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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재현장(3)

by 봄단풍

콰르르르르..


얼마만에 눈을 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다음 들린 소리는 그런 소리였다. 폭포소리. 어렸을 때, 아직 기억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에는 아빠와 텔레비젼을 보면 항상 그런 걸 봤었다. 자연 다큐멘터리. 사자가 사슴을 사냥하고, 사슴이 운 좋게 도망치고. 다른 동물을 보려하면 갑자기 자연 경관을 보여주면서 지루한 나레이션이 시작되고, 그 쯤 되면 나는 아빠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잠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떠보면 언제나 방이었다. 아빠는 날 들어서 방으로 옮기는 게 그리 무겁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제일 컸을 때라고 해봐야 다섯 살이었나, 여섯 살이었나? 벌써 사진으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은 때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 어렸을 때에 나는 나름 어리광도 심했던 아이였나보다. 매번 아빠랑 붙어있겠다고 텔레비젼을 보다가 잠들어버리고. 그래, 지금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차라리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으면, 아니 그냥 내 방 천장이 보였으면.


쿠르르르르...

폭포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아, 그러고보니 아빠랑 그런 약속도 했었다. 폭포 진짜로 한 번 보고 싶으니 꼭 같이 가자고. 그랬더니 아빠가 뭐라고 했더라, 일단은 미안하다면서 뭐라고 했었는데......


‘아빠는 돈이 없으니, 나중에 네가 돈 많이 벌어서 아빠를 데려가줘.’


아 그래, 그랬었다. 그래서 나는 헬기를 타고 갈지 비행기를 타고 갈지, 잠수함을 타고 갈지를 결정해야한다면서 아빠와 뭐가 더 좋은지 토론을 했었지.


[......! ......!]


귓가에서 누가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들리긴 들렸다. 다만 그 말, 단어를 일일이 해석하기에는 아무래도 정신이 덜 깬 모양이었다.


[야, 우수하! 대답해!]

“.......”


울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울먹거리면서 뭐라고 화를 내고 있었다.


[야!! 대답해, 죽은 거 아니지, 어?]

“쿨럭, 쿨럭!”


그제야 나는 눈을 떴다. 이상하게, 분명 눈을 떴는데도 계속 주위가 어두웠다.


“콜록!”

[우수하! 수하야! 야!]

“아오...... 콜록, 콜록!”


한동안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겨우 정신이 들긴 했지만, 정신이란게 컴퓨터 부팅하는 것처럼 체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말을 꺼내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적어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 목소리 주인공이 누구고 왜 저렇게까지 흥분했는지 까지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아직 몸을 움직일 엄두는 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내가 몸을 옆으로 눞히고 잔뜩 웅크리고 있다는 것. 팔 다리는 잘 붙어있는지, 어디 상처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숨 쉬는 게 먼저였다.


[우수하!! 다친 데 없어? 괜찮아?]

“콜록... 하아, 하아....”


거북했다. 공기 입자가 한 열배 쯤은 커져서, 콧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도 늦고 폐에 공급이 되는 것도 늦는 것 같은 기분. 숨을 쉴 때마다 턱턱 막히고, 내뱉을 때는 평소보다 두 세배는 많이 내뱉는 기분,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폐가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그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 잠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


[야! 정신차려!! 야! 들려? 대답 좀 해봐!]

“어, 아직은......!”

[섣불리 움직이지마,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오키......”

[호텔이 다 무너지지는 않았어. 아직은. 계속 조금씩 무너질 수 있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뒤에, 아라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넌 괜찮아? 괜찮냐고, 어?]

“괜찮, 괜찮아...... 일단은. 하아, 숨 쉬기가 힘들어.”

[움직이지마! 주위에 보이는 거 없어?]

“후우...... 하나도 안 보여.”


숨 쉬기가 힘드니 말하기도 힘들었다. 아무튼, 아라 말대로면 나는 호텔에서 무너진 쪽에 속해있는 것 같았다. 혹시나 움직였다가 더 무너지거나, 아니면 아예 깔려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지.


“설마 나 실명한 건 아니겠지?”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말도 잘 들리니까 작게 말해. 주위에 느껴지는 게 있어? 소리가 들리거나, 춥거나 뜨겁거나, 뭐가 됐든.]


제일 먼저 느껴지는 건 따뜻한 배였다. 아까 정신을 잃기 전 겨우 찾아낸 아이를 안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까는 미처 확인할 새가 없었지만, 지금은 색색거리는 아이의 숨소리와 심박도 느껴졌다.


“애...... 구했어. 숨도 쉬고 심장도 뛰어.”

[너는?]

“나도.. 등이 좀 쑤시긴 한데...... 흐읍!”

[왜 그래, 왜?]

“콜록,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면서 등이 몇 번 들썩이는 것만으로도 사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라의 말대로, 조금만 삐끗해도 잔해에 깔려버리는 위험한 상황인 것 같았다.


생각해보자, 여기서 어떻게 안전하게 나갈 수 있을까? 119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 무너지지 않게 얌전히 있는 게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작은 틈이라도 만들어내서, 눈으로 바깥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곧바로 순간이동으로 탈출할 수 있겠지.


“......”


이미 해보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까 봤던 경광봉을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봐온 집과 그 근처 구역도 생각해보고, 심지어 세일그룹 로비와 카페까지 떠올리면서 눈을 깜빡거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쓸모없는 초능력 같으니라고.


“후우......”


원래 어두운 데에 오래 있으면 눈도 적응을 하던데, 시간이 가도 도무지 앞은 보이지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서 눈 앞에서 흔들어보이면 그래도 잔상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긴 한데, 이게 기분 탓인지 정말 잘 보이는 건지는 솔직히 감이 안 왔다.


그렇다면 힘으로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 수 있다면?


“흐읍......!”


숨을 꾹 참고 두 손으로 주위를 더듬었다. 옆으로 누워서 웅크린 내 주위를 다 눌러봤지만 전부 돌처럼 단단했고, 간혹 달그락거리며 부스러기가 떨어지긴 했지만 주위는 꼼짝하지 않았다.


“이이이익......!!”


가만히 두면 깔릴 수 있으니, 바로 위에서 내리 누르는 돌을 위로 밀어봤다. 처음에는 달그락거리면서 움직이더니 결국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 기침하던 내 위로 쏟아지려는 큰 잔해들은 뭔가에 걸려서 떨어지길 멈추고 있던 모양이었다.


[야, 너 뭐해?]

“하아압......!”

[허튼 짓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어?]


가만히 있다간 숨 막혀서 죽을 것 같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이번에는 발을 움직여서 발 밑의 잔해들을 발로 걷어차봤다.


콰르륵, 콰르르르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위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꼭 스키장에서 사람이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콰르륵 거리면서 한참동안 뭔가가 구르는 것 같더니, 이내 그마저도 서서히 멈췄다. 대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디선가 시원한 공기가 새어들어왔다. 여전히 눈 앞은 캄캄했지만, 분명 어디선가는 바깥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콜록, 콜록!”

[너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다가 황급히 괜찮다고 대답을 전했다. 그러고보니, 어디서 빛이라도 새어들어오는지 이제 웅크린 내 몸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분명하게 보이는 건 없지만 분명 어딘가 틈이 있으니 숨 쉬기도 편해지고, 눈 앞에 시야도 회복된 거다!


나는 얼른 발을 더 움직였다. 부스럭거리는 잔해들과 돌가루들을 밀어낸 뒤, 단단하게 닿는 바닥을 세게 밀었다. 곧 아까 전보다 더 심하게 쿠르릉 소리가 나면서 주위가 흔들렸고, 사르르륵 고운 가루들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그건 서곡이나 다름없었다. 사르륵 소리는 곧 달그락으로 바뀌면서 작은 잔해들이 구르는 소리들로 바뀌었고, 조금씩 아래쪽 바닥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꼭 워터파크 미끄럼틀에서 조금씩 흘러내려가는 것처럼, 나는 내 몸과 바닥이 조금씩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

그런데 위가 먼저 무너져 내리면?


“쿨럭, 쿨럭!”


겨우 바깥과 공기가 통했다고 생각했더니, 주위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하자 다시 먼지가 피어올랐다. 안 그래도 좁았던 공간이 더 숨 쉬기 어렵게 변했고, 나는 황급히 코트로 품에 안은 아이를 감싸 안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콰르르르...

소리는 점점 커졌다. 동시에 밑으로 내려가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생각해보니, 무작정 흔들고 틈을 만들겠다는 것도 안일했다. 애초에 바깥의 빛을 보기 전에, 무너져내리는 잔해에 깔려 죽을 확률이 더 높았다!


“크읍...!”


하지만 이제 멈출 수 없다. 운에 맡기는 수밖에..!


[잠깐, 가만히 있어, 위험해!! 건물이 더 무너진다고!]

“내가 한 거야!”

[뭐......? 야, 가만히 있으랬지!!]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숨막혀 죽어!”


잔해들과 함께 쏟아져내리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여기저기서 돌들이 세게 몸을 짓눌러왔고, 때로는 먼지 속에 파묻혀있을 때보다 숨 쉬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조금만 더 있다가 커다란 잔해에 깔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예기치 못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제일 심각했다 -


하지만 다행히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곧 손과 발이 보이고, 떨어져내리는 시멘트 조각과 철근들이 보일 때쯤, 갑자기 환해진 바깥 세상이 눈을 세게 찔러왔다 -


“크윽!”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리며 초점을 잡으려고 했다. 문제는 그 와중에도 몸은 건물과 함께 무너져내리고 있어서, 겨우 잔해들 사이로 비춰보이는 빛도 불규칙했다.


콰르르륵-!!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점점 커졌다. 이제 내 몸을 울리는 게 무너지는 건물 때문인지, 아니면 소리 때문인지 헷갈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자마자, 곧장 눈 앞에 새하얗게 밝은 빛이 갑자기 터져나왔다!


“흐읍!”


반사적으로 눈이 감겼다. 하지만 눈을 떠야했다, 뜨지 않으면 이 불타는 건물에 그냥 깔려 죽고 끝이다......!


“으윽!”


망할 눈은 꼭 이럴 때 멋대로 떠지지가 않았다. 떠야 해, 눈에서 피가 나더라도 눈을 떠야 해......!


“눈 감아.”

“......”

“자, 이거 눈에 좀 대고 있어.”


아라가 건네는 차가운 수건을 눈에 덮었다. 당장 충혈된 눈이 팍 식는 느낌. 나는 수건을 펼쳐서 아직도 화끈거리는 얼굴에 전부 덮어버렸다.


“좀만 쉬었다 가자.”

“알았으니까, 일단 좀 대고 있어. 어디 아픈데는 없어?”

“없어......”


나는 펼친 수건으로 얼굴을 꾹 눌렀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서 뼛 속까지 전해지는 기분. 평소였으면 곧바로 부르르 떨면서 수건을 치워버렸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래야 살 것 같아서 한참동안 나는 그렇게 앉아있었다.


“으이구, 다 죽어가는 목소리면서 참.”


아라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어째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어 내려가는 게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나는 그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척 가만히 앉아있었다. 다른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아까는 진짜 큰일날 뻔 했다.”


아라는 그 상태로 말을 계속했다. 혹시라도 끼어들면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출까봐, 나는 계속 수건을 얼굴에 덮은 채 가만히 있었다.


“너 진짜 죽을 뻔 했어.”


아라의 말대로,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간신히 순간이동에 성공하자마자 건물의 절반 정도가 무너져내렸다. 그러니까 딱 일 초만이라도 내가 늦게 이동했다면 아마 나는 지금 차가운 수건도,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아라의 손도 느끼지 못했을 거다. 더군다나 그 때에 딱 눈에 보였던 장소가 하필이면 구경꾼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이었던 탓에 아라의 말대로 위험한 상황이 추가로 발생했다. 원래 계획대로면 구조대원에게 아이만 인계하고 곧바로 도망을 쳤어야 했는데......


“사람들이 네가 애를 구해내오니까 난리가 난 거야. 널 도와준다는 핑계로 네 얼굴 한 번 찍으려고, 마스크 벗기려고 진짜 별 짓을 다 했다니까.“

“대단하네.”

“누가 아니래. 네가 곧바로 여기로 와서 다행이지.”


맨 처음 아라에게 브리핑을 받았던 옥상으로 와서야, 나는 지금처럼 앉아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찍은 사람이 있을까?”

“뭐를? 너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걱정이 됐다. 내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기 전부터, 이미 핸드폰을 들고 화재현장을 찍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평소처럼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구조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 이후에 내가 몇 번이고 건물과 바닥을 순간이동으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당연히. 그것도 많이. 엄청.”

“......”

“일단 보호대는 잘 쓰고 있었으니까.”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얼굴을 가린 안면 보호대가 바로 아라가 사준 것이었다. 아, 학교 선배한테 받았다고 했었나?


[야! 정신차려!! 야! 이 개새캬!!]


움찔.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아까 이어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아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덤으로 울먹이면서 내 안부를 묻던 목소리까지.


그런 생각을 할만한 타이밍이 아닌 것도,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면서 나는 괜한 기대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녀는 이미 몇 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몸이다.


“후우......”


나는 천천히 얼굴에 붙은 수건을 뗐다. 아직도 사방에서는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몸은 여기저기 얻어맞아 쑤시긴 했지만 나는 겨우 무릎에 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집에 가자.”

“기다려 봐, 너 진짜 병원 안 가도 괜찮겠어?”

“괜찮아.”


뼈가 부러졌거나 금이 갔다면 지금 주저앉아서 엉엉 울고 있었겠지. 다행히 몸은 이상하리만치 괜찮았다. 샤워하면서 따끔거리는 데가 있으면 연고나 좀 바르면 되겠지.


“코트는? 이거 아버지꺼라면서.”

“코트도 뭐......”


신기한 건 코트도 멀쩡했다는 거다. 그렇게 오래된 옷이니 그 정도 충격이면 찢어질만도 한데, 아니 애초에 화재 현장에 들어갔을 때 타버리거나 쪼그라들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옷장 냄새가 폴폴 나는 코트는 형체도 옷감도 전부 멀쩡했다. 그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인 것인지, 분명 코트 아래에 드러난 바지나 양말은 군데군데 타고 찢어져서 정상이 아니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어. 몹시.”


나는 아라를 등에 업은 채로 집으로 향했다. 늘 하던 대로 몇 번의 순간이동으로 건물 위로 올라갔고, 건물 위에서 위로 이동하며 집까지 가는 데에는 십분도 걸리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뒤, 나는 아라에게 할 얘기가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손을 씻고 세수를 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었다. 일단, 지금까지 요 며칠 사이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아라에게 이야기 하자.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방금 전 몇 시간의 일로 나는 아라에게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어폰에서 아직도 선명하게 들리는 울음소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일이 모두 끝난 후 마주친 두 눈에 글썽이는 눈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오늘 아라가 없었으면 순간 순간 나 혼자 대처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생겨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온 나는, 곧 아라에게 전부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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