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극히 평범한 날의 밤(1)

by 봄단풍

“콜록, 콜록!”


누군가 그랬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주마등처럼 옛 일이 스쳐지나가거나,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한탄을 하게 되거나, 지금까지는 잘 살아온 걸까 돌아보게 되거나하는 일은 모두 영화나 드라마에서 지어낸 것이라고.


“콜록..!”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뭐가 됐든 일단 나가야하는데, 그렇게 익숙했던 곳인데도 길이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아흑..!”


숨을 쉬지 않아도 알아서 들어오는 냄새는 계속 기침을 하게 만들었고, 눈을 뜨지 않았는데도 기어들어오는 연기는 계속 눈물을 흘려보냈다.


“허윽..! 콜록, 콜록!”


손을 여기저기 뻗어봤지만 전부 뜨거워서 만질 수도 없었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구분도 어려워졌다. 기를 쓰고 발을 옮겨봤지만 뜨거운 어딘가에 부딪혔고, 나는 그렇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우웩......!”


바람소리처럼 후욱거리면서 불꽃이 여기저기서 나풀거렸고, 타닥거리면서 바닥이 타들어가는 소리도 소름끼치도록 크게 들렸다. 자꾸만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온 몸이 익어가는 기분,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타는 느낌에 기침이 저절로 나오고, 감은 눈에서도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차라리 그냥 여기서 정신을 놓아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요! ...없죠!?”


갑자기 누가 뒷 목을 확 잡아채는 바람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있어요!!”

“콜록, 콜록..네?! 뭐라고요!?”

“눈 감고 있어요!!”


누군가는 내 귀에 대고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꽉 감았고,

몇 초 뒤에는 갑자기 시원해진 바깥 공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콜록, 콜록!!”


온 몸을 태울 것 같던 열기도, 숨을 틀어막던 냄새와 눈을 따갑게 찔러댔던 연기도 모두 사라져있었다. 그럼에도 눈을 다시 깜빡거리면서 뜨는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콜록, 콜록!”


아직도 목 언저리에 남아있는 매연을 내보내려고 기침을 하다가 겨우 눈을 뜨자 익숙한 동네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아까 내 뒷 목을 잡아당겨 일으키고, 내 귀에 대고 소리치던 사람은 없었다. 꼭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바뀐 주변 풍경에 나는 아스팔트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 오늘 오후 세시경, 서울 시내 한복판의 한 아파트 상가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발생한 지 다섯 시간만에 진화작업을 완료했는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 퍼지고 있는 의문의 남자가 현장에 있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해 때마다 나타나서 사람을 구해주고 사라진다는 의문의 남자. 그는 정말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루머에 불과한 것인지, 과연 이번에는 그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인지. 김주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

[오늘 오후 세시, 용산구의 한 상가. 주위에 여러 채의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한 이 상가는 총 8층 높이로,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잘 생각해봐. 흘린 거 없어?”


아라는 날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묶지 않아 길게 흘러내린 그녀의 검은 생머리가 허공에서 펄럭거렸다.


“아니 어....어......없을 걸?”

“너 혼자 다녀오면 불안해가지고 내가 진짜!”

[...건물의 형태와 주요 골자만 남긴 이후에야 화재는 진압됐습니다. 현재 소방당국은 화재가 번진 속도가 빠르다는 점과 처음 화재 발생 시점의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원인을 분석중에 있습니다.]

[화재의 규모가 컸던 만큼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가 깊습니다. 김주현 기자, 부상자나 사망자는 확인이 됩니까?]

[앞서 언급하신대로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습니다만 연기에 질식했거나, 1도 이하의 경미한 화상을 입은...]


아라가 뉴스에 집중하는동안 나는 벌 받는 학생처럼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서 있었다. 늘 화난 아라 앞에서는 그런 모습이 된다. 둘 다 스물 다섯 살이니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는데도 말이지.


[김주현 기자, 재해 때마다 나타나서 인명구조를 돕고 사라지는 남자. 그 의문의 남자가 이번 화재 현장에도 나타났다는 증언이 있었다는데요. 그 사실은 확인이 됩니까?]

[네.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가 없었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상가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생존자가 바로 그 의문의 남자와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아라가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대화를 해...?”

“아니, 안했어! 진짜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확인이 됩니까?]


나는 재빨리 식탁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앉으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몇 초간의 공백을 둔 후, 모니터 속에서 마이크를 든 현장의 기자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화재 현장에 있었던 모든 분은 근처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 원인 파악과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환자에 대한 모든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직접 그 남자를 만났다는 시민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휴우...”

[....대신 그 시민을 처음 발견한 분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어?”


화면은 곧 녹화 영상으로 전환됐다. 온통 초점이 흐려진 영상과 함께,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가 곧바로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이 헛소리를 하니까...]

[헛소리요?]

[네에, 아니 온통 다 거무튀튀하게 그을려가지고 머리도 산발이고 그런 여자가 길바닥에 누워가지고 살려달라고 하고 있으니까... 근데 불났다 어쨌다 하길래 보니까 진짜로 저어기 아파트 상가에 불이 난거에요.]

[왜 헛소리라고 생각하셨어요?]

[아니, 자기가 저기서 나왔다고, 저기있는 소방관들한테 데려다달라고 그러는데.. 아니 거기서 나온 사람이 왜 다시 가려고 하냐고, 그러니까 누가 자기를 여기로 보냈다고 하는데 그 때부터 뭐 횡설수설하니까..]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됐고, 곧 다시 기자의 얼굴이 화면에 비춰졌다.


[지금 이 곳이, 바로 목격자가 처음 그 시민을 발견했다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화재가 발생한 상가는 제 뒤쪽, 두 채의 빌딩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환자가 화재 현장을 탈출한 뒤 걸어나오기에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김주현 기자, 그렇다면 그 시민을 화재현장에서 지금 있는 장소까지 옮겨줬다는 사람, 그 사람이 지금으로써는 의문의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것인지요?]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황을 미루어볼 때, 환자가 건물을 탈출하기 직전 대화를 나눴다는 사람은 그 사람 뿐이라는 점, 그리고 짧은 시간 내에 이동하기 어려운 거리를 뛰어넘어 발견되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는 그렇게 생각해도...]

“휴.”


아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더 안 들어봐도 돼?”

“응. 생각해봐, 네가 진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면 그걸 맨 처음 물고 늘어졌을 거 아냐.”


아라의 말대로 기자와 아나운서의 인터뷰는 몇 마디 이후 끝났다. 뉴스는 곧 어느 아이돌 그룹의 데뷔 1주년 이벤트를 소식을 내보내며 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어째, 의자에 앉은 아라의 눈은 여전히 매서웠다.


“그래서. 급하게 구하러 가느라 할머니랑 내가 아울렛 가서 골라준 옷을 홀라당 태워먹었다, 이거지?”


아하.


“아니, 그.... 원래는 물을 끼얹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겠지, 그치?”

“그치. 아니 그보다 물을 끼얹을만한 데가 없더라고.”

“그래서 옷은 어떻게 했는데?”

“아니 뭐.. 거기... 거기 그..”

“설마 그냥 버리고 온 거야?”


아라의 목청이 높아졌다. 이 쯤 되면 반발은 무의미하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어깨를 떨궜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너! 네 사진도 안 찍히고 아직 흘린 것도 없는데 벌써 뉴스에서 네 얘기하는 거 봐. 벌써 유튜브에서도 너에 대해서 몇 개 올라온 거 알지? 그러다가 실마리 하나라도 터지면 그냥 그걸로 끝이라니까? 지금 네가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퍼져봐. 사람들이 널 가만 두겠어?”


그건 그렇지. 내 능력은 분명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 뻔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뭘?”

“재미들린 건 아니지?”

“아니, 야.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어떻게 재미가 들리냐.”

“그게 아니라. 저렇게 방송에서 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거에 재미 들린 거 아니냐고.”


그냥 아니라고 말하면 됐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대충 고개를 젓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아라 앞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거짓말을 하거나 억지로 내 본심을 숨기는 것이, 저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는 아라 앞에서는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조심해, 정말로. 말 한 마디나 발자국 하나로도 네가 어디 사는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야. 지금이야 유튜버 한 두명이지만, 오늘 뉴스도 나갔으니 다들 조횟수 벌어먹으려고 득달같이 너에 대해서 캐고 다닐 걸.”

“알았어, 알았어. 조심할게.”


아라의 표정이 한결 느슨해졌다. 여전히 인상은 찌푸리고 있지만, 지금은 훈계보다 걱정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했잖아, 정부는 널 가만히 두겠어? 기업들은, 기자들은? 사람들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무서운 일들이 생길 수 있는 거잖아.”


아라의 잔소리가 듣기 힘든 건, 첫째로 그녀는 대부분 맞는 말만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녀의 걱정은 진심이라 농담으로 흘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능력을 갖게 된 후 곧바로 아라에게 털어놓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혼자서 그 모든 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라는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나를 더 위해주는 친구니까.


“...아무튼. 고생했어.”

“어?”

“내가 말 안 해줬는데도 알아서 사람들 구하러 간 거잖아.”

“그거야 뭐.”

당연한 거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누구라도 일단 119에 신고를 하지 않겠어?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능력이 있으니 직접 행동에 나설 뿐이지.


“얼른 씻고 와. 할머니가 너 먹으라고 가래떡 구워두셨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려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보면 아라랑 같이 사는 것 같겠지만 절대 아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소꿉친구라고는 해도 엄연히 아라는 자기 집이 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 할머니랑 친해서 놀러오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뿐이지.


몇 분 뒤, 가래떡으로 대충 저녁을 때운 나는 곧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야, 너 자소서는 썼어?”

“어차피 하반기 다 지나갔는데 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라의 매서운 눈빛이 이마에 꽂혔다. 무슨 뜻이냐하면, 똑바로 대답하지 않고서는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지난 번에 써둔 걸로 틀은 잡아뒀어.

“복붙한다고?”

“그.... 얼른 바람만 좀 쐬고 들어와서 쓸게.”


이번에 다시 한 번 아라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너 수상하다?”

“뭐가?”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거 아니지? 어디 또 능력을 좀 쓸만한 데가 없나 하고.”

“어....”


이래서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가 무서운 거다. 대충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게되니까.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로, 아라의 약한 부분은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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