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청송대 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
연세대학교 청송대 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
『내 인생 가장 빛나던 순간들』우대권作
나의 양친께서 거하는 집에는 앨범으로 꽉 들어찬 책장이 있다. 내가 긴 팔을 펴서 안아도 한 번에 두 권이상 안기가 힘든 두꺼운 앨범들인데, 그 몇 권의 앨범에는 내 형이 태어난 순간부터 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의 사진들이 누렇게 빛바랜 종이와 탁해진 비닐 사이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이 사진이 아직도 남아있나, 신기한 마음에 몇 장 들춰보면 그 때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채로 용케 붙어있더랬지.
청송대는 내게 그런 곳이다. 그래, 굳이 따지면 내게는 앨범같은 곳이다. 앨범이 보관하는 사진은 그 당시에는 그저 일상의 기록일 뿐일진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내 인생 가장 빛나던 순간으로 남게 된다. 잠깐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빛나던 순간들을 돌이키게 해주는, 그런 앨범.
처음 청송대에 발을 디뎠을 때는 입학 직후였다. 신입생들에게 캠퍼스를 소개한다는 일환으로 같은 과 선배들이 진행했던 게임을 통해 청송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동기들과 혀를 내두르며 ‘좋은 학교에는 숲도 있구나, 산책로도 있구나’ 하고 몇 번이고 칭찬을 늘어놓았더랬다. 물론 그 다음 본격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청송대는 내 머릿속 책상 아주 깊숙한 서랍 속으로 들어가버렸었다.
그리고 간간이 청송대에 들렀던 건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공강시간이 밖에 나가서 밥을 먹기에는 부족할 때, 매일 먹는 학식이 물리기 시작했을 때. 도시락이나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잔디밭이나 기울어진 나무 탁자에서 친구들과 재잘대며 먹는 밥이 푸성귀나 제철 야채없이도 어찌 그리 신선하게 느껴졌는지. 모두가 백양로 삼거리의 휘날리는 벚꽃을 노래할 때도, 나는 굳이 청송대에 와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가린 우거진 나무를 올려다 보곤 했다.
어쩌다가 다른 학교의 친구가 놀러오면 잠시 고민하다가, ‘우리 학교에는 숲이 있다’며 자랑스럽게 데려가기도 했었다. 조금만 걸으면 된다, 조금만 참으라며 데려가면, 그 계절이 언제였든 청송대를 처음 찾은 손님들은 관광지에 온 것마냥 사진을 담기 바빴다. 초록색 이불을 덮은 것처럼 이파리가 하늘을 완전히 가리는 한여름에도, 그 옛날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던 고전 명작 영화의 모습처럼 단풍 우거진 늦은 가을에도, 하늘에 금이 간 것처럼 자잘한 나뭇가지가 앙상하게 팔을 내민 한 겨울에도.
그렇게 몇 년 후, 군 전역 후 새로 만나게 된 소중한 연인과 함께 찾은 곳도 청송대였다. 무릇 전역한 군인은 입대 전과 달라진 생경한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은 반가운 친구를 찾게 되는 법인데, 청송대가 그랬다. 단지 이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바뀌어버린 건물과 길, 달라진 사람들과 헤어진 인연들이 아쉬운 그 순간에도, 청송대는 여전히 반가운 소리로 날 맞이했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와 먼 숲에서 신입생들이 떠드는 소리, 튼튼한 나무들 사이로 다람쥐와 청설모가 뛰어가는 소리까지.
물론 계절이 지나가듯 인생에 밝은 순간이 있다면 흐린 시간도 있는 법이다. 어느 겨울, 눈도 내리지 않고 바람만 싸늘해서 나무들이 온통 옷을 벗고 있을 시절. 취직에 실패하고 연인과도 헤어진 그 우울한 순간에 나는 청송대에 와서 혼잣말을 했더랬다. “그렇게 됐다.” 살다가 한 번에 몰려온 시련에 대해, 나는 그렇게 청송대에게 털어놨다. 어쩌면 그 당시 이사를 했던 터라 집마저 생경했던 내게, 그 때까지도 변치 않았던 청송대는 유일하게 마음을 기대놓을 수 있는 받침대 같은 곳이었다.
마침내 취업에 성공하고 당당히 학위가운을 입게 됐을 때.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던 나는 청송대 앞에서 발을 멈췄다. 학위가운에 흙이 묻으면 어쩌나, 나름 오르막길이라 가기도 힘든데 뭣하러 저기까지 가나. 그런 사소한 걱정들을 핑계로 나는 그저 미소만 한 번 지어보였다. 어쩐지, 학교 행사에 아들내미를 보러왔다가, 친구들 보기에 창피하다며 손사래를 치던 아들을 위해 먼 발치에서 인사만 하고 돌아가는 부모님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불편해졌었지.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난 뒤. 그 긴 시간 변하지 않았던 청송대가 바뀐다는 소식에 나는 황급히 발을 옮겼다. 그래, 꼭 그런 마음이었다. 분가 이후 명절에나 찾아뵙던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나는 불안해진 마음 추스르며 굳이 휴가를 쓰고 청송대를 찾은 것이다. “너, 바뀐다더라.” 그리고 어렸을 적 그 언젠가처럼, 나는 넋놓고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장난을 칠 때 기어오르던 나무도 쓰다듬어보고, 옷에 묻을까봐 걷기도 조심했던 흙바닥을 손으로 쥐었다 폈다 해보고. 한겨울 낙엽마저 드문 바닥에서 개미집을 찾아 뒤적여보고, 다람쥐나 청설모 소리가 들릴까봐 귀도 귀울여보고.
그 나무들에 남은 것은 단순한 세월과 나이테 뿐이었던들, 그 나무 사이 사이에는 꼭 영화 필름처럼 소중한 순간들이 담겨있었다. 신입생들의 동경의 눈빛, 휴강에 뛰쳐나와 시켜먹은 자장면의 빛깔, 연인과의 따뜻한 포옹과 싸늘한 바람에 흘려보낸 속 깊은 고민들, 그리고 먼 발치에서 지켜봤던, 그 때에도 참 덜 자랐던 졸업생의 미소까지. 나무 사이사이마다 늘어놓은 필름들을 하나 하나 훑으면서, 내가 청송대에 오면 으레 그랬듯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청송대에는 하늘 대신, 하늘에 이불을 덮어주는 나무가 있다. 눈부신 햇빛마저 귀한 스테인드 글라스로 바꿔주는 나무가, 그 사이 사이 소중한 기억들 필름으로 담아내어 고고하게 서 있다. 하지만 그 고고함도 정작 우리가 찾아가는 순간에는, 밤 열시 넘도록 저녁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부모님처럼 인자한 미소로 고개를 숙여주는 것이다. “잘 살고 있었냐”, 어색하게 말을 걸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됐다.” 열심히 살고 있다.
세상은 변한다. 우리가 집에 그리도 집착하는 이유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변치않고 나를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구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집이 아무리 공사를 하고 예쁘게 변한다 하더라도, 우리 양친께서 소중히 보관하고 계신 앨범은 소중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앨범에 담긴 것은 그 당시의 흔한 일상일지 몰라도, 긴 시간이 흘러 다시 들춰보게되면 내 인생 가장 빛나던 순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 학교가 집이라면 청송대는 앨범이다. 나의 모든 학교생활, 내 가장 아름답던 청춘, 그 스무살과 스물 다섯 언저리의 일상이 반짝거리며 남아있는 앨범. 그 오랜 사진이 빛바래지 않도록 더 튼튼해지길, 다만 그 사진들만큼은 선명히 남아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