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아라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세게 문질렀다. 터지기 직전의 폭탄을 앞에 둔 사람처럼, 나는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니까......”
아라는 좀처럼 말을 천천히 하는 법이 없었다. 늘 또렷한 발음과 발성으로 또박또박 말을 했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을 해줄 뿐이었지. 그리고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곧바로 입을 여는 대신 사람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생각을 하고 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단어 하나 하나를 고르고, 숨도 고르면서 입을 연다는 건,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나 지금..... 좀...... 잠시만, 있어봐.”
그녀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두 손가락은 관자놀이를 꾹꾹 문지르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해보자고.”
“응.”
“대답하지 마. 혼자 말하는 거야.”
“......”
“일단 세일그룹은 면접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네 능력을 알고 있었고, 널 섭외하려고 면접인 척 연락해서 부른 거다, 라는 거지?”
“......”
“대답 안 해?”
“어, 어. 맞아.”
“그 다음. 알고봤더니 너와 너의 능력에 대해 경찰도 알고 있었다는 거지?”
“어.”
“그래서 너를 며칠 전부터 따라다니다가 오늘은 아예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 거고?”
“그렇지.”
“그래서 둘 중에 한 쪽을 골라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 여기까지 오케이. 네가 쫓기는 걸 나한테 말 안 한 것도 몹시 빡치긴 하지만 일단 그건 넘어가고. 좋잖아, 어딜 가도 취직 걱정은 안 해도 되고? 그치? 한 쪽은 철밥통에 한 쪽은 대기업이니까?”
끄덕끄덕. 이제 슬슬 언제 대답을 하고, 언제 대답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 사람의 지적 능력은 위기에 봉착할수록 발전한다.
“뭘 고개를 끄덕거려? 좋냐? 지금 이게 좋아?”
아닌가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인생사 똑같다. 위기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쳐서 겨우 목 끝까지 물 밖으로 나와봤자, 누군가 뒤통수를 때리거나 다시 물 속으로 내리 누르는 게 인생이다....
“아무튼. 일단 이건 조금 이따 얘기하기로 하고. 내가 진짜 빡치는 건 이거야.”
아라는 두 손으로 식탁을 쾅 내리찍었다.
“!!......놀래라.”
“뭐? 이다연? 연습생이 뭐?”
“......”
“뭘 빼내? 방송사 안에 들어가서 뭐? 끝난지 일년도 더 된 프로그램의 평가표 원본을 훔치겠다고?”
“......”
살짝이라도 아라의 눈치를 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 살리려고 한 것도, 들어주려고 한 것도 참 좋은데.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그냥 방송사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사가 운영하는 방송사의 제일 유명한 음악 채널이야. 아이돌, 가수, 아무튼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한 번이라도 얼굴 비추고싶어서 난리인 채널이라고. 연말에는 아시아에서 제일 큰 음악 시상식을 진행하는 채널! 지금 거기에 들어가서, 1년 전에 종영한 프로그램의 서류를 하나 훔쳐오겠다는 거라고.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쟁쟁한 연습생들을 데리고 탈락 오디션을 진행했다는 것 부터, 그 방송사는 보통의 채널과는 규모를 달리했다. 사실 그 채널을 운영하는 회사도 이전 세일그룹의 계열사로, 이미 스무 개는 넘는 케이블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송 채널뿐만아니라 각종 영화 제작에도 거침없이 투자하고,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극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방송사에 들어가서 서류 하나를 훔쳐오겠다는 건데......
“아니...... 네 능력이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래 그게 문제야. 애매하게 가능해서 더 문제라고. 아니, 아냐. 불가능해. 야, 들어간 다음에 어떻게 찾을 건데?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가지고 나올 건데? 가지고 나온 다음에는? 그 여자한테 그냥 주면 끝나는 거야? 잡히면 어떡하게? 그건 범죄 아냐?”
할 말이 없었다. 계획이 없었으니까. 대신 ‘그건 범죄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억울하게 죽으려는 사람을 살리려는 거니까.”
“아니 걔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야, 찾아봐.”
아라는 결국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다연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검색하고 있었다.
“예쁘긴 하네. 연습생 아니랄까봐.”
“그래? 나는 잘......”
“모르는 척 하지마, 짜증나니까. 그냥 입 다물고 있어.”
이미지 검색 결과를 실컷 훑고 움짤로 넘어간 그녀는, 다연이 카메라에 윙크를 하는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너 솔직히 말해. 마스크도 벗었지?”
“에이, 그건 아니지.”
“웃어?”
“아니, 안 웃었는데.”
정색으로 하고 쳐다보자, 아라는 피식 웃다가 다시 금세 인상을 찌푸리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진짜, 미쳤냐고오! 어? 뭘 어쩌려고 사람이랑 일대일로 만나서 얘기도 들어주고 무슨 약속까지 하고, 어?”
“아니......!”
그 쯤되니 나도 울컥했다. 용기있게 고개도 들고, 아라의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여전히 두 눈을 부라리고 있는 그녀의 눈을 단 일초만에 회피한 뒤, 나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아니, 뭐. 그렇게 해서 사람 한 명이라도 살렸으면 됐지.”
“그냥 얘가 예뻐서 그런 건 아니고?”
“무슨 소리야, 야, 내가 그럴 사람이냐?”
아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쪽 입꼬리만 올라가며 훗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 것으로 봐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라는 검색 기록을 보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야 그리고 걔가 말 해준 거랑 순위가 좀 다른데? 너한테는 계속 5위였다면서.”
“그렇게 말했었지.”
“보니까 성적은 들쑥날쑥했네, 뭐. 20등도 하고 5등도 하고.”
“에이 뭐...... 원래 억울하면 좀 과장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닌 듯, 아라는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동영상 검색 결과로 넘어갔다. 영상들은 대부분 1년 전에 업로드 되어 있었다. 다연이 오디션 탈락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 했다. 방송에 나온 1, 2분 정도의 자투리 영상과 그녀의 활약을 요약한 하이라이트 영상이 몇 개 있었고, 그녀의 소속사에서 업로드 해둔 춤 연습 영상이 두세개 정도.
아라는 영상의 댓글 반응을 휘휘 넘겼다. 대부분 10만도 안 되는 적은 조횟수의 영상이었지만, 다연의 하이라이트 영상 하나는 50만을 넘기고 댓글은 200개를 넘기고 있었다. 대부분 탈락이 아쉽다, 얼른 데뷔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선플.
“거 봐, 평가가 좋긴 했네.”
아라의 말대로 그녀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논란을 요약한 영상도 있었다. 10분이 안 되는 짧은 영상 내용을 요약하면, 마지막 평가 때 순위가 갑자기 뚝 떨어진 연습생들과 갑자기 오른 연습생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결론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것.
“이거 봐, 논란이 있긴 있었네! 어?”
“아니 근데 좀......”
아라는 뒤로 물러나 앉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것도 이상하지 않아? 영상도 올라오고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다고 해줘, 팬들도 있는데 자살까지 생각할 이유가 있어? 그리고 자살하는 타이밍도 이상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이런 말이 지나칠 수도 있는데, 생각해봐. 그 논란이 있었던 게 일년 전이라고. 자살을 할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하게 움직였을 때도 일년 전이었겠지, 안 그래? 그 때는 멀쩡하다가 이제와서 자살을 결심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냐?”
아라는 인상을 팍 쓰고 나를 쳐다봤다. 화났다기보다는,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있거나 자신의 풀이과정이 맘에 들지 않으면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거야...... 일년 동안 워낙 그 그룹이 잘 나갔으니 그 동안 억울한 감정이 쌓일 수도 있고, 또 최근에 해체 안하고 CK에서 전부 계약했잖아? 앞으로 더 잘 나갈 걸 아니까 그럴 수 있지 않아?”
“......”
“그리고 애초에 피해자의 감정 기복에 합리성을 따지는 것도 이상하고.”
“흐음.”
아라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인상을 풀었다. 천장을 잠시 올려다보던 그녀는, 이내 나를 다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넌 벌써 이 여자가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네?”
“어?”
아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만나. 그리고 미안하다고 해, 도와줄 수가 없다고. 그거 거절한다고 자살할 리도 없고, 그렇다고 자살하려고 하면 그건 진심이 아니라 널 그냥 이용하려는 거야. 그리고.”
아라는 갑자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꼭 구두경고를 날리는 축구 심판처럼 눈 사이를 잔뜩 구기고 검지손가락으로 내 눈 사이를 가리킨 그녀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이건 너도 잘 생각해야해. 사람을 살리는 거랑, 네가 생각하는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거랑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아라의 말이 맞았다. 인명 구조는 일차원적일지언정 고민할 거리는 아니었다. 죽을 사람을 구하는 데에 반대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설령 악독한 범죄자라할지라도 살아서 재판을 받는 게 낫지, 죽고 싶은 사람이라도 일단 살아난 다음에 다시 마음을 먹든지 말든지 하는 게 낫지.
하지만 다연의 부탁은 달랐다. 잘못한 사람을 처단하기 위해 도와달라는 것. 잘못했다는 정황은 있지만 그 증거가 없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도와달라는 것이니, 능동적으로 내가 한 주체를 망가뜨려야하는 셈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잘못이 있었는지도 지금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이 모든 걸 판결에 맡길만큼 정의로운가? 대중은 이 모든 부정을 파헤칠만큼 현명하며, 법의 체계는 잘못한 이를 엄격히 조사하고 정당한 판결을 내릴만큼 공의로운가? 비리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주체들은 양심의 가책에 아파하고 반성할만큼 선한가?
“에휴......”
아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잠시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래, 그럼 도와주자.”
“어?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표정보면 각이 딱 나오는구먼.”
아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그 자세로 한참동안 신음소리를 내던 그녀는 아직도 멍하게 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하겠다고 맘을 먹었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니. 평소에 고집 없는 애가 고집 부리면 꺾을 수가 없어요. 답이 없어, 답이. 차라리 내가 옆에서 무리하지 않게 봐주는 게 낫지.”
“......”
“대신 앞으로 나한테 다 얘기하기로 해. 알았어? 미주알고주알 다, 전부 다 사소한 것까지.”
“어, 그래. 그래야지. 고맙다.”
“그래, 뭐 얘가 화장은 하고 나오는지, 울 때 콧물이 나오는지 뭐 그런 것까지.”
“그건 왜?”
“아 연기하는 걸 수도 있잖아! 진짜로 그것만 보라는 게 아니라 그 정도로 사소한 것까지 관찰을 잘 하란 소리야.”
갑자기 눈을 피하면서 내 어깨를 주먹으로 세게 친 아라는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빨리 정리해야지. 이 주 안에 해야한다며. 세일그룹을 가든, 어디 뭐야, 그 경찰청을 가든. 아니 근데 경찰 어떤 부서인지 그런 얘기는 안해줬어?”
“응. 뭐 에스 아이 유라고 하던데. 특수 수사팀이래.”
“......시우(SIU)?”
“아, 맞다. 그렇게 읽는 다더라.”
그녀는 잠시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희한한 이름이네. 아무튼, 세일 연구소든 에스 아이 유든, 어디든 결정해야할 거 아냐.”
“그렇지.”
“그러려면 빨리 해결하자고. 자, 너 그 여자랑 곧 만날 거지?”
“그렇지...?”
“얘기는 알아서 하는데, 내가 지금 시키는 건 꼭 해라.”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