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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간밤의 대화

by 봄단풍

[우수하씨. 최무혁입니다.]

“예.......?”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잠시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다가, 나는 마침내 코트 주머니에 넣어둔 명함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아! 아 네, 안녕하세요.”

[잠깐 집 앞으로 나오실까요?]

“아 예!”

[3분 뒤에 뵙도록 하죠.]


뚝. 전화는 그렇게 칼같이 끊어졌다. 아라에게 설명할 새도 없이 나는 곧바로 코트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야, 누군데, 누군데?”


쾅 소리나게 현관문을 닫고 낡은 아파트 복도를 뛰어갔다. ‘나오실까요’ 라니. 나오실 수 있을까요도 아니고, 잠깐 볼 수 있을까요도 아니고! 감정 없는 어조였던만큼 단어 하나하나가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내려가서 현관을 통과하자마자, 주위의 낡은 풍경과 대조적인 검은색의 세련된 세단 한 대가 스르륵 미끄러지듯이 문 앞에 나타났다.


덜컥 -

웅크리면 몸도 숨길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뒷문이 열렸다. 누군가 내리는 줄 알고 긴장했지만, 오히려 날 맞이한 건 비어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 안쪽 자리 깊숙히 비로소 그나마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수하씨.”

“아, 안녕하세요.”


최무혁씨는 그 때와 똑같은 복장이었다. 검은 정장바지와 구두, 하얀 셔츠, 검은 넥타이, 그리고 의사처럼 보이는 하얀 가운. 그는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손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예, 그...... 감사합니다.”


나는 어색하게 세단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닫았다. 기다렸다는 듯, 차는 서울의 밝은 야경속으로 느릿하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차 안은 리무진처럼 넓었다. 최무혁씨의 긴 다리를 쭉 뻗어도 앞 좌석에 닿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내가 탄 뒷좌석과 앞좌석은 검은색 칸막이로 빈틈없이 막혀있어서 누가 운전하고 있는지, 조수석에는 누가 타고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철저히 최무혁씨와 단 둘이 나란히 앉아있는 공간이었다.


“......”


화를 낼 것이 뻔했다. 생각해보면 최무혁씨는 계약서를 쓰자고까지 했었다. 주요 내용은 이 주라는 시간, 세일과 경찰 누구도 연락하지 않는다는 조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


“대외적인 사건은 벌이지 않기로 하셨었죠.”

“...... 예, 그렇습니다.”


화가 문제가 아니다. 만약에 내가 평가표를 빼돌린 것을 최무혁씨가 알고 있는 거라면, 세일그룹이 채용하겠다는 말을 철회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당일부터 활동을 하시더니 이번에는 대형사고를 치셨더군요.”

“당일이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최무혁씨를 쳐다봤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렸고, 곧 차 안의 스피커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낮 열 두시, 서울 시내 호텔에서 건물 전체가 전소되는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대로가 아닌 복잡한 골목 사이에 위치해서 소방차들의 접근도 어려웠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큰 피해와 더불어 많은 인명피해가 예상되었으나, 현장에 나타난 수상한 남자가 나타나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합니다. 시청자 제보 영상과 현장의 기자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시죠.]


“아, 맞다......”

“그리고 또 큰 일을 벌이셨던데.”


최무혁씨는 핸드폰을 꺼서 목소리를 멈춘 뒤, 고개만 돌려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때 분명 이 주 동안에는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기로 하셨었는데요.”

“예, 그랬죠......”

“다른 건과 혼동이 있으면 안 되니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방송국에 침입하셔서 내부 기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적이 있으십니까?”


헉.

온 몸이 차갑게 식었다.


창피함, 민망함, 그리고 그걸 넘어선 두려움이 정수리부터 엄지발가락 끝까지 관통하는 기분. 얼굴이 확 뜨거워지면서, 술을 댓병 들이키기라도 한 것처럼 띵하고 어지러웠다.


“......”


사실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제가 한 게 맞긴 한데 여자한테 홀려서 그랬습니다! 솔직히 그게 맞는 것 같아서요, 그 방송국이 맘에 안 들었거든요...... 그 짧은 순간에 아무리 빨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한 큐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변명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면 그건 그거대로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나는 결국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예, 제가 그랬습니다.”

“왜 그러셨죠?”


여전히 감정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게 더 무서웠다. 최무혁씨는 뒤로 묶었던 머리를 풀었다. 아무 장식 없는 검은색 고무링을 손목에 걸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을 몇 번 쓸어넘긴 그는, 다시 머리 뒤로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잘못된 행위였을지언정, 그 목적과 동기에는 한 점 부끄럼이 없었다. 그리고 이만큼 드러난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있는 대로 용기를 모두 끌어모아 다음 대답을 이어갔다.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조작으로 데뷔하지 못하고, 그 그룹의 성공을 지켜보던 사람이요. 자살을 반복적으로 시도하던 사람이라 이야기를 듣던 중,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되면 계속 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랬군요.”


최무혁씨는 답을 들은 다음에도 담담했다. 폭풍전야. 그래, 지금 최무혁씨의 상태는 그런 거다. 있는 대로 짜증과 화를 폭발시키기 전에 정말로 참작할만한 상황이 있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 그러니까, 터지기 전에 얼른 선수를 치자.


“죄송합니다.”


최무혁씨의 눈이 내 쪽을 향했다. 몸을 움찔할 뻔 했지만 최대한 나도 담담한 척, 시트의 끝에 걸터 앉은 채로 최무혁씨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원래 계약대로면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아뇨, 잠시만.”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최무혁씨는 안경 너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죄송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잖습니까?”

“어......”

“우수하씨는 저희가 반드시 모시고 싶은 인재입니다. 본인이 갖고 있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지난 번에 말씀드린대로 그 성품 때문이죠. 앞으로 저희 직장 동료가 되실 분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입사 선배로서 후배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안내해줄 수는 있죠.”


최무혁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서, 그 평가표를 피해자에게 전달하기 전에 정말 방송으로 나간 점수와 달랐는지는 먼저 체크하셨겠죠?”

“어......”

“혹은 방송국에 몰래 들어간다는 작전을 세우기 전에,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찾아보거나요. 예를 들어 방송국 직원이라든지, 오디션에 참가했던 다른 연습생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었겠습니다.”

“......”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가 말하는 방식이 어려워서도 아니었고, 그가 말했던 방식들이 무릎을 탁 칠만큼 명쾌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와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사뭇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수하씨를 질책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수하씨에게 이 밤 중에 온 것은 수하씨를 도와주기 위해서죠.”

“저요? 어떤...... 어떻게요?”


최무혁씨는 단정히 묶인 머리카락을 귀 뒤로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방송국의 고소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 시각 이후로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어...... 예?”


불과 몇 분 전, 아라와 내 속을 뒤집어놨던 사건을 정확하게 꼬집는 바람에 나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심지어 최무혁씨는 그 두 마디로 충분했다는 듯 더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어...... 어떻게, 에, 왜요? 아니, 그......”


한참이 지나서야 멍해져 있는 나를 쳐다본 최무혁씨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이고는 대답했다.


“세일전자는 보안용 CCTV도 개발합니다. 운영 소프트웨어도 같이요.”

“아하.”


그걸로 충분했다. 그가 왜 안심하라고 하는지, 잊어버리라고 하는지도. 그리고 잊어버리라는 말이, 단순히 그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아까 말씀드린대로, 수하씨가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 예상되어 찾아온 것 뿐입니다. 수하씨가 향후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저희 세일그룹이 할 수 있는 것도 보여드릴 겸해서요.”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안도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긴장감은 더욱 배가되는 기분.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최무혁씨는 손목시계를 흘끗 살펴보고는 다시 기계같은 말투로 물었다.


“삼분 뒤에 수하씨 아파트에 도착합니다. 혹시 더 궁금한 건 없으십니까?”


어떤 기분을 먼저 느껴야하는지 헷갈렸다. 혼자 저지른 범죄를 들켰다는 민망함, 창피함, 말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최무혁에 대한 두려움, 대기업의 위협을 무력화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와 안도감, 이 상황에서 초능력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


그리고 그렇게 혼란스러울 때면, 늘 호기심과 궁금증이 당돌하게 나서게 되는 것이다.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무혁씨는 고개만 내 쪽으로 돌렸다. 아무 말 없는 그 얼굴이, 어쩐지 얼른 말해보라는 의미같아서 나는 다시 한 번 툭 던지듯 물었다.


“그 아이돌 그룹...... 계속 활동해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 부분에 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최무혁씨의 대답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하긴, 주제넘은 질문이긴 했다. 내가 사고를 쳐놓고, 사고를 수습해준 사람한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니까.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슥 고개를 돌렸다.


“...... 하지만 결과물이 합당하면 과정이 부당해도 괜찮은지가 궁금한 거라면......”


최무혁씨의 말이 이어진 건 곧바로 그 다음이었다.


“...... 어렵네요. 시원하게 어느 한 쪽으로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는 갑자기 안경을 벗으며 한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 앉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마음으로는 과정과 결과가 모두 합당하고 공평하길 바라죠.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정을 따져볼 수 있는 것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보장되어야만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서울로가면 가면 어떻게 가든 누군들 무슨 상관이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지금의 세태가 그렇다는 거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기술이 현대 연구 윤리 기준에 어긋나는 실험에서 비롯된 적도 있죠. 만약 기원전부터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오는 실험과 연구만 진행이 되었다면 인류가 지금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요? 전쟁은 어떻습니까? 죄없는 사람이 수도 없이 죽고 나라가 무너져내리지만 그 덕에 새롭게 발전하는 기술이 있고, 그 덕에 이룩하게 된 업적들이 있으며, 그 덕에 세워진 빛나는 문명들이 있습니다. 그 결과를 놓고 볼 때에, 정말로 그 전쟁들이 단순히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까?”


최무혁씨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하도 비벼서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로봇처럼 한 번도 깜빡이지도 않고 그렇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그는 안경알을 하얀 가운에 닦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들겨듣는 노래의 가수는 성폭행범에 마약중독자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의 무대와 음악은 아직도 남아서 일년에 한 번씩은 스트리밍 차트 순위권에 올라오곤 하죠. 저도 매번 그 노래를 들으면서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 가수의 행동들을 안타깝게 여길 뿐입니다.”


논의가 한 층 더 깊어졌다. 섣부르게 던진 질문에 최무혁씨의 대답은 오히려 더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어째 내 머리가 점점 굳어가는 것처럼, 부드럽게 달려가던 차도 이제 서서히 속력을 늦추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결과든 과정이든, 무엇이 우선하는가, 혹은 무엇이 보다 유의미한가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할 뿐이죠. 그게 공정하고 합당한 과정 위에 세운 결과물이 됐든, 절실한 몸부림을 통해 성취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됐든. 평가는 그 모든 것이 역사가 되고 난 후, 그걸 되돌아보는 자들에게 달려있을 뿐입니다.”


느리게 가던 차는 완전히 멈췄다. 곧 최무혁씨가 말을 마치는 타이밍에 맞춰서 덜컥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 아뇨. 없습니다. 그......”


늘 그렇다. 이메일을 써도, 편지를 쓰더라도 끝인사가 항상 고민되는 법.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한 나는, 차에서 내린 뒤에 얼른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하핫.”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최무혁씨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무표정. 그런데도 불구하고, 분명 내가 잠깐 들었던 소리는 웃음소리였다. 비록 아주, 아주 아주 짧았지만.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무혁씨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차 문은 자동으로 서서히 닫혔다. 그리고 열린 창문 너머로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흥미로워서요. 수하씨가 그 초능력을 얻고 난 다음의 행보들이.”


그 말만을 남기고, 최무혁씨가 탄 차는 멀어져갔다. 그리고 아주 살짝이지만, 나는 최무혁씨의 입꼬리가 분명 위로 올라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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