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된 거야?”
“불이야. 마스크는?”
“아직.”
“잘했어.”
불이 난 건물은 시내의 호텔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15층이 넘는 크기의 건물이었던 터라 화재의 규모도 꽤 컸다. 건물 밖으로 보이는 불꽃은 군데 군데 작았지만, 사방으로 뿜어져나오는 매캐한 연기는 이미 하늘을 가릴만큼 자욱했다.
“면접은 어땠어?”
“그...... 이따가 말해줄게.”
이미 소방 트럭 몇 대가 도착해서 호텔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트럭에서 풀어진 호스 여러가닥이 호텔 안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방호복을 입고 무전을 하는 대원들도 보였다.
“사다리차는 안와요?!”
“이 사람들아, 얼른 들어가서 사람부터 꺼내와야지!”
이미 건물 주위에는 수많은 인파가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대부분이 핸드폰을 들어서 촬영을 하고 있고, 뒷짐지고 구경하면서 훈수를 두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아 사다리차 안 부르냐고!”
“아유, 이 답답한 인간들, 내 때였으면 그냥......!”
“어르신, 알았으니까 뒤로 가세요! 위험해요!”
“이게 다 요새 공무원들이 생각이 없어가지고......!”
“불을 끄는 게 뭐가 중요해! 안에 사람부터 구해야지!”
“뒤로 가시라고요!!”
유독 이번에는 더 심한 것 같았다. 나는 뒤로 빠져서 아라를 툭 치고는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왜 저래?”
“아직 호텔방에서 못 나온 사람들이 많대. 그리고 누가 애들을 잃어버렸다나봐.”
“흐음......”
“있잖아, 수하야. 잠깐만.”
갑자기 아라는 내 팔을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가까이에서 구경하려고 건물쪽으로 다가가는 중이라 뒤로 빠져나오기는 오히려 수월했다. 몇 명의 사람들과 어깨를 비비면서 겨우 뒤로 나온 나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의 아라를 마주했다.
“이번에는 잘 생각해라.”
“왜 그래?”
“지금까지랑은 달라. 사람들 보이지? 다 카메라 들고 있는 거.”
슬쩍 뒤를 봤다. 확실히, 내가 겪어온 사고들보다 훨씬 사람도 많았고, 그만큼 핸드폰을 들고 찍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게릴라 콘서트라도 하는 것처럼 이미 백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이번에는 나도 들키지 않을거라는 장담을 못하겠어. 아니, 무조건 들켜. 찍힌다고.”
“......”
“괜찮겠어?”
다시 화재현장을 살폈다. 아라의 말대로, 자욱한 연기속으로 가끔씩 보이는 창문에는 그 때마다 사람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고민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만......
“사다리차! 사다리차 언제 오냐고!”
“뒤로 가시라고요! 위험하다고요!”
“안에 애들이 있다니까요!”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고민도.
“그러라고 보호대도 챙겨준 거 아니야?”
아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올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는 미소나 격려는 없었다.
“알았어. 저기 저 상가 보여?”
“응, 보여.”
“호텔 꼭대기에서 저 상가 옥상 정도는 눈으로 보이겠지?”
“연기만 안 가리면.”
“저기로 구출하는 거야. 네가 건물에 있을 때 아니면 사람들한테 찍히지도 않을 거고, 구출된 사람들을 구조대한테 인계하기도 가까워.”
“오케이.”
“옥상 문은 열려있는 거 확인했어. 이어폰 끼고. 옥상까지 간 다음 사람들이 없을 때 마스크를 쓰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아라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호텔 쪽으로 향한 틈을 타 나는 아라가 가르쳐준 상가 옥상으로 향했다. 다행히 근처에 화재가 나서 그런지 상가 내에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아라 말대로 옥상으로 가는 길도 열려있었다.
“도착했어.”
[어때, 잘 보여?]
상가 옥상은 호텔 건물의 옆면을 바라보고 있던 터라, 옥상의 한쪽 모서리 끝으로 가야 사람들이 모여있는 호텔 창가측이 겨우 보였다.
“힘들겠는데. 연기가 너무 짙어.”
[일단 마스크부터 써.]
“썼어. 여기로는 구조가 어렵겠어. 그냥 바로 1층으로 내려올게.”
대답 대신 아라의 한숨 소리가 이어폰 너머에서 전해져왔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슬쩍 옥상 난간 위로 한 발을 걸쳐 올렸다. 호텔을 올려다보고있는 구경꾼들이 지르는 소리는 언뜻 보기에도 수십미터 떨어져 있는데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 아까 했던 말들과 비슷하겠지.
“간다?”
[기다려, 제일 급한 데부터 알려줄게.]
아라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와도, 곧바로 그 상황에 적응하고 최선의 방향으로 대처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든 그녀가 절망에 빠지거나 우울해하면서 무기력해진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혹시 거기서 5층 발코니 보여? 난간 잡고 흔드는 사람?]
“아니, 연기에 가렸어.”
[그럼 3층. 사람들 다리 뻗고 있는 건?]
“보여.”
[가만히 냅두면 무리해서 뛰어내릴 거야. 그 쪽부터 가자!]
손으로 눈 근처를 더듬어서 마스크가 눈과 코까지 잘 덮여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연기 속 3층 베란다로 순간이동했다-
“쿨럭, 콜록......!”
눈을 뜨자마자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난간이 느껴졌다. 곧바로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탁한 공기가 목과 눈을 덮쳤다.
“콜록! 누, 누구세요!”
“눈 감아요!”
에라 모르겠다, 나는 아무나 손을 잡은 뒤 곧바로 밑을 내려다봤다.
“흐읍!”
숨을 참고 곧바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곧바로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에 두 발과 한 쪽 손에 느껴졌고, 다른 한 손에도 여전히 억센 손목이 느껴졌다.
“콜록......!”
“어? 어디서......!”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일일이 대답할 새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일어나서 위를 쳐다봤다.
“그 다음은!”
[4층에, 갓난 애기 내밀고 있는 사람 보여? 네 자리에서 왼쪽에 있을거야. 열시 방향?]
“보여, 확인했어!”
연기 사이로 언뜻 두 팔이 보이자마자 나는 곧바로 순간이동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팔을 잡는 대신, 나는 얼른 공중에서 한 번 더 순간이동으로 베란다 난간에 매달렸다.
“꺄악!! 콜록, 콜록! 누구세요!”
“눈 감아요! 애기 안고!”
“네, 네!”
샤워가운을 입고 있는 아줌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얼른 그녀의 한 쪽 팔목을 손으로 잡고 밑을 쳐다봤다.
“연기가......!”
밑에서도 올라오는 뿌연 연기로 가까운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서 그나마 보이는 바닥으로 순간이동을 감행했다.
“꺄악!!”
“뭐, 뭐야!”
아뿔싸. 구경꾼들이 몰려 있는 바로 앞. 내가 이동한 곳은 바로 그 앞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아래로 갔으면 구조대원 뿐이었겠지만, 연기때문에 조금 멀리 보고 순간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곳은 구경중인 인파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어, 어! 그 뉴스에 나왔던 사람이다!”
더 듣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아가를 안고 있는 아주머니를 대충 바닥에 앉히고는, 다시 건물 바로 아래쪽으로 순간이동했다.
“그 다음!”
[바로 위. 5층인데, 이상한 - ]
“선생님! 여기 계시면 안 돼요, 나가세요!”
갑자기 누군가 내 쪽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불과 몇 걸음 앞에 서있던 구조대원이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잡을 것처럼 다가왔지만, 일일이 상대해 줄 시간이 없었다 - 나는 곧바로 호텔을 올려다보고, 대충 바로 위에 가장 요란스럽게 팔다리가 허우적거리는 베란다로 순간이동했다.
“으아아아! 아아아아아!!”
“눈 감아요, 진정해요!”
“으아아아아아악!!”
이번에 매달린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속옷 차림인 건 이해하겠는데, 문제는 도무지 가만히 있지 않았따! 베란다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고 흔들면서 살라달라고 비명을 지르기만 할 뿐, 바로 앞에 나타난 나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저씨!”
“아빠아!”
나는 황급히 남자의 뒤를 확인했다. 이제 막 초등학교나 들어갔을까 싶은 여자 아이가 울먹거리면서 인형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이 사람들 말고도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아저씨! 눈 감아봐요!”
“나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안 죽어요! 살려드릴테니까 가만히 좀......!”
“나 죽을 거야, 어차피 죽으려고 했다고!”
“그러면 화 낼 필요가 없잖아요!
나는 다시 뒤 쪽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살폈다. 베란다에 두 손과 발로 매달려 있는 것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친구야, 거기, 너!”
“.....”
난간을 흔드는 아저씨의 딸로 보이는 듯한 아이는, 인형을 꼭 끌어안고 내 쪽을 바라봤다.
“이 쪽으로! 얼른!”
아이는 아빠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금씩 내 쪽으로 다가왔다. 소녀가 오고 있는 와중에도, 아저씨는 여전히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쪽으로, 더 가까이! 얼른 와!”
아이는 마침내 아빠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 난간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 여전히 욕짓거리를 내뱉고 있는 아저씨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지금 여기서 나가야해. 알지?”
끄덕끄덕.
“혹시 아빠야?”
끄덕.
“진정시킬 수 있겠어?”
아이는 인형을 안은 채 한 손을 뻗어서 아빠의 런닝셔츠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이의 팔을 뿌리치고는, 다시 난간을 잡더니 이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흐, 어흐흐흑...... 살기 싫다고......”
“아니 그러면 차라리 진정하고 방 안에 계시든가, 왜 굳이난간에 매달려서 화를 내고 계시는 건데요?!”
“닥쳐!!”
답이 없다. 나는 다시 소녀를 쳐다봤다.
“잘 들어. 눈을 꼭 감고 있어야해, 알았지? 눈을 감는 거야. 지금 말고, 이따가 내가 감으라고 하면!”
끄덕끄덕. 아이는 아까와 달리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내가 손을 하나밖에 못 써. 한 손은 이걸 잡아야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빠 손을 잡아야 해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네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거야. 할 수 있지?”
아이는 인형을 안은 채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두 발과 한 손으로 난간에 매달린 채, 아이의 손을 잡고 난간 위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자, 여기. 매달려, 얼른.”
나는 다시 두 손으로 베란다 난간을 잡은 채 아이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이는 옆에서 난간을 잡고 흐느끼는 아빠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본 뒤, 천천히 인형과 함께 내 목을 두 손으로 끌어안고 매달렸다.
“흐읍......! 오케이, 좋아, 지금부터 눈 꽉 감고 있어! 절대 뜨면 안 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손에서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아직 구할 사람이 수십 명인데!
“아저씨, 아저씨!”
“어흐흐흑...... 흐흑......”
“아오 진짜......!”
드디어 힘이 빠진 건지, 아저씨는 난간을 붙잡고 흔드는 대신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낄 뿐이었다. 말이 안 통하는 건 여전했다! 왜 말이 통해야하면, 내 능력의 제약 때문이다. 사람을 데리고 같이 순간이동을 하려면 그 사람도 눈을 감고 있어야 가능했다!
“아저씨, 잠깐 나좀 봐봐요!”
“꺼져!! 난 죽을 거야...... 어흐흐흑..”
아무리 소녀라고는 해도 온전히 매달려있으니 꽤 무거웠다. 난간도 미끄럽고 팔에서도 힘이 빠지고 있어서 앞으로 삼십 초도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잠깐, 생각해보니까 저렇게 울고 있으면 보통 눈 감고 있지 않나?
“눈 꽉 감아!”
애초에 애 아빠는 들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아이가 실눈이라도 뜨고 있을까봐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있는 아저씨의 손목을 붙잡았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서, 제일 잘 보이는 지점을 보고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깜짝이야!!”
“또 나타났다!”
“그 사람 맞아요, 그 사람!”
“아빠아-!”
“흐흑, 어흐흐흑...!”
몸무게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싶더니, 갑자기 내 손목을 누가 세게 뿌리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도, 죽고 싶다던 아저씨도 다행히 아스팔트 바닥 위로 안전하게 이동해있었다.
“그 사람이에요!”
“뉴스에 나왔던 사람이다!”
급하게 이동 지점을 찾다보니 결국 아까 왔던 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아직도 창가쪽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층마다 더 있었으니까.
“저기요!”
갑자기 억센 손이 내 팔목을 잡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