길게 늘어졌다. 아, 그래. 그 애매한 표정의 정체는 이제야 분명해졌다. 그건 의기양양한 미소였다. 누구에게 보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이겼다’라는 표정. 김 주임은 그 표정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가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친구 대신 졸업생 대표로 상을 받게 됐을 때…….


자신의 거울 앞에서 말이지.


“김 주임도 안 갔겠네? 누구신지 모르지?”

“예, 잘 모르겠습니다.”


김 주임은 대답 후 고개를 돌려 벽을 보고 연기를 뱉어냈다.


“아 맞다, 진 주임도 같이 갔는데.”


안 과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사실 사람의 감정이나 호감에 대해는 눈치가 전무한 김 주임이었지만, 입사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안 과장의 진 주리 주임에 대한 이상한 태도는 짚어낼 수 있었다. 안 과장은 곧 놀란 눈을 다시 평범하게 되돌리며 먼 산을 바라봤다.


“응, 주리 어제 아마 우리 팀장님이랑 간다고 했었어.”

왜 저렇게 부르는 거야? 김 주임은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역한 기분을 겨우 참아냈다. 아마 둘이 친한 모양이라고 애써 합리화하면서.

“근데 진 주임은 김 부장님을 어떻게 안대요?”

“그거였잖아. 그 뭐지……. 주리가 입사할 때 김 부장님이 연수원 담임이었어.”

장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주임은 안 과장의 호칭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과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셔요?”

“아니 뭐……. 친한 편이니까.”

“하긴. 과장님 진 주임이랑 가끔 카풀도 하지 않았어요?”

“아니 뭐……. 집 방향이 비슷하니까.”


안 과장의 입 꼬리가 아까처럼 씰룩였다. 김 주임은 그 대화를 모조리 기억에 저장해두기로 했다. 바로 위 상사의 기분을 좋게 하는 대화법,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지 잘 새겨두도록 해야지. 그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은 한껏 치켜세워야 한다…….


“오, 그럼 지금도 가끔 같이 오고 그래요? 과장님이 태워주시는 거죠?”

“그치 뭐. 자주는 아니고.”


머릿속 필기장에 열심히 받아 적던 김 주임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늘 지하철로 출근하는 김 주임은 진 주리 주임을 지하철 입구에서 심심찮게 마주치곤 했었으니까! 장 대리와 안 과장이 뭔가 더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한참 자신의 귀납적 추론과 안 과장의 발언 사이에서 갈등하던 김 주임은 곧 ‘자주는 아니고’라는 안 과장의 말을 받들기로 마음먹고 다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맞다, 어제 장례식장에 그, 누구지……. 재무팀에 그 조용한 사람 있잖아요.”

“누구?”

“남 대리님 말고 그 밑에. 누구더라, 그……. 왜, 있는데. 남잔데 좀 어리고…….”

“우수하 주임?”

“아 맞다. 그 사람 맞을 거예요. 그 사람도 왔던데.”


김 주임은 잠깐이지만, 안 과장의 눈썹이 꿈틀댄 것을 목격했다. 장 대리가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화의 방향이 썩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간 것은 분명해보였다.


“아 그래?”

“네. 우 주임? 그 사람도 담임이 김 부장님이었나?”

“아니, 주리 기수까지 김 부장님이 차장이었고, 그 다음에 승진하셔서 담임은 다른 분이 했지. 우 주임이 주리보다 늦게 들어왔을 걸.”

“아 그래요? 그럼 왜 갔지?”


장 대리는 어느새 다른 담배를 하나 더 입에 물고 있었다. 불을 붙이느라 그는 안 과장의 표정이 살짝 뒤틀린 것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걔도 뭐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거. 진 주임 어장의 물고기. 파닥파닥.”

“그렇게 얘기 하지 마. 주리가 나쁜 사람처럼 되잖아.”


김 주임은 재빨리 담배를 끄고 안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정색.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하지 말아야 할 말’ 목록을 빠르게 최신화 했다. 그는 장 대리를 타산지석 삼기로 마음먹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죄송해요. 그런 의미는 아니고. 워낙 진 주임 인기가 많다, 뭐 그런 의미죠.”

“그래,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지. 어장이나 이런 건 여자한테도 실례되는 말이잖아.”

“그쵸. 진 주임이 일부러 그럴 사람은 아니죠.”


김 주임은 장 대리에 태도에 탄복했다. 나 같으면 식은땀을 흘리며 안 과장님한테 머리를 조아렸을 것 같은데! 그는 정색하고 있는 상사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빨며 파마한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살짝 찌푸린 미간에는 하고 싶은 말이 아직 숨겨져 있는 것처럼, 그는 어느새 안 과장 뒤 쪽의 골목 어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근데 제가 어제 그 테이블에 앉았었거든요.”

“무슨 테이블?”

“왜, 그 밥 주는데. 거기 우리 회사 사람들이 다 앉아있었는데, 거기서 솔직히 제가 뭘 하겠어요. 그냥 술 따르고 술 먹고 그러려고 간 거지.”

“그런데?”

“근데 딱 보이잖아요. 우리 비슷한 나이인 사람들은. 딱 그 우 주임하고 진 주임 둘밖에 없었어서 잘 보였지.”

안 과장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했지만, 그는 어느새 장 대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근데 뭐?”

“아니, 그 우 주임이. 계속 진 주임만 쳐다보더라고요. 진짜 옆에 차장 술잔이 비는지 마는지, 채우지도 않고 그냥 구석에 앉아서 진 주임만 줄창 쳐다보다가, 그 재무팀 박 차장님. 그래. 박 차장님이랑 몇 마디 하더니 그냥 일어나서 가더라고.”


김 주임이 정신을 차리고 안 과장의 표정을 살폈을 때, 그 얼굴에는 어느새 또 그 의기양양한 미소가 희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뭐 다른 말은 안 하고?”

“말 할 타이밍이 없었어요. 그냥 우리 빼고 다 차장님들 부장님들이었으니까. 나도 임 팀장님이 가자고 해서 간 거고, 진 주임도 뭐 그랬을 거고. 목소리도 못 들었다니까.”


안 과장의 얼굴은 금세 처음처럼 되돌아왔다. 김 주임은 꼭 과거의 거울을 쳐다보는 느낌에, 결국 그에게서 눈을 떼고 장 대리에게로 눈을 돌렸다.


“주리니까. 그럼 쳐다볼 수도 있지 뭐, 보는 걸 가지고 그래.”


안 과장은 그 어느 때보다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만 신경 쓰이던 호칭이 마침내 속까지 거북하게 만들었던 터라, 김 주임은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아야 했다. 역시나, 사회생활은 그리 쉽지 않구나. 그는 담배를 통해 쉴 수 있음을, 또 관계를 쌓을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던 불과 몇 분전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했다.


그렇게 세 사람 사이의 긴장이 풀릴 때 쯤, 장 대리는 다시 한 번 분위기의 줄을 잡아 당겼다.


“근데 둘이 원래 좀 친해요?”

“응?”


안 과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느새 두 번째 담배를 다 태운 장 대리는, 하수구에 담배를 버리느라 그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우 주임 나가고 진 주임이 바로 따라 나가더라고. 가방 들고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안 과장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경직이라도 온 것처럼 그는 멍하니 장 대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되게 차분하고 똑 부러지고 그런 사람인데.”

“그래서?”


굳어있으면서도 안 과장의 대답은 빨랐다. 장 대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이미 몇 분 전부터 그 대화의 완전한 제 3자였던 김 주임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받아 적어야 하는 사회생활의 요령을 온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냥 뭐 그런가보다 했죠. 원래 혼자 나가기 좀 그렇고, 누가 일어나면 슬슬 눈치 봐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집에 마침 급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치, 그치.”

“근데 마침 또 우리 팀장님이 담배 한 대만 태우자고 나가자고 하시네?”

“그래서. 뭐 쫓아가기라도 했어?”


피식 웃으면서 답하는 안 과장이었지만, 눈치 없는 김 주임도 대강은 알 수 있었다. 그 웃음은 허세다.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궁금하지 않은 척이다. 요컨대 그런 거다. 공부에 관심 없던 자녀가 ‘이번 시험은 잘 본 것 같아’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때, ‘뭐, 백점이라도 맞았어?’라고 되묻는 부모의 심정 같은 거다.


“쫓으려고 한 건 아니고, 경로가 겹친 거죠.”


장 대리는 씩 웃으며 손을 허공에서 탁탁 털었다. 괜히 킁킁대며 담배를 잡았던 손가락의 냄새를 맡던 그는, 안 과장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걸 뒤늦게 눈치 챈 듯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


“저도 많이는 못 봤어요. 워낙 둘 다 멀리 가 있었어서.”

“그래서, 뭘 봤는데.”

“별 건 아니고. 그냥 진 주임이 뛰어가서 우 주임한테 팔짱끼고 그러던데.”


안 과장의 눈이 일자가 됐다. 화난 것인지, 안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 컴퓨터 그림판으로 그려놓은 듯한 딱딱한 얼굴이었다.


“팔짱?”

“아 아닌가? 아무튼 둘이 되게 투닥 거리면서 가던데, 친해 보이던데. 집에 같이 가는 것 같더라고요.”


안 과장은 여전히 처음 보는 딱딱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이내 희미한 미소를 얼굴에 걸며 대답했다.


“아, 얼마 전에 홍보팀 야유회 때 우 주임이 사진 촬영 도와줬었거든. 그 때 친해졌나보지.”

“그랬구나아아. 그럼 그런 가보죠, 뭐.”


장 대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먼 산을 바라봤다. 김 주임은 그가 안 과장의 안색을 잠시나마 살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여유가 넘치는 것인지 애초에 안 과장의 심기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인지 시선은 멀리 둘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장 대리는 다 들으라는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 상갓집에서 그 지랄을 해, 왜. 우 주임도 이상한 사람이네.”

“장 대리.”

“아니 그렇잖아요. 담임도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는 상사 상갓집에 갔으면 자기 팀장 보좌를 끝까지 하든가. 중간에 나와서 만나? 이거 딱 봐도 그냥 진 주임 보러 간 거 아니에요?”

“주리 가는 건 나도 몰랐는데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뭐 집 가다가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지 뭐.”

“아니, 안 과장님은 워낙 세상을 착하게 보시니까 그래요. 세상에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우 주임은 일 잘 한대요? 나는 왜 이름도 처음 듣는 것 같지?”

“좀 얼타는 것 같긴 하더라.”

“그쵸? 그 지랄하는 사람이 정상일 수가 없지. 왜, 뭔데요?”

“아니 뭐. 토요일에 도와주러 오는 것도 그렇고. 평소에 잘 하는 사람이었으면 재무팀에서 보내줬겠나 싶어서.”

“그렇다니까! 주말에 굳이 도와주러 온다는 것도 그렇고, 보정까지 하는 것도 그렇고. 아니 누가 다른 부서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다 흑심이지 뭐. 진 주임 보라고 하는 거야, 그런 거 다. 각이 딱 나오네.”


김 주임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뭐가 잘못됐으며, 왜 이 상황에서 누군가 욕을 먹어야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안 과장의 반응으로 그는 이유를 깨우쳤다. 장 대리가 우 주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씩 풀어놓을수록, 안 과장은 처음의 그 의기양양한 미소를 회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쯤, 셋은 회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과장님은 진 주임이랑 그렇게 친한데. 끝장 볼 생각은 없어요?”

“왜 없겠어.”

“아니, 언제 보시게요. 솔직히 진 주임한테 차인 남자가 한 둘인가? 워낙 철벽이라 친한 남자도 없잖아요. 사실 그 분이랑 그렇게 오래 붙어 다닌 남자는 안 과장님뿐일 걸요? 진 주임도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 앞에 선 안 과장은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머리 위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쯤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때가 되면 해야지.”

“크으- 안 과장님, 와. 곧 결혼 하는 거 아닙니까? 축의금 난리 나겠는데?”

“무슨 소리야, 결혼은 무슨, 벌써.”

“아니 뭐. 둘 다 적령기니까 그럴 수 있죠. 워낙 과장님 평이 좋으니까 회사 후배들은 웬만하면 다 올 텐데. 첫 사내 커플 되는 겁니까? 결혼 하면 누구 한 명이 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주리가 쉬어야지. 일은 내가 하고.”

“크으- 남자네, 남자야. 멋지다 과장님.”

“됐고, 난 일 있어서 재무팀 좀 들렀다가 올라갈게. 장 대리 이따 시간 되면 술 한 잔 할까?”

“좋죠. 저녁은 늘 괜찮습니다. 과장님하고 먹는 거면 무조건 비워야죠.”


안 과장은 껄껄 웃으며 장 대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이 닫힐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던 장 대리는, 이내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대며 한 숨을 내쉬었다. 김 주임은 그런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자세를 바로 잡았다.


“뭘 봐.”

“아, 아닙니다.”

“야. 쓸데없는 데에서 기합 든 척 하지 말고. 이럴 때는 편하게 해, 편하게. 일만 잘하면 돼.”


아까보다 훨씬 편한 자세로, 굳이 말하자면 더위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마냥 엘리베이터에 늘어진 자세로 벽에 기댄 장 대리는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 대리님.”

“왜.”


하고 싶은 떠오르는 질문들이 많았지만, 김 주임은 거르고 걸러서 하나만 물어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기 직전,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짜로 진 주임님이 안 과장님을 좋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장 대리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김 주임을 쳐다봤다. 문이 열리고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장 대리는,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대답을 흘리며 문을 나섰다.


“몰라. 그게 뭐,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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