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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떡 요정

우대권 단편소설/수필

by 봄단풍

찹쌀떡-.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시끄럽다, 였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소음처럼 여겨지던 그 소리가 언젠가는 듣기 힘들어질 소리가 되리라는 건 그 때는 알지 못했다.


찹쌀떡-.


대학교에 갓 입학한 후 처음 마주친 술문화에 질색하며 집에 가던 중, 나는 그 소리를 다시 듣게 됐다. 신기했다. 꽤나 오랜만에 들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그 옛날 그 목소리와 너무나 똑같아서 신기했고, 그 소리가 여태 기억에 남아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목소리의 주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에서 누군가 던져놓고 사라진 메아리처럼 점점 멀어져 갈 뿐이었다.


찹쌀떡-.


그리고 또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어느덧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했으며, 첫 직장을 일년 정도 다닌 후 퇴직한 지도 반 년이 넘은 어느 날 나는, 몸 곳곳을 파고드는 바람에 어쩔 줄 몰라하며 발걸음만 재촉하던 겨울의 초입에서 다시금 그 소리를 마주쳤다. 오랜만에 마주친 그 소리에 반갑기도, 신기하기라도 해야할텐데 오히려 별 감흥이 없었다. 어쩌면 그 소리보다도 자주 만나지 못한 옛 친구가 분명 있으리라.


찹쌀떡-.


발성이 참 좋다. 별다른 기술없이, 기교없이 쭉 뻗어나가는 목소리는 바람이 쌩쌩거리며 귓가를 스치는 서울의 공기를 뚫고 멀리 퍼져나갔다. 문득 오랜 시간 연습하고도 실력이 제자리인 내 노래가 참 가소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조바심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호흡도 안 되면서 악상을 살리려는 노력, 스케치도 없이 채색의 깊이를 조절하려는 노력. 지금의 발버둥은 그렇게나 무의미한 것일까.


찹쌀떡-.


대략 네 번의 외침 후에 숨을 고르는 듯 했다. 난 지금 걸으면서도 숨이 가쁜데, 찹쌀떡을 파는 저 사람은 아무래도 괜찮은 듯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던 목소리는 어느새 점점 더 선명해지고, 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혹시 기계는 아닐까, 녹음된 목소리로 귤이나 과일을 파는 행상인처럼 말이지.


찹쌀떡-.


신호등은 참 느리게도 바뀌었다. 축구 골대 두개는 겹쳐놓은 듯 넓고 긴 횡단보도의 앞에는 어느덧 나처럼 옷 속으로 고개를 한껏 파묻은 채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분명 다들 저 소리를 듣고 있겠지. 그냥 바람소리와 함께 기억 저편으로 넘겨버릴까, 나처럼 하릴없이 옛 생각이나 돌이키고 있을까.


찹쌀떡-!


이상했다. 소리가 너무 가까워졌다. 지금껏 이렇게 가까이서 찹쌀떡을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단순히 발성이 좋다로 치부할만한 크기와 깊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점점 커지는 그 목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질 무렵, 마지막 찹쌀떡- 과 함께 시간이 멈췄다. 목소리에 놀라 굳어진 내 대신 발걸음을 급하게 옮기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섰고,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자세의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신호등의 파란불, 그 옆에서 시간을 대신 세어주던 화살표는 줄어들 줄을 몰랐고, 여기저기서 담뱃불마냥 피어오르던 입김은 사라지는 대신 말풍선처럼 그 자리에 둥실 떠있었다.


미처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군밤장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여기저기 헤진 갈색 무스탕에 질질 끌리는 청바지를 입은 누군가가 조그만 입김을 내뿜으며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느리게, 또 사뿐한 발걸음. 그 뒤에는 덜그럭 거리는 작고 낡은 수레가 따르고 있었다. 공원 약수터에서 자주보던 은색 수레.


내 앞까지 다가온 그 사람은 아이임이 분명해보였다. 동그랗게 뚫린 군밤장수 모자 안에 자리한 얼굴은 하얗고 깨끗했지만 추워서 그런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수레를 끄는 손에 낀 회색 털장갑은 공간이 많이 남는지 자꾸만 구겨졌다. 콧물을 들이키려는 듯 숨을 한껏 들이킨 그 아이의 노력이 안타깝게도, 코 언저리에 이미 얼어붙은 콧물은 사라질 줄 몰랐다.


"찹쌀떡."


아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에는 별다른 호기심도, 두려움도 없었다. 고객을 대하는 상인의 눈빛. 어쩐지 창구에서 손님을 받던 전 직장에서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말도 안 되는 그 상황속에서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안내멘트부터 해줘야죠, 선생님.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아이는 다시금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찹쌀떡, 주세요."


첫번째는, 그 목소리와 주인공의 괴리였다. 두번째는, 그렇게 외치던 목소리의 내용과 목적의 괴리였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한참동안 그 자리에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럼 네가.."


물어볼 질문이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다. 무엇부터 물어야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꿈같은 그 상황에서 질문은 잠시 머릿속 구석 어딘가로 넣어둔 채 자꾸만 이유없이 피어오르는 반가움을 표현하려 안달이 나있었다.


- 우대권 단편소설/수필 『찹쌀떡 요정(가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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