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다연(1)

by 봄단풍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마지막 학기인 요즘은 두 과목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도 일주일에 두 번만 가면 됐다. 물론 캠퍼스의 그 긴 오르막을 걷고 있으면 사람 없을 때 그냥 슬쩍 능력을 써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요 며칠동안은 꾹 참았다. 아라의 잔소리는 견딘다 치더라도, 며칠 전 남산 먼 발치에서 마주쳤던 여인의 모습은 시시때때로 내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것이다.


“세일 그룹은 제출 했지?”

“어.”

“다른 회사 공채도 보고 있어?”

“어.”


학생 식당에서 샐러드를 집어온 아라와 달리, 라면에 치즈까지 추가한 나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휘휘 저으면서 대답했다.


“근데 지금 거의 다 끝나서 뭐......”

“너 지금까지 몇 개 썼어?”

“어? 세일까지 하면 아홉 개?”


샐러드 뚜껑을 따던 아라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머지 않아 폭풍같은 잔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우리나라에 기업이 몇 개인줄은 아느냐, 대기업과 그 계열사만 썼어도 오십 개는 썼을 거다, 다른 애들은 몇 개 쓴 줄 아느냐, 언제까지 알바로 할머니와의 생계를 이어갈 것이냐......


하지만 아라의 잔소리에 도무지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에 틈이 생길 때마다 남산에서 마주쳤던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혹시 지금 여기 어디에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야, 야. 뭐해? 듣고 있어?”


다행히 복작거리는 학생 식당 어디에도 가죽 자켓 차림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보이는 옷들은 바닥에 끌리는 트렌치 코트와 조금 이르게 껴입은 패딩, 운동부의 바람막이나 야구잠바 등등. 스키니진에 하얀 니트, 검은 가죽 자켓과 워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였다.


“......”


나는 그렇게 몇 번을 더 둘러보다가, 그제야 아라가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냐, 아무것도. 그...... 더 찾아볼게. 11월 전에는 많이 열리겠지 뭐.”

“...... 너 뭐 실수한 거 있냐?”

“어?”


아라는 여전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큰 눈을 한 번도 깜빡이지 않으면서, 꼭 내가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내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플라스틱 포크를 식탁 위에 내려놨다.


“맞지? 너 뭐 흘린 거 있지?”

“뭘 흘려, 흘리긴.”

“아니면 들켰냐?”

“어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면서 뒤로 어깨를 젖혔다. 황당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아라를 위 아래로 훑어보고, 헛기침을 한 두번 하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서 소근거렸다.


“들키긴 누구한테 들켜, 요새 능력은 쓰지도 않았는데.”

“......”

“그리고 밖에서 이런 얘기하지 말라며?”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젓가락을 집어들었지만, 아라는 눈을 거두지 않았다. 꼭 용의자를 취조하는 경찰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샐러드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수상한데.”

“수상은 무슨...... 나 집에 간다.”

“야, 잠깐. 너 집 갈 때 그냥 지하철 타고 갈 거지?”


사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 되물었다.


“왜?”

“왜긴 왜야, 불안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나 없을 때는 사고 현장 같은 것도 찾아다니지 말고.”

뭐라 반박을 하려다가 아라의 부릅 뜬 눈을 보고,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집에 가는 길에 바람 쐬는 정도는 괜찮지 않아?”

“안 돼! 너, 나한테 얘기를 안할 뿐이지 뭔가 찝찝한 짓을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훨씬 빠르잖아. 시간도 아끼고.”

“지금 그게 중요하냐!?”


마침내 아라가 폭발하고 나서야 나는 후다닥 먹던 음식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달리 정리할 거라고는 다 먹은 플라스틱 상자 뿐이었던 아라는 그 때부터 학교 정문을 나설 때까지 따라붙어 잔소리를 퍼부어댔고,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후다닥 거리로 발을 옮겼다.


“야, 야!! 잠깐만.”


막 학교 정문을 나서려는 내게, 아라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거 가져가.”

“뭔데 이게?”


부스럭거리는 비닐을 뜯고 아라가 내가 준 건 안면 마스크였다. 옆으로 넓적한 8자처럼 생겨서 눈 주변과 코를 덮는, 얼굴의 위쪽 절반을 가리는 검은색 마스크. 가끔 축구 선수들이 코를 다치면 쓰곤 하는 안면 보호대 같았다. 두툼한 스펀지 재질의 테를 꾹꾹 눌러보니 꽤 단단한 프레임이 만져졌다.


“이건 왜?”

“너 요새 뭔가 수상해서 그래. 순간이동 할거면 그렇게라도 가리고 다녀라, 좀.”

“이런 건 또 어디서 났어?”

“아는 오빠. 간다.”


아라는 그리고 곧바로 몸을 홱 돌려서 다시 캠퍼스 안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주섬주섬 배낭에 마스크를 챙겨넣고 거리로 발을 옮겼다.


이제 막 오후로 넘어간 시간. 대학교 앞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술집이 늘어선 골목은 아직은 한산했다. 술과 식자재를 옮기는 몇 대의 트럭을 지나 아무도 없는 골목에 들어선 뒤에 나는 가까운 건물의 옥상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눈을 뜨자마자 팔에 잡히는 옥상 난간을 익숙하게 뛰어넘은 내 앞에는, 어느새 지붕 아래 번화가의 전경이 펼쳐졌다.


“후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능력을 쓰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말 못할 비밀이 생겼을 때는 더더욱. 아라에게조차 얘기하지 못한 비밀이 생겨 버렸으니까. 그만큼, 며칠 전 밤에 마주친 여인은 내겐 큰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지금도 쫓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재빨리 허리를 낮추고 난간 너머로 주위를 살폈다. 한참을 살폈지만 다행히 긴 머리카락이나 검은 라이더 자켓, 스키니진차림의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겠지.’


사실 능력을 사용하는 건 며칠은 더 참을 생각이었지만, 막상 아라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가슴이 더 답답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책가방에서 아라가 준 마스크를 꺼냈다. 그래,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일단 시키는 대로는 했다고 해야 잔소리를 덜 들을 거다. 유비무환이라고. 설령 들키더라도 눈만 깜빡하면 어디로든 도망갈 수 있을테니 뭐가 걱정이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옥상 난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곧장 순간이동으로 건너편 건물 옥상 난간에 매달렸다.


“흐읍!”


몸을 위로 튕겨서 올라간 뒤, 텅 빈 옥상을 달렸다. 그리고 건너편 난간에 손을 짚고 뛰어넘어서 허공에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앞에 보이는 건물의 옥상으로!


타닷, 소리와 함께 두 발은 시멘트 바닥에 착지했다. 또 다시 새로운 건물의 옥상을 달려서, 이번에는 훨씬 멀리 떨어진 건물의 옥상을 쳐다보고 초점을 맞췄다. 발을 디딜만한 난간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달리다가, 나는 다시 한 번 난간을 뛰어넘어 허공으로 도약했다.


“하압!”


몸이 공중에 떠 있는 짜릿한 감각. 그리고 그 짜릿함이 밑으로 떨어지는 두려움으로 바뀌기 직전, 눈을 감았다 뜨면 곧바로 두 발과 손에 닿는 튼튼한 난간과 바닥. 짜릿함과 안정감을 오가는 스릴은 이 능력을 갖게 된 후 가장 먼저 익히게 된 놀이였다.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보다도, 가끔은 택시보다도 목적지로 빠르게 가는 방법이기도 하고!


건물 수십 채의 옥상을 넘고, 큰 로터리를 한 번에 지나서, 수십 층 건물의 창문에 매달렸다가 아파트 난간에도 매달렸다가, 그렇게 나는 수십 번 눈을 깜빡이며 한강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옥상을 달리고, 난간에서 뛰어내리기도 반복하면서. 그렇게 몇 분만에 나는 한강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옥상까지 도착했다.


“휴우!”


해방감. 대단한 퍼포먼스는 아니지만, 길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먼저 머리부터 들이미는 자동차를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직각으로 그려진 도보를 따라 인파에 파묻혀서 걷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니까!


‘사는 것도 이렇게 편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한강을 코앞에 두고, 나는 어느 아파트 옥상 난간에 다리를 걸치고 앉았다. 이제 눈만 깜빡이면 한남대교로 순간이동할 수 있는 곳.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각, 겨울이 눈 앞에 다가와있어도 한강은 눈이 부셨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한강에 얼굴을 한 가득 비추고 있는 태양. 강변을 따라 놓인 도로에는 이 시간에도 차들이 열심히도 달리고, 인도에는 온갖 차림새의 사람들이 오고 가고.


그리고 그 중에 옥상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며칠 전 그 여자는.’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도 위를 쳐다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다른 걸 찾고 있었겠지.’

그렇다기엔 나만큼이나 빠르게, 그것도 소리없이 공간을 이동한 건 설명이 안 된다.


‘잘못 본 걸 수도 있고.’

그건...... 그럴 수 있지. 아니 물론 기억이야 생생하지만, 원래 착각일수록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도 있는 거잖아.


“끄응......”


며칠 내내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 날 저녁 마주쳤던 여인은 아무도 아닐 것이란 생각의 근거는 이제 몇 초만에 전부 되뇌일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도 몇 번이고 납득했지만 정작 마음에서는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


정리되지 않는 머리를 정리하려고 애쓸 때, 문득 이상한 걸 본 기분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왜, 생각에 잠겨있으면 눈을 뜨고 있어도 보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뭐가 지나가도 모르다가 한참 뒤에야 알기도 하고. 지금이 그랬다. 분명 내가 보고 있는 경치에 뭔가 이상한 게 있는데 뭔지 곧바로 말하기 어려운 느낌.


“어?”


다리에 사람이 있었다.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가는 대낮의 한남대교 한복판, 사람이 잘 지나가지 않는 인도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래, 그건 뭐 이상할 건 아닌데.


“......어어어?”


그 사람은, 난간 밖에 있었다.

그러니까 난간 바깥쪽에 서서, 두 팔을 뒤로 뻗어 난간을 잡고 매달려있었다.


“왜, 왜 저래?”


나는 황급히 가방을 고쳐멨다. 만약에 저 사람이 진짜 한강으로 뛰어내릴 작정이라면 되도록 공중에 뜨기 전에 잡는 것이 좋으니까! 나는 후다닥 한남대교 초입으로 순간이동했다. 어차피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낮에도 흔치 않고, 운전하는 사람은 속도를 내느라 인도를 볼 겨를은 없을테니.


멀리 그 사람이 보였다. 타이타닉의 명장면 처럼 난간에 매달려서는, 금방이라도 강으로 뛰어들 것 같은 여자가. 펑퍼짐한 하얀 니트 아래에는 발목까지 덮는 하얀색 긴 치마를 입고, 어깨를 덮는 갈색머리는 뒤로 펼쳐놓은 그녀는 난간 바깥쪽에 서서, 두 팔로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저기요!”


목청껏 부르면서 그 쪽으로 달려갔다. 능력을 쓰면 바로 옆에 가서 잡을 수 있지만, 오히려 놀라서 한강으로 떨어질 위험도 있으니까.


“저기요?!”


하지만 여자는 들리지 않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강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갈색 머리카락은 강바람에 뒤로 펄럭이고, 긴 치마도 따라서 나풀거리고 -


그리고, 그녀는 난간을 잡았던 손을 놨다.


“!!”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바로 그 여자가 있던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잠......!”


여자는 이미 허여멀건한 물체가 되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중력이란 건 생각보다 무거워서, 눈을 깜빡이는 그 짧은 새에도 여자는 무서운 속도로 한강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무슨 말이나 생각을 꺼낼 새도 없이, 나는 얼른 눈을 깜빡였다.


“잡았ㄷ...!”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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