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

우수하씨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by 봄단풍

“우 주임!”


하루의 시작은 늘 비슷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맞다고 친다면 하루 일과의 절반은 똑같이 보내는 셈이다. 하필이면 이루어지지 않은 짝사랑에 대한 기억을 꿈에서 다시 마주친, 그런 씁쓸한 하루더라도 말이다.


“예, 차장님.”

“몇 시야, 지금이?”


나는 슬쩍 시계를 내려다보고는 대답했다.


“지금 여덟시 오십 분…….”

“내가 시간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러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이 날아오는 것이다. 펄럭펄럭, 아침 햇살 속에서 혼자 두둥실 떠가는 먼지처럼 느릿한 목소리.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차가울지언정, 적어도 그 목소리는 놀랍게도 꽤 마음이 놓이는 편이다.


“으이?”


이렇게 되물을 때는 빼고.


“내가 시간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냐고.”

“아뇨.”

“그럼 내가 왜 물어봤는데?”


그렇다. 여기까지가 매일 비슷한 하루의 시작, 하루의 절반이다. 내용은 달라질지언정 늘 퀴즈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게 만약 장학 퀴즈고 한 번 정답을 맞힐 때마다 오백원이라도 주어지는 것이었다면, 나는 활기차게 발을 동동 구르면서, 또 머리를 쥐어짜내면서라도 몇 번이고 정답을 외쳤겠지.


“내가 왜 물어봤냐고?”

“잘…….”

“어떻게 벌써 몇 년을 다니는데 나보다 일찍 나오는 날이 없냐?”


여기서 단순히 '삼 년이요'라고 대답했다가는 장학퀴즈 오답 알림 소리 뺨치는 호통이 날아오기 마련이다. 보통 퀴즈는 이런 식이다. ‘어제는 몇 시에 퇴근했어?’, ‘나보다 먼저 퇴근했네?’, ‘왜 먼저 퇴근했어?’ 그런 질문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곧 본인의 모범답안을 또 다시 질문 형식으로 풀어놓는 것이다.


“일찍 일찍 좀 다녀. 아홉시 전에만 도착하면 다야? 아홉시 근무 시간이면, 인마. 한 여덟시 반에 와서 미리 준비도 해놓고, 마음가짐도 좀 갖고 말야. 어?”

“예.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 바보라서 늦게 다니는 거야?”

“좋은 아침입니다~”


때마침 들어오는 남과장님의 인사에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박차장님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 것이 보였지만, 그는 내 얼굴에서 한참동안 눈을 떼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가 봐. 계속 볼 거야, 몇 시에 오는지.”

“예.”


슬쩍 고개만 끄덕이고 얼른 내 자리로 발을 옮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있을 때는 가장 오기 싫었던 파티션의 감옥이 이렇게 박 차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면 가장 아늑한 피난처가 된다.


“왜 그러는데?”

“늦게 나왔다고요.”

“내가 더 늦게 나왔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파티션 너머 바로 옆 자리에서 속삭이는 남과장님은 출근 시간만 봐도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었지만, 얼마 전 아이를 낳고 승진한 이후로는 갑자기 무게감이 생기고 조용해진 사람이기도 했다.


“과장님.”

“어?”

“동찬이는 잘 커요?”

“어. 무럭무럭. 너무 잘 커.”


남 과장님은 의자를 몇 번 기우뚱거리면서 킬킬대고 웃었다.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피곤하지.”

“그래도 좋아요?”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몸을 흔들거리던 남 과장님은 한참 허공을 응시하더니 대답했다.


“너도 나중에는 알게 될 거다.”

“와, 어른이다, 어른.”


그는 또 다시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파티션이 높아서 망정이지, 차장님 귀에라도 들어갔더라면 겨우 피난처로 대피했던 아침이 또 다시 혼란스러워질 뻔했다.


“저는 무서워요.”

“뭐가?”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지금 제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애를 키울 수 있을까, 낳을 수는 있을까 싶고.”

“그 전에 결혼은 할 수 있겠냐?”

“너무하시네, 진짜.”


남과장님은 킬킬거리더니, 이번에는 그 묵직한 의자를 끌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실 나도 그랬거든.”

“무서웠어요? 과장님도?”

“응. 나는 딱 두 개였어. 무서웠던 게.”

“뭔데요?”


그는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허공을 잠시 올려다봤다. 파티션 너머의 어딘가를 멍한 눈으로 훑어보던 남과장님은 곧 천천히 입을 뗐다.


“하나는 내가 내 애를 보고도 사랑이 솟아나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

“에이.”


설마 과장님이 그러겠냐고 웃으면서 응수했지만, 정작 그렇게 말을 한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진지했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면서 내 웃음을 가로막았다.


“진짜야. 혹시나 나한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문제가 있어서, 애를 보고도 사랑이 안 생기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그런데요?”

“그건 초음파 사진 보자마자 말끔히 해결됐지. 그건 아니더라고.”


여전히 설명을 이어나가는 그의 눈에는 초점은 없었지만,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심지어 차장님께 업무 보고를 하는 순간보다도 더.


“그건 진짜 말로 표현 못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랑, 제일 사랑하는 순간에 만든 거잖아? 나는 만들어진 줄도 몰랐는데, 그냥 와이프가 생겼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던 건데. 막상 그 화면에서 꼬물거리고 움직이는 걸 보니까…….”


그는 그렇게 설명하다가, 오늘 중 처음으로 내게 똑바로 눈을 맞췄다.


“야, 다르더라. 그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씩 웃더니, 꼭 영화에 나오는 든든한 조연처럼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고는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육중한 몸을 넓고 넓은 책상 아래에 끼워 넣었다.


“다른 하나는요? 걱정 두 개였다면서요.”

“아, 그거?”


그는 알겠다는 듯 되물었지만 정작 말을 하면서도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 켜진 모니터를 보며 열심히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이어나갔다.


“마음의 준비.”

“예?”

“마음의 준비가 잘 안 되더라고.”

“무슨 마음의 준비요?”


그는 또 다시 말이 없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고. 파티션 위로 고개를 슬쩍 내밀어서 분위기를 살피는 듯 하더니, 또 다시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고. 그는 그렇게 업무에 완전히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전까지는.


“나 자신. 내 자신에 대한 걱정이지. 내가 진짜로 아빠로서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해결했는데요, 라고 물어보려다가 나는 거기서 멈췄다. 그건 일종의 예감이었다. 그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어서, 혹은 그런 걱정에 공감을 해서라기보다는 육감 너머의 예감으로 느껴지는 대답이 있어서.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내가 그 질문을 던지면 그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질문을 바꿨다. 잠깐의 감각을 믿고 생각을 굴린 것이 나름 먹혔는지, 남과장님은 다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평소에는 늘 장난을 치고 한없이 가벼워보였던 그가 이상하게 그 순간만큼은 세상 가장 무겁고 진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니. 동찬이 덕분에 배웠거든.”

“뭐를요?”


이번에는 나는 홀린 듯 이어지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남 과장님도 마치 홀린 듯, 또 다시 초점없는 눈으로 나와 남과장님 사이의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나를 사랑하는 법.”


그렇게 얘기하고는, 남과장님은 씩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진지한 대답을 남과장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남과장님이 일에 몰두하고 몇 초가 더 지나도록 움직이지 못하고 파티션에 한 쪽 다리를 걸친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내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과장님은 몇 초 뒤 갑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되게 부족한 사람이거든? 그렇잖아, 유독 옛날 기억 중에는 부끄러운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내가 살면서 얼마나 못난 짓을 많이 했는지 나는 기억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못난 놈인데. 그런 내가 보살피고, 챙겨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큰일나는 사람이 생긴 거잖아?”

“그런데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동찬이도 사랑해 줄 수 없다고.”


남과장님은 여전히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묵직한 말을 던지면서도, 평소처럼 지친 듯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부족한 사람도 나라고 받아들이게 되더라고. ”

“와, 과장님한테서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들을 줄이야.”

“너도 때 되면 다 알게 된다. 일단 결혼이나 걱정해.”

“예, 예.”

“아니면 연애부터 걱정하든가.”

“아, 진짜. 너무 하시네, 정말.”


또 다시 파티션 너머에서 들려오는 킬킬거리는 웃음소리.


“아니, 진짜로 근데 연애는 안 할 거야? 요새 마음 가는 사람은 없어?”


이번에는 내가 멍해질 차례였다. 나는 이미 바탕화면이 띄워진 모니터에 눈을 두고 한참동안 가만히 있다가, 무심하게 툭 대답을 내뱉었다.


“없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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