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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본(2016);내맘에 불질러놨던 형이 돌아왔네

by 봄단풍

* 철저히 팬심으로 작성한 리뷰이며,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본 시리즈를 처음 접한 것은 극장이었다. 『본 아이덴티티』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던 1편을 어린나이에 봤던 그 시절의 나는, 첩보물은 007이요 액션은 성룡이었으며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었다. 첩보물은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첨단 기술로 난관을 극복해야했고, 액션은 화려하면서 동시에 위트가 있어야 했으며, 당연히 영화는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을 통해 컴퓨터 바탕화면을 장식할만한 고화질 월페이퍼가 수십 장 나와야했다.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은 덤이요, 그 사이 러브라인은 덤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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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아이덴티티(2002)』. 이 땐 확실히 젊긴 젊다.


본 시리즈는 그 모든 기준을 깨버렸다. 첨단 기술 따위가 아닌 주인공 본인의 기억에 의존한 맨 몸 액션에, 난관은 그 때 그 때 즉흥적인 방법으로 헤쳐나갔으며, 화려한 CG가 아닌 핸드헬드 기법이라는 다소 어지러운 카메라 기법 하나만으로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었다. 심지어 그 흔한 러브라인조차 『본 아이덴티티』를 제외하고는 도무지 나오지를 않는다! 사실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 역시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캐릭터가 강해져서 기억을 했지 첫 시리즈인 아이덴티티를 보고 난 직후에는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나만이 가졌던 통념을 화끈하게 부쉈던 본 시리즈는, 『본 얼티메이텀』이라는 세 번째 작품을 통해 내게 안녕을 고했다. 당시는 물론 지금도 내게는 최고의 장면인 워털루 역 추격신과, OST가 기가막힌 타이밍에 흘러나오는 엔딩장면만을 남겨놓은 채. 완벽한 마무리. 그토록 깔끔하게 내게 마지막 인사를 했던 작품은 사무라이 참프루 이후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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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참프루』. 해바라기 향기가 나는 사무라이를 찾으려는 소녀와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두 검사(혹은 무사)가 함께 여행을 하는 이야기. 캐릭터의 개성도 뚜렷하고, 무엇보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힙합과 콜라보를 한 이색적인 퓨전 작품(심지어 OST도 힙합이다). 엔딩이 참 깔끔했다. 언젠가는 이 작품도 편하게 리뷰를 써봐야지.


돌아왔으면, 하면서도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만큼 전작인 세 편이 워낙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졌고, 그 자체로 첩보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을만큼 한 편 한 편의 완성도도 뛰어났었으니까. 대부분의 히트를 쳤던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돌아온다고 해도 작품성이나 수준과는 관계없이 일단 전작과 비교를 당하게 될텐데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기는 매우 어려우며, 그 비교 과정에서 날 선 비판을 많이 듣게 될테니까.


그리고 만 구년, 거의 십년 만에 그 형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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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제이슨 본(2016)』아이고 형님..


이야기.

늘 그렇듯, 제이슨 본은 국가에 대한 불신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국가가 국가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개인이 양보를 해야하는가. 만약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안보를 위해서, 그 국가가 세워진 기틀인 법을 어겨야한다는 모순이 발생된다면, 그것은 용납 가능한 일이며 또 만약에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용납해야하는가?


식상하다면 식상할 수 있는 주제고, 대척점에 선 인물의 캐릭터 역시 정형화되어있긴 하다. 출세를 위해 비리와 손을 잡았지만 양심에 의해 손을 씻으려는 젊은 사업가. 이 새로운 인물들이 제이슨 본과 엮이는 새로운 사건은, 보란 듯이 국가에서 시작한다. 감독인 폴 그린그래스가 다소 무정부주의자, 혹은 극진 좌파라고 평을 듣기도 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철학 자체보다는 제이슨 본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엄밀히 말하자면 늘 그렇듯 정부를 깐다). 허나 사실, 액션을 제외하고 이 제이슨 본에 대한 고뇌를 바라볼 때 설명이 다소 부족한 느낌을 받긴 한다. 제이슨 본에 대해서 다수의 평론가, 혹은 관객들이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하거나, ‘제이슨이 왜 개입하는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듯 하다. 엄밀히 말하면, 이해는 되는데 몰입이 안 된다고 해야하나(영화 및 액션에 몰입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제이슨이 고통스러워하고 그토록 분노하는 게 수학문제 풀 듯이 아, 이게 이래서 그런거구나 하고 이해는 되지만 이상하리만치 내가 같이 화가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전개 방식.

매 시리즈가 사실 거의 비슷하다. 조용히 살고 싶은 제이슨 본에게 CIA는 늘 뒤통수를 때리거나 이용하려하고, 결국 본이 사건에 자의(혹은 타의)로 개입하게 된다. 곧 CIA내부에 본에 동조하는 인물이 나타고 이를 통해 본은 새로운 정보를 입수한다. 이 과정에서 본이 자신에게 붙는 추격을 재치있게 빠져나가며, 이후에는 CIA 윗선이 고용한 독자적인 암살자, 혹은 전직 트레드스톤 멤버가 나타난다. 몇 번의 총격전과 난투극, 그리고 자동차 추격신이 서울로 치면 구 하나 혹은 두 개 크기의 도시를 박살내며 마무리.


간혹 시리즈 물 중에, 늘 같은 진행으로 욕을 먹는 작품들이 있다. 새로운 면이 없어, 늘 나왔던 그 내용이야. 본 시리즈 역시 충분히 그러하며, 이번 작품 역시 기존에 본 시리즈를 별 감흥없이 봤던 사람이라면 같은 비판을 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제이슨 본 영화의 이러한 행태는 사실상 하나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작품 하나에 빠져본 적 없는 사람이다 할지라도 기승전결이라는 형식 자체를 질려하지는 않으니까. 내게는 이 구성이 고전 시가부터 전해져 내려온 기승전결과는 또 다른 새로운 구성이다. 한 마디로 질리지가 않는다.


액션.

명불허전! 달리 할 말이 없다. 혹자는 맷 데이먼이 나이가 든 티가 난다, 액션이 기존 시리즈에 비해 부족하다고들 하지만 딱히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액션 등장 횟수, 혹은 초단위 재생 시간으로 재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카메라에 휘둘려다니느라, 정확히는 현장 분위기에 휘둘려 다니느라 맷 데이먼이 주먹을 몇 번 휘두르는지 셀 겨를이 없다.


늘 등장하는 시위, 혹은 붐비는 역 등 군중속에서 추격을 따돌리는 장면은 이번에도 등장한다. 카메라 때문에 어딜 때리는지 모르겠지만 좌우간 간결하고 깔끔한, 허나 처절하게 끝나는 맨손 격투도 등장하며,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스케일이 커졌던 자동차 추격신은 이번에 정말 그 극한을 찍은 듯 하다. 다소 정신이 혼미해질 수 있다.


촬영기법.

핸드헬드 기법의 장인답다. 초점 잡기도 어렵고 액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자세히 확인할 겨를이 없는 건 전작들과 동일하다. 휘둘리는 카메라 안에서 어딜 봐야하는지 애매하지만, 어디든 보고 있으면 된다. 특히나 자동차 추격신은, 정확히 어떻게 달렸고 어디를 들이받았고 어떻게 뭐가 날라가는지 확인하려면 수백 번은 돌려서 봐야할 듯하다. 이걸 만들고 편집한 사람의 눈과 귀가 멀쩡할지도 의문……. 아니, 걱정이 된다.


마치며.

살면서 기약없는 기다림을 해본 적이 있다. 슬램덩크 2부라든지, 반지의 제왕 후일담이라든지, 위쳐 시리즈; 시리의 뒷이야기라든지……. 이대로는 끝내기는 아쉽다는 마음을 줬던 명작들은 게임, 영화,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나씩 만나봤고, 여전히 손을 놓지 못하는 등장인물들도 늘 곁에 있어왔다. 돌아올 가능성이 없기에 내 스타일대로 꾸며본 이야기도 있었고, 또 새롭게 만들어 본 인물들도 있었지만 처음 작품을 접할 때의 감동을 그대로 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기약없는 기다림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제이슨 본이, 믿었던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과 스크린으로 돌아온 것이다. 위에서 밝혔듯이 돌아왔으면, 하면서도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돌아와서 내 맘 속에 간직했던 형이 여러 사람들의 비판에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지만, 그래도 돌아온다면 내 기꺼이 몇 번이고 찾아가야지 맘만 먹고 있었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이었기에 그런 결심도 가능했던 거지만. 그래서인지, 사실 들어서기까지도 내가 무대에 서는 것마냥 긴장을 했었다. 『본 레거시』에 이어서,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로도 내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다면, 전작의 제이슨 본을 보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 마음이 어땠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지만, 결론을 말하면……. 우리형, 고생했다. 진짜 최고였다. 남들이 뭐라하건 내게는 성룡이요 이소룡이요 해리 포터처럼 한 때 내 마음에 액션의 불을 지폈던 제이슨 본이고,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액션은 여전했다. 어쩐지 플레이어를 위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위쳐 3;블러드 앤 와인의 마지막 장면을 첨부하며, 본 리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고생했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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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쳐3;블러드 앤 와인』의 엔딩장면. 제작사가 주인공인 게롤트의 마지막 이야기로 선을 그었고, 그 때문인지 최종장의 장면이 이처럼 독자에게, 혹은 주인공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듯한 표정을 연출한 듯 하다. 이제 이 분도 기약없는 기다림의 대상으로 내 맘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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