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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퇴직유랑기 #16. 삶에 여백이 있었더라면, ..

겁많은 퇴직자의 유럽 5개국 8도시 여행기

by 봄단풍

나의 퇴직유랑기 #16. 삶에 여백이 있었더라면, 퇴직하지 않았을까?



셜록홈즈 박물관을 나오자 하늘이 좀 더 어두워졌다. 시간은 오후 세시 정도였지만 아무래도 하늘은 몇 시간 혹은 몇 분 안에 비를 많이 뱉을 예정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내린다기 보다, 여행 첫날에 오는 비는 뱉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필 첫 날부터 내려야하는 거냐, 하고 따질 수 있다면 따져보고, 협상이 가능하다면 내가 잘 때나 밖을 돌아다니지 않을 때, 혹은 감상에 젖고 싶을 때 내리도록 하고 싶었다.


사실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터라 하늘을 걱정하며 무작정 바로 앞의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어쩐지 좀 규모가 커 보이는 공원의 입구로 들어서게 됐다. 벤치도 많고, 길도 넓고, 잔디와 나무가 짙푸르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 시간 이 날씨에도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이 종종 보이고. 아무래도 월요일 오후, 평일인데다가 날씨도 흐려서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이 리젠트 공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수. 지금까지 서울에서 갔던 수많은 공원과 다른 점은 호수가 있었다. 그것도 꽤나 크게! 인공인지 자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조금 걷다보니 어쩐지 반가운 녀석들도 보았다. 회색빛 깃털에 몰려다니는 녀석들.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너희들.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서울에서와 똑같이 어쩐지 자기들끼리 바빠보였다. 또, 굳이 날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반갑게 느껴졌던 걸까.


그런데 걷다보니, 조금 이상한 친구들도 있었다. 서울의 공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친구들. 사진을 통해서만 봤던 신기한 깃털의 아이들이었는데, 크기도 비둘기랑 비슷한 녀석들이 편하게 인도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뚱히 쳐다보거나, 혹은 가까운 호숫가에 발을 담그고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문제는 그렇게 크기가 비슷한 녀석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저 만치 멀리 인도위에 무슨 쓰레기 봉투처럼 놓여진 거무튀튀한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가까이 갈수록 어쩐지 꼼지락거리는 것이 분명 저기 저렇게 가만히 있을만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마침내 그 것이 무엇인지 알 정도로 가까이 갔을 때, 녀석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눈을 마주쳐왔다.



“어…….”


그렇게 말하고 안녕, 이라고 했던 것 같다. 속으로했는지 겉으로 내뱉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거기 앉아있던 녀석이 무심히 고개를 돌리고 계속 앉아있던 건 기억이 난다. 아마 ‘뭘 봐’ 정도의 대답이지 안않을까 싶다.


가만히 둘러보니 참 다양한 새들이 많았다. 왜 다른 동물은 안보이고 새일까, 생각도 들었고, 도심의 공원에 어떻게 이런 새들을 풀어놓을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신기했다. 평소에 못 보는 새들도 있었던만큼 더 놀랍기도 했고, 동물원에 온 것처럼 설레기도 했다. 새들은 모두 사람들이 익숙한지 굳이 피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고, 일부는 오히려 밥을 줄 것을 기대하고 천천히 다가오기도 했다.







또 마음에 들었던 건 넓다는 거였다. 분명 런던도 세계적인 도시에 속할 텐데, 게다가 차가 다니는 도로도 참 신기할 정도로 좁았는데, 어떻게 이런 큰 공원이 자리할 수 있는 걸까? 게다가 리젠트 공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를 비롯해 하이드 파크 등등 크기로는 뒤지지 않는 공원들이 런던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잔디도 많고, 벤치도 넉넉하고.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에 촉촉해진 나무 벤치에 슬며시 앉았다.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 뭔가를 기대하며 눈치를 보는 새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아래 춤추는 잔디, 흐린 하늘 담아내어 깊고 어둡게만 느껴지는 호수. 그 너머 공원에는 역시나 어두컴컴한 숲이 바람따라 일렁이고. 그토록 원했던, 직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휴식이 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늘한 바람 아래 따뜻한 커피가 한 잔 있었더라면 더 온전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 그 삭막한 직장 생활에서도 이런 시간과 공간이 하루에 한 시간씩이라도 허락이 되었더라면 나는 퇴직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을까…….


나는 왜 우대권으로 태어났을까. 놀리기도 애매하고, 바꾸기에도 애매한 이름. 왜 내 키는 170이 될까말까하며, 내 피부는 그토록 까무잡잡하게 타기가 쉬울까, 왜 내 눈에는 쌍커풀이 없을까, 왜 나는 수염이 그토록 어울리지도 않는 건지, 왜 나는 웃을 때 보조개 대신 팔자주름이 생길까! 내 성격은 왜 27년 동안 그토록 소심하게 자라왔는지,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에는 목말라하고 또 갈급해하는지. 나는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며, 도대체 어떻게 수능을 거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졸업과 취직을 어떻게 했고 어쩌다가 또 퇴직을 하게 되었는지.









세상 사는 게 알 수 없고 그래서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문득 그 모든 것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우주보다도 큰 범위의 궁금증일때도 있고, 때로는 너무나 지엽적이고 소소한 궁금증이기도 한데, 이렇게 공원에 앉아서 생각할 때에는 그 범위와 규모에 상관없이 오랫동안 머리에 머물곤 했다. 인주에 깊게 담갔다가 찍은 도장처럼, 공원을 박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게 되는 것이다. 사색, 깊은 생각, 혹은 뻘고민일 때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공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에, 내가 사는 곳에. 삶 자체가 공원으로 느껴져서 어딜가든 산책하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 아니, 좋을까? 내 자신은 깊숙해지지만 정작 떠진 눈으로 담아내는 풍경이 늘 똑같다면, 수채화처럼 그린 듯 안 그린 듯 마음에 걸쳐져 있다면 내가 깊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냥 그런 깊은 생각말고. 그냥 서울에도 이런 공간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무나 와서 편하게 걷고, 편하게 보고, 듣고 느끼며 또 생각하는 공간. 잔디밭에 누워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책도 읽고, 혹은 아무것도 없이 걸어와 앉아서 세상 모든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냥 이렇게 멍하니, 쓸데가 있든 없든 생각하는 시간이 그리웠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수업시간에 멍 때리거나, 하다 못해 책을 펴놓고도 내가 하고 싶으면 멍하니 딴생각을 할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도 내가 하고싶을 때 공부를 하고, 놀기도 하고, 또 필요할 때는 캠퍼스든 산이든 어디로든 가서 생각을 할 여지가 많았다. 물론 취직 이후에는 애초에 시간의 여백이 허락되지 않았었지만.


그림에도 여백이 필요하고 노래에도 간주 구간이 있으며, 소설이나 영화에도 맥없이 흘러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듯 눈 뜨고 살아가는 시간에도 여백이 필요한데, 세상에서는 그 시간을 그저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하곤 했다. 시간은 무조건 꽉 채우고 무언가를 해야 보람이 남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낭비일 따름이라며.


공원은 녹색으로 대표되곤 한다. 컴퓨터를 많이 접하는 도시인의 눈에, 나무와 잔디의 녹색은 피로감을 감소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매연과 스모그로 숨쉬기 어려워지는 도시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한다며. 어쩌면, 사람들의 사고의 측면에서 공원은 흰색이 아닐까. 회색빛 꽉 들어찬 도화지에 하얀 여백을 그려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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