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포기를 삽니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최대한 빨리 걸어 나갔다. 뛰지는 않았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은 아니었고, 뛸만한 장소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해 자꾸만 화가 치밀 뿐이었다. 다만 누구에게 내야 할지 모르는 화라서, 구석에서는 죄책감도 모기향 연기마냥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차였다.
“출입증 없으세요?”
내가 대답하기 직전, 입원 병동으로 향하는 자동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타났다. 나는 지친 기색의 엄마를 따라 널찍한 복도를 걸어갔다. 바닥과 벽이 온통 하얀색인 병동 복도 곳곳에는 온갖 약품이나 기구가 딸린 카트가 굴러다녔다. 몇 개의 방을 지나, 엄마와 나는 복도 끝에서 두 번째의 6인실로 들어섰다.
병실은 조용했다. 야간의 비행기처럼 불이 다 꺼진 방 안에, 두어 군데의 침실에서만 커튼 너머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문 바로 오른쪽의 커튼을 젖히고 들어갔다. 어제 콩국수를 만들고 잠에 드셨다던 할머니는 그 침대 위에 똑바로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오늘 갑자기 숨을 못 쉬시더라고……. 놀래서 응급실 갔다가, 오늘 하루 종일 검사 받고 입원한 거야.”
빨대 구멍만큼 열려있는 할머니의 입에서는 연신 바람 새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조그만 몸은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그것이 큰 운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색색거리는 소리와 함께 위 아래로 힘겹게 들썩였다.
이런 일이 닥치면 금방 울음을 터뜨릴 줄 알았던 어머니는 의외로 차분했다. 그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지친 기색으로 할머니의 발치에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혹여 다른 환자들을 깨울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할머니를 내려다봤다. 환자복 아래 드러난 늘어진 팔은 검붉은 자국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 조그만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고, 호스는 다시 할머니 발치에 세워진 이름 모를 수액과 연결되어 있었다.
“검사가 너무 힘들어서 바로 잠드셨어. 내일까지는 계속 검사 해봐야 한대.”
괜히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 곳에 따질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다못해 연락할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화면을 몇 번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다시 할머니를 내려다봤다. 사실 언제든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찾아올 줄을 몰랐고, 또 하필 그것이 오늘일 줄을 몰랐을 뿐이지.
‘가족과의 식사를 한 번 포기하시면 됩니다.’
그래, 근데 그 식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는 안했었지!
나는 미소를 짓던 그 수염 남자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지쳐서 눈도 안 마주치고 모니터만 보더니, 그런 말을 할 때만 꼭 웃고 있던 그 인간. 분명 영업사원 같은 거다. 인생을 말아먹을 것들을 팔면서, 안 팔릴 사람은 스쳐 보내고 팔릴 사람은 조금씩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길거리 다단계 직원이나 광신도 같은 사람!
으득. 이가 갈렸다. 나는 자꾸 뒤척여서 묶어뒀다는 할머니의 팔과 침대 난간의 손수건을 어루만지다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부터 퇴근하면 엄마랑 교대 좀 해줘. 두 시간만. 엄마도 밥 먹고 씻고 오게.”
“그럴게.”
“금방 퇴원하면 좋은데…….”
엄마는 한숨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대충 무슨 뜻인지 알고 있던 터라, 또 뒤에 이어질 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던 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잠에 들자마자 꿈속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오늘은 뭘 사러 오셨나요?”
“똑똑히 말해 봐요.”
내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문가에 서서 말하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안경 너머 그 커진 눈동자도, 그 밑의 검은 그늘과 축 처진 어깨, 움푹 파인 볼에서 나오는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포기하라는 가족 식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왜 말 안했어요?”
남자는 픽, 하고 웃었다.
“우수하씨.”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는 나를 만나고 처음으로 안경을 벗었다. 자신도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그 상태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곧 눈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제가 가족과의 식사, 라고 했죠. 할머니와의 식사가 아니라.”
“그게 - ”
“그리고 왜 마지막일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아직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꿈속의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치민 화를 삭이며 나는 남자의 대답을 천천히 곱씹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젠장.
“저희는 신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그렇게 된 건 유감입니다만, 저희도 알지 못했던 일이고요.”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분명했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가까이에서 살펴본 남자의 얼굴에는 별다른 기색은 없었다. 거짓말의 냄새, 비웃음의 흔적, 잠깐이라도 퍼졌을 냉소의 파문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흔적들을 찾기엔, 남자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진행될 뿐입니다. 저희는 그 중에서, 수하 씨가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쉽게 갖도록 도와드리는 것뿐이고요. 할머니의 건강은 전부터 쭉 안 좋아지고 있었지 않아요?”
꿈속의 나는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이었습니다, 그건. 알겠죠?”
“만약에.”
나는 턱을 괴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할머니를 다시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면…….”
“가능하죠. 그에 걸맞은 것을 포기 하신 다면요.”
남자는 별로 의외의 질문도 아니라는 듯 여유롭게 대답했다. 어느새 그의 혈색은 방금 전 보다 조금 나아져 있었다. 지저분하게 기른 수염과 머리카락은 여전했지만, 피부색도 밝아지고 눈 밑의 그늘도 사라졌고. 뭣보다 없던 움직임이 생겼다. 처음에는 모니터를 쳐다보던 눈을 내게 돌리는 것도 힘겨워하던 사람이, 이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온갖 몸짓을 섞어가며 말을 하고 있으니.
“뭘 포기하면 되는데요?”
“진주리 씨요.”
“이런 씨발!”
“우수하 씨, 진정하세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남자를 노려봤다. 그런 상황에도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고, 그런 모습은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장난쳐요?”
“우수하 씨.”
“아니, 전부터 짜증나게, 대답도 안 듣고 하루를 그냥 포기하라고 하질 않나, 누구 칭찬을 포기하래서 했더니 그 인간이 내 욕을 하고 앉아있고. 가족과의 저녁식사 한 번만 포기하랬더니, 영영 같이 밥을 못 먹게 만들었잖아! 근데, 그걸 좀 만회하려고 했더니 이제는 지금까지 공들여온 사람을 포기하라고?”
“우수하 씨. 이해합니다.”
그렇게 다 쏟아내는 동안, 남자는 다시 이전의 진중함을 되찾았다. 그는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서 계속 나를 쳐다보다가, 말을 마치자 별다른 대답 없이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딱히 그 모습이 무례하거나 격하지 않아서, 나는 씩씩거리면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우수하 씨는 드디어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꾸 가르치는 식으로 지껄이지 말고, 똑바로 설명해요.”
“오, 그럼요. 우수하 씨는 지금 삼십년 가까이 살아오며 느끼고 있던 걸, 다시 새롭게 알게 된 것 뿐입니다.”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아리송한 말에, 나는 버럭하기보다 더 듣기를 택했다. 내가 계속 씩씩거리며 노려보자, 남자는 마치 총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두 손을 느릿하게 펼쳐 보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인생에서 모든 걸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포기하는 것도 생기죠, 대부분의 경우 몇 배로 더 많이.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도, 이 말에 동의 못하는 사람도 없겠죠?”
남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대답을 구하듯, 눈썹을 한 번 치켜 올리며 허공을 쳐다봤다.
“우수하 씨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다만, 저희를 통해 겪다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죠. 수하 씨, 지금까지 짝사랑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아마…….”
“……열 한 분 정도 될 겁니다. 자,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위해 꽤 많은 걸 포기하지 않았었나요? 친구와의 약속, 가족과의 식사, 그 때는 간단하다고 느꼈던 것들. 체면을 포기하기도 하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말도 걸어보고. 그랬었죠?”
남자는 갑자기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그렇게 포기해서 성공한 연애가 몇 번이나 됐죠?”
“…….”
입모양이 동그랗게 열렸지만, 말 대신 그 모양이 대답이라도 되는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곳에서 한 방 먹은 기분이어서, 나는 멍하니 남자가 말을 계속 하는 걸 들을 뿐이었다.
“인생이란 녀석은 ‘내가 이만큼 포기했으니 이걸 내놔라!’ 라고 따져도 다 내놓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럼 뭘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하는데?’ 라고 따진다고 해서 그걸 알려주지도 않죠. 안타깝지만 우리가 사는 삶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불합리하고, 불공평하죠. 수하 씨가 겪은 일들? 누군가의 험담, 지옥 같던 하루, 할머니의 입원? 안타깝습니다. 안타깝고, 수하 씨가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저희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아니 그럼 왜 포기를 산다고…….”
“대신에, 저희 덕에 뭘 얻었는지 생각해보시죠.”
나도 모르게 며칠 전부터 기억을 돌이켰다. 주리 씨와의 대화, 사진에 대한 이야기. 식사, 회사 사람들 앞에서 같이 밥 먹었다는 티도 낼 수 있었지. 밤 산책,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설레기도 했고, 주리 씨의 한 마디는 아직도 마음에 맴돌고 있다.
‘……보려고 따라 나온 거였는데.’
“말씀하셨던 것들은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
주리 씨와의 시간, 대화,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괜히 신경 쓰게 된 사람도 생기기도 했고. 하지만 남자의 말도 맞았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던 주리 씨와의 대화도 성공했고, 밥도 같이 먹고, 산책도 같이 할 수 있었지. 생각해보면 내가 용기를 낸 건 없었다. 처음에도 주리 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고, 밥 약속도 주리 씨가 먼저 제안했었지. 밤 산책? 아예 그녀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포기는 해요. 다만 포기를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은 아니죠.”
남자는 다시 몸을 뒤로 당겼다. 그는 의자에 거의 눕듯이 앉고는,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깍지를 꼈다.
“저희는 확실하게 얻고 싶은 걸 얻게 해드릴 뿐입니다. 지금까지 저희에게 말씀하신 것 중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었나요?”
“하지만…….”
짜증났지만, 더 짜증나게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님의 일은 유감스럽습니다. 쾌차하시길 기원하죠. 다만 저희가 한 일은 아닙니다.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뿐이지.”
“알았어요.”
나는 남자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허공을 쳐다보는 내 눈치를 읽은 것인지, 남자는 한참동안 그 자세로 내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썩 석연치 않았지만, 달리 더 물어볼 말도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주리 씨를 포기하실 건가요?”
곰곰이 생각해봤다. 평소였다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그래, 여기서 할머니를 살려달라는 소원을 빌어봤자, 정말로 할머니를 건강하게 되돌려 줄 리는 만무했다. 혼수상태로 십년을 더 살게 하거나, 훨씬 더 심각한 중병을 안겨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남자를 빤히 쳐다본 채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웬일로 내가 포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남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퍼지는 그 느릿한 속도와 비슷하게, 마음 한 구석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물감이 번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