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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Jul 30. 2022

6. 어떤 휴가를 원하세요?

퇴고없이 쓰는 글



어떤 휴가를 원하세요? 휴양지에서 좋은 음악과 함께 푹신한 침대에서 한적한 경치를 관찰하는 휴가? 아니면, 보도블럭부터 벽, 심지어 도로에 깔린 아스팔트까지 낯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역사와 그 흔적을 관찰하는 휴가? 그것도 아니면 그 어디에도 가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한 일상의 공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옆에 두고 평소에 벼르고 벼르던 취미생활을 하는 휴가?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휴가란, 사랑하는 사람과도 비슷해서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대하게 만들곤 합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그 모든 종류의 휴가를 모두 원합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휴가 때 만들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딱 한 가지가 떠오르긴 합니다.


먼저 바다가 보여야합니다. 건물들, 전광판, 네온사인, 혹은 튜브와 돗자리를 들고다니며 모래사장을 빼곡하게 메우는 사람들이 있는 해수욕장이 아니라, 잔잔한 파도만 모래사장을 핥듯이 스쳐지나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조용한 바다가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단, 혼자만 있으면 안 됩니다. 띄엄띄엄, 서로 먼 간격을 두고 나와 똑같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몇 명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바다 위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비유가 제각각인 복슬복슬한 하얀 구름들이 떠다녔으면 좋겠고요. 그 모습을, 짚고 일어나려는 손도 포근하게 감싸주는 푹신한 쿠션 위에서, <문명6>를 켜놓은 노트북을 가지고 감상하는 것. 구름 하나 보고, 턴 하나를 넘기고. 파도 한 번 보고, 또 턴 하나를 넘기고. 그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가고 싶은 휴가랍니다. 


하지만 이렇게 즐길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휴가를 누리는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사람이란 것이 참 간사해서, 일상의 힘든 순간 중에는 곧 다가올 휴가를 생각하며 행복해하다가도, 막상 휴가를 가면 휴가가 끝난 다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불안해하곤 합니다. 또 하필이면 이런 불안감은 휴지 위에 떨어뜨린 물방울처럼 한도끝도 없이 확장되는 경향이 있죠. 아마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내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되면 가족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좋은데, 가족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혹시 나 없는 사이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 아닌가, 그들은 힘든 것이 아닐까, 그들은 아프고 힘든데 나만 지금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요.


물론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가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해서 질투를 하거나 미워할 사람들은 아닙니다. 내가 아끼는 만큼 그들도 저를 아낄테고, 그렇다면 제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잘 지내다 오기를 바라겠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곳에 가든 와이파이가 잘 되어 있는 요즘은 휴가를 가더라도 걱정이 덜합니다. 문명6의 턴과 턴 사이에,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메신저 한 번씩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즐기고 행복한 순간에도 기도를 하는 거죠. 제가 즐거운 이 순간에도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고요.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건 그래서인가봐요. 나 없는동안 잘 지냈니, 나는 거기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지, 이걸 좀 봐봐. 이건 그 곳에서 당신을 생각하면서 사본 거야. 소소하지만 받아주시게나. 뭐 이런 의미요. 내가 갔던 그 곳은 정말 좋았다네, 당신도 그렇게 계속 건강을 유지하면서, 언젠가 시간이 나면 꼭 한 번 즐거운 시간을 다녀오시게나. 당신이 가는 곳이 휴양지든, 낯선 곳이든, 아니면 일상 속 익숙하고 따뜻한 품이든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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