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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Jul 01. 2022

4. 확신에 대하여

퇴고없이 쓰는 글


확신에 대하여.


무언가에 확신을 갖게 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그것은 굉장한 축복이라며 축하하고 부러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확신이 언제까지 갈 지에 대한 의구심을 속으로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군가가 자기 자신일 때 더욱 후자쪽으로 강하게 작용한다.


이를테면,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그렇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한창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셜록 홈즈 등을 읽으며 여러 이야기에 빠져있던 나는, 형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국산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버리게 됐다. 그건 요즘의 말로 ‘덕질’이라는 것으로, 앞서 열거한 걸작들에 빠지게 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의 애착이었다. 혹시나 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그건 전민희 선생님의 룬의 아이들 이라는 소설이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판타지 소설에 푹 빠져버린 나는, 판소 덕이라면 응당 해야할 그 다음 팬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내 마음대로 뒷 이야기를 이어서 쓰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에서 고생했던 주인공이 행복했으면 했다. 하지만 바로 행복한 일상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건 재미가 없으니, 그 주인공이 겪어보지 못한 약간의 시련을 넣으려고 했다. 겪어보지 못한 시련이어야 했으니 새로운 인물들과 갈등이 등장해야했고, 그런 이야기를 짜다보니 어느새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슬쩍 이야기의 주변부로 물러나있었다.


나는 그 다음에도 여러 소설들을 읽었다. 그리고 결말을 겪고 나면, 그것이 행복한 결말이었든, 슬픈 결말이었든,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밍숭맹숭한 결말이었든, 나는 그 뒷 이야기를 멋대로 이어서 쓰곤 했다. 때로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새로운 시련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이야기의 소재에 나만의 새로운 인물들을 집어넣기도 하면서, 매번 쓸 때마다 가장 마지막으로 읽었던 작품의 문체를 은연중에 따라 썼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겼다. 나도 그런 감동을 만들어보고 싶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 글을 읽고, 내가 느꼈던 것들을 느끼게 해보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그렇게 글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이십년이 됐다. 물론 어느 분야에서든 이미 한 번이라도 멋진 결과물을 낸 사람들의 이십년과는 다른 이십년이다.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수능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군대를 가서 또 틈틈이, 취업 준비를 하다가 틈틈이, 첫 직장에서는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쉬다가 퇴직을 하고 반 년 정도 가열차게, 그리고 두 번째 직장에서 또 틈틈이. 그런 설렁설렁인 이십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에도 부끄러운 시간이긴 하다.


아무튼, 그렇게 긴 시간 글을 쓰면서, 누가 보더라도 대단하거나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낸 적은 아직 없다. 사내 공모전에서 수상, 이벤트 공모전에서 수상, 학교 백일장에서는 장려상 – 그 때 내 시를 심사했던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 정말 네가 쓴 것이 맞냐고 따지기까지 하셨었다. 심지어 내 담임 선생님이셨는데도! - 그게 전부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글쓰기에 대한 확신이 있느냐, 그렇게 묻는다면 대답하기조차 부끄럽다. 이십년동안 글을 써서 내놓은 결과물이 고작 이 정도라면, 확신을 갖는 게 더 이상한 거다. 그래, 요즘 세상의 시선대로라면 분명 그렇지. 


그럼 그렇다고 글을 그만 쓸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럼 굳이 글을 통한 좋은 결과를 바라지 않고, 온전히 글을 쓰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쓰는 것이냐, 하면 솔직히 그것도 아니다.


그럼 글을 쓰는 것이 스트레스가 풀리냐, 글 쓰는 게 재밌고 그 자체로 즐거워서 쓰는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절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고통인 시간이 더 많다. 글을 쓰지 않으면 영영 소중한 뭔가를 놓쳐버릴 것 같은, 쫓기는 기분이 들어서 억지로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는 경우도 많고.


“그럼 대체 글을 왜 쓰는 건데?”


이건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하는 말. 결과를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내 글과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요, 대체 글을 왜 쓰는 건데?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삼십년이 넘도록 살아온 인생 가운데에 확신을 가지고 했던 일이 몇이나 있었나 싶다. 그리고 확신을 가졌었다 한들, 그 자체로 잘 풀렸던 일이 또 몇이나 있었나 싶고. 


그래서 그런 가설을 한 번 세워봤다.

애초에 인생에서 ‘확신’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하는 일이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 건 생각보다 외로운 일이다. 어차피 주위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글을 쓴다고? 그리고 며칠 뒤에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지기가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자기 자신인데, 그 믿었던 녀석조차도 글을 쓰다보면 냉혹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게 되겠냐? 왜 쓰고 있는 건데? 차라리 새로나온 제다이;오더의 몰락을 한 시간이라도 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글을 쓰지 않는 다른 행위’에 대한 유혹은 상당해서, 여러 가지 합리화 방안을 가지고 온다. 대표적인 건, ‘지금 다른 걸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받자’는 것. 이 유혹은 정말로 뿌리치기 힘들다.)


아무튼 그런 유혹들과 냉소, 자기 비하들을 이겨내고 억지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떠오른 설정이나 이야기들을 작은 공책에 끄적끄적대는 건 내게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그건 살면서 내가 이뤄온 여러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하면서도 이게 되겠나 싶었고, 취직준비를 하면서도 이게 되겠나 싶었다. 대학을 가려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직장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 일단 나 자신은 물론이요 미래의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러니까 이 길고 긴 글을 겨우겨우 정리하자면, 내가 글을 쓰는 건 그 이유가 있어서다. 쓰면서 고통스럽고, 그렇다고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데도 글을 쓰는 건, 그래도 잠깐이나마 내가 미처 생각 못했던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괜찮아 보이는 글이 생각날 때면 무척이나 즐겁고, 누군가 그걸 읽고 한 명이라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의 한 백 배 정도로 기분이 좋아서. 그리고 그런 댓글이 딱 하나라도 달린다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본래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은 그리 길지 않다. 짧고 간결한 단어 선정으로 하고싶은 말을 분명히 하고, 그 안에 함축적인 의미까지 담아내는 것이 정말로 잘 쓰는 것일 테니까. 그러니까 나도 글을 연습하는 차원에서 ‘왜 글을 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하자면 딱 두 문장으로 할 수 있겠다. 요즘 말로 치면, 덕후에 관종이다. 내 세상을 만드는 데에 심취하고, 한 명이라도 그 놀이동산에서 놀아주면 고마워하게 되는 그런 덕후. 그리고 덕후의 취미생활에 ‘확신’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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