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면접(1)

by 봄단풍


집에 오니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다. 벌써 다섯시를 넘은 시간, 대충 라면을 끓여서 허기를 달랜 뒤 노트북을 켜놓고 핸드폰을 열었다. 부팅이 오래걸리는 노트북에 바탕화면이 떴을 때 나는 이미 11월 공개 채용 달력을 보고 있었다.


“야, 혼자 먹냐?”

“언제 올 줄 알고?”
“톡 보냈잖아!”

“아, 미안.”


아라는 그로부터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평소에도 우리 집을 제집 드나들듯 하긴 했지만, 내가 능력을 갖게 된 이후 유독 자주 들르는 그녀였다.


“또 넣을 만한 데 있어?”

“찾아보고 있어.”

“너무 재지말고 이름 있다 싶으면 일단 다 써보는 거야. 붙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니까? 일단 뭐 붙기라도 해야지.”


아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불과 몇 초만에 바탕화면과 메신저가 떴고, 아라는 빠른 손가락으로 금세 인터넷 창 세 개를 열었다.


“오, 11월에도 이름 있는 데 꽤 많이 뜨네.”

“어디?”


아라는 그렇게 강의를 시작했다. 그녀는 내 노트북에 공채 달력을 보면서, 자기 노트북 화면에는 회사 이름들과 공식 홈페이지를 몇 개 열어놓고 각 회사별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었으면 지루할만한 내용도 아라가 설명하면 차근차근 듣게 된다. 한참 몇 개의 회사를 설명한 아라는 곧 또 하나의 페이지를 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CK엔터도 11월 말에 채용하네. 그런데 여기는 부문이 두 개인데..”

“거기 연예기획사 아냐?”


물론 보통 연예기획사는 아니었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는 메이저급 아이돌 그룹이 여럿이고, 굵직한 예능MC와 영화배우는 물론, 최근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까지 영입하고 발굴해내고 있는 국내 최고의 기획사이자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스마트폰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야 겨우 뉴스 몇 개를 깔짝거리는 나였는데. 그런 회사의 업무가 나와 맞을 리가 없었다.


“하긴 뭐 너랑은 좀...... 요새 루머도 돌더라. 아이돌 그룹을 통째로 사온다고. 그 왜, 걔네 있잖아. 작년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뽑힌 애들.”

“어엉?”

“어, 그래. 걔네. 원래 그 오디션 프로그램 진행했던 방송사 소속으로 1년 활동한 다음에 각자 소속사로 흩어지는 거였는데, 팬들이 해체를 반대했지.”

“그래서?”

“아직은 그 상태야. 근데 뭐 여기서 통째로 영입한다는 루머가 돌더라고.”

“그게 그렇게 쉽게 돼?”


아라는 한숨을 쉬면서 나를 쳐다봤다.


“돈 많으면 명분은 아무거나 내세워도 돼. ‘케이팝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대승적 결단’. 그리고 뭐, 중소 연예기획사는 받을만큼 받은 다음에 ‘함께 길러온 누구누구를 보내는 건 뼈아픈 일이지만, 보다 큰 세계로의 발판을 위한 양보했다’ 라는 식으로 하겠지, 뭐. 나도 잘은 모르는데 말은 그렇게 하고 아마 CK가 어마어마한 돈을 주거나 하겠지?”

“넌 진짜 모르는 게 없구나.”

“네가 너무 사회 이슈에 관심이 없는 거야.”


아라는 혀를 쯧쯧 차면서 다시 내 어깨를 꾸욱 밀어냈다. 그녀가 자신의 노트북 앞 자리를 탈환하는 동안,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툭, 하고 머릿 속에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여기도 써야겠다.”

“어? CK엔터를 쓴다고?”


아라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TV도 안 보고 극장도 안 가는 애가 무슨 연예 기획사를 써?”


아라는 그렇게 물었다가, 곧 고개를 저으며 내 팔목을 움켜잡았다.


“아니, 맞지. 그렇지. 당연히 다 써야지. CK는 그래도 연예계 쪽에서 제일 직원 처우가 괜찮다고 하더라. 제일 큰 회사니까.”


아라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한 번 구기더니 말을 이어갔다.


“네가 이렇게 의욕을 보인 건 또 처음이네.”

“뭐......”


아라는 내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멍하니 있자니, 어쩐지 말없이 아라와 마주보고 있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어......”


괜히 시선을 돌리면서 어떻게 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다행히 핸드폰 화면이 울리며 문자가 도착했다.


[서류전형 결과 안내-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반기 공개채용의 1차 서류전형결과를...]

“뭐야? 세일그룹?”

“어, 어. 맞다, 오늘 발표였지.”


나는 황급히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핸드폰으로 이름과 생년월일을 타이핑하자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곧 빨간 글씨가 날 맞이했다.


“야, 뭐야? 뭐래?”

“에휴......”

“야, 괜찮아, 이제 또 쓰면 되지.”

“아닌데?”

“뭐가 아닌데야?”


나는 슬쩍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아라에게 보여줬다. 빨간색으로 ‘서류전형 합격’이라는 글자를 확대해서.


“야!!!”


아라는 다짜고짜 내 머리를 손으로 잡고 마구 휘둘렀다.


“야, 야, 야!!”

“아, 쫌! 좀, 오바하지마. 어차피 시험도 보고 면접도 두 번이나 봐야해.”

“야, 내가 쓰라고 했지, 어?!”


아라가 그토록 흥분한 건 처음봤다. 그녀는 한참동안 거실을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나한테 뛰어와서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흔드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아오, 진짜! 야, 야! 좀 진정해라, 어?”

“내가 뭐라 그랬냐, 다 쓰라고 했지? 쓰라고 했지, 어?”

“알았어, 알았어. 일단 좀 앉아.”


나는 황급히 아라의 팔을 잡고 의자에 다시 앉혔다. 하지만 앉기만 했을 뿐, 한 번 터진 그녀의 텐션은 내려갈 줄 몰랐다.


“야, 잠깐. 지금부터 놀 게 아니야. 일단 카페 들어가서 합격한 사람들 면접 스터디부터 만들어. 면접 후기도 찾아보고, 합격수기도 찾아보고. 아, 예상 질문이랑 답지부터 만들어야지. 요새 나온 뉴스 중에 세일그룹 언급한 건 다 찾아보고. 그리고......”

“아 네, 엄마. 그렇게 할게요. 아유 붙으나 떨어지나 이러나 저러나 잔소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첫 합격이다. 고작 열 개도 안 되는 자소서를 써놓고 한 개가 붙었다는 것도 분명 기적이긴 한데, 그래도 계속 탈락만 하면서 점점 수렁에 잠겨가던 자존감이 그나마 회복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국내 최고이자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세일 그룹 전자 부문이다!


나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1차 합격을 축하드린다, 면접은 내일 오전 10시, 복장은 자유롭게......


“야, 잠깐.”

“왜?”

“면접 내일인데?”

“어?!”


아라는 황급히 내 핸드폰을 뺏어서 확인했다. 방금 전의 텐션을 불과 한 순간에 내다버린 채, 그녀는 부릅 뜬 눈으로 한참동안 합격자 안내문을 읽었다. 한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눈동자만 굴리면서 화면의 글을 읽던 그녀는, 눈이 따갑지 않을까 걱정이 될 쯤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야, 이거...... 너 제대로 조회한 거 맞아?”

“맞지. 내 생년월일이랑 이름으로 한 건데.”

“피싱 아냐?”

“야이, 진짜. 말을 해도......”

“조심해. 그럴 수도 있어. 아니, 무슨 서류 합격 발표 다음 날에 면접을 보는 대기업이 어딨어? 너만 붙은 게 아니고 몇 백 몇 천명이 보러올텐데.”


그건 이상하긴 했다. 상시 채용도 아니고, 무려 두자릿수의 인원을 뽑는 공개채용인데 다짜고짜 내일 면접을 나오라니. 그리고 원래 세일그룹은 지원 부문과 관계없이 자체 제작한 직무적성검사를 보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면접을 보라고?


“일단, 일단 준비부터 하자. 너는 합격 수기랑 면접 후기 찾아보면서 예상 질문 뽑아보고 있어. 아, 시간 얼마 없으니까 나 올 때까지 50개 까지만 만들어놔. 나는 다른 걸 좀...... 너 옷 있어? 정장 있나? 빌려줄 사람 없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일 바로 면접은 좀 이상한데......”


아라는 그렇게 꿍얼거리며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두드렸다. 하지만 면접 준비를 하기 전, 나는 아라의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CK 엔터의 공식 홈페이지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저씨가 가져다 줄 수 있어요?]


불과 몇 시간 전 들었던 목소리.


“후우......”


뒷머리를 몇 번 긁다가, 나는 혀를 차며 노트북 화면을 닫아버렸다.


“수하야.”


그 날따라 늦게 들어오신 할머니는 어찌된 일인지 세탁소 비닐에 싸인 코트를 한 벌 들고 나타났다.


“내일 위에 이거 입고 가라.”

“어? 저 내일 면접 보는 거 알고 계셨어요?”


할머니는 비닐을 벗기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아라가 얘기해줬지.”


사려가 깊다고 해야할지,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할지. 나는 혀를 끌끌 차며 할머니가 건네는 코트를 받아들었다. 사실은 나중에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나중에, 완전히 합격이 확정됐을 때. 왜냐하면 괜히 말씀드렸다가 면접에서 떨어지면 아쉽기만 할테니까.


“근데 얼마 전에 제 옷은 샀었는데.”


할머니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건 새 옷이 아니고, 네 아빠가 자주 입던 코트다.”

“아빠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코트를 눈 앞으로 들어올렸다. 이제 사진이 없으면 기억이 희미한 아빠의 얼굴이 잠깐 스쳐지나갔고, 그 다음에는 단추도 하나뿐이고 옷깃도 좁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검은 코트가 보였다.


“입어볼게요?”


대답 대신 손짓을 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어색하게 코트를 걸쳤다. 왼팔, 오른팔. 어깨에 걸리는 깃을 평평하게 접어 누르고, 단추를 채우는 대신 앞을 손으로만 살포시 여미고. 특별한 장식도, 끈도 없는 기본적인 코트라 특별히 이상하지도, 엄청나게 예쁘지도 않았다. 그냥......


“깔끔하고 좋네요.”

“그치?”


손으로 쓰다듬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왔다. 본래 재질이 부드럽다기보다, 오래되어서 뻣뻣한 구석들이 많이 가라앉은 느낌. 거울로 보니 어깨와 소매는 딱 맞았다. 팔을 펴면 오히려 손목이 드러나는 정도.


“아빠도 키는 작았나보네요?”

“예끼, 그래도 비율은 좋았어.”


비율 얘기가 나와서 괜히 밑을 내려다봤다. 코트는 허벅지를 넘겨서 무릎에 닿을듯 말듯 했다.


“좋네요. 따뜻하고.”

“그치? 에휴, 이 모습을 네 아빠가 봤어야 했는데.”


나는 황급히 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었다.


“이거 아껴뒀다가 내일 잘 입고 다녀올게요.”

“그려, 근데 정장이 없어서 어떡해.”

“아니에요. 아라가 구해주기로 했어. 그리고 정장 아니어도 된다는데 뭐.”

“그려, 그려. 그, 면접 준비하느라 바쁘지? 얼른 준비해. 나는 먼저 잘게.”

“알았어요. 주무셔요!”


할머니는 마지막에 슬쩍 웃어 보이시고는 방에 들어갔다. 어쩐지 그 미소가 황급히 쥐어짜낸 것 같아서 나는 무거운 발로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세일그룹 인재개발부 전은경입니다. 우수하씨 맞으신가요?]

“아, 네! 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먼저 서류전형 합격 축하드리고요. 하하. 내일 오전 10시까지 저희 세일그룹 본사로 오시면 됩니다. 1층으로 들어오셔서 면접보러 왔다고 말씀드리면 안내해주실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복장은 편하게 오셔도 괜찮습니다. 정장이 아니어도 괜찮고요, 편하고 깔끔한 복장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네.”

[정상적인 면접 진행과 다른 지원자분들을 위해, 반드시 정시에 참석을 부탁드릴게요. 혹시 더 궁금하신 건 없으시고요?]

“네, 없습니다, 네.”

[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애초에 서류에 합격해 본적도 처음이라, 이렇게 전화를 받는 것도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사무적이지도 않고, 친절한 아줌마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그 목소리와는 다르게, 나는 그 날 통 잠을 못 이루고 악몽을 꿨다. 다연은 평가표따위 없어도 괜찮다며 울고 있었고, 그런 내 뒤에는 하얀 니트 위에 라이더 자켓을 입은 키 큰 여자가 무섭게 쫓아오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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