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다를 수록 더 잘 맞는.

by 봄단풍


그런 날이 있다. 계획했던 모든 일이 틀어지는 날.


세 개의 알람을 맞춰놨더니 충전기가 망가져 핸드폰이 꺼져있었고, 겨우 컴퓨터로 시계를 봤더니 아침 여덟시 십분, 후다닥 일어나서 씻는 둥 마는 둥 옷은 대충 걸치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는 놓쳐, 신호등도 가는 곳마다 빨간 불, 버스도 놓쳐, 지하철도 눈 앞에서 문이 닫히질 않나, 용케 다음 열차를 타고 도착한 역에서 올라왔더니 갑자기 비가 오질 않나!


“우수하!”


하지만 하루에 겪게 되는 불행의 총량에는 제한이 없어서, 평소에 겪지 않았던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늘 겪는 불행이 사라지지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나 헐레벌떡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박차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일찍 일찍 다니랬더니 몇 시야, 지금? 그리고, 오자마자 일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부터 충전하냐?”

“죄송합니다. 배터리가 나가서…….”


그 다음은 비슷했다. 근태에 대한 지적, 사회생활에 대한 지적, 이어지는 지적들에 나는 그렇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차장님의 자리 아래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고, 나는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를 연신 이마에서 닦아냈다.


“가 봐. 가서 일 봐.”


그 놈의 비만 안 왔어도. 나는 내 자리 바닥에 대충 머리카락을 털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운이 안 좋은 건 그럴 수 있다. 살다보면 이렇게 다 안 들어맞는 날도 있는 거지. 근데 그 놈의 비만 안 왔어도 덜 불쾌했을텐데, 적어도 홀딱 젖은 채로 땀까지 흘리는 기분 나쁜 경험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비가 싫어졌어요?”


몇 시간 뒤, 아무도 없는 휴게실 창가에 서있던 주리씨는 그렇게 물어왔다. 내가 에어컨에 등을 돌리고 셔츠를 말리는 사이, 깔끔한 정장 바지와 살구색 블라우스 차림의 주리씨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묶고 있었다.


“싫어진 게 아니라 원래 싫었어요.”

“그래요?”


휴게실 문 밖의 좌우를 연신 살피던 주리씨는 갑자기 문을 닫고는 휴게실의 불을 껐다. 경쾌한 달칵 소리와 함께 휴게실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복도 바깥의 불빛은 희미했고, 벽을 따라 나있는 창문 밖은 먹구름 가득한 하늘 덕분에 꼭 밤처럼 어두웠다. 휴게실을 채우는 건 그 먹구름 아래의 흐린 세상의 빛깔 뿐이었다.


하지만 주리씨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휴게실을 가로질러 가더니 밖으로 난 창문 하나를 달칵, 열었다.


쏴아아- 불꺼진 휴게실 안으로 도시를 차분하게 덮는 빗소리가 스며들어왔다. 멀리서, 저 멀리서부터 쏴아아- 하는 소리. 바로 옆에 자라난 나뭇잎을 때리는 투두둑, 하는 소리. 어디선가 모인 물줄기가 어딘가로 흘러가는 졸졸졸- 소리. 비가 올 때는 조용할 줄 알았던 매미가 목청껏 우는 맴맴맴- 소리. 멍하니 주리씨를 보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내게, 그녀는 갑자기 한 손을 내밀고 까닥,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는 홀린 듯 발을 천천히 옮기다가 희미한 불빛이 새어들어오는 휴게실 문 밖을 쳐다봤다. 나는 아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주리씨 앞으로 다가갔다.


“들려요?”

“네.”


뭐가 들리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얼마나 그 소리를 듣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빗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소리, 나뭇가지들이 우는 소리, 빌딩 숲 사이로 차들이 물을 튀기는 소리와 신경질적인 경적소리, 매미소리, 그리고 또 빗소리. 잠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투둑 툭, 비가 창문을 두드리면서 봐달라는 듯 세게 귀를 울렸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주리씨는 검지손가락으로 창밖을 몇 번 찌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그녀의 어깨가 위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사르륵,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여전히 창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빗소리 사이로 그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해봐요.”


나는 홀린 듯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텁텁한 휴게실의 공기가 맨 처음 코를 틀어막다가 곧 창밖의 시원한 냄새가 그 공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비에 흠뻑 젖어 축축해진 도시의 꿉꿉한 냄새. 아스팔트 위에 고인 물을 튀기면서 달리는 자동차의 매연과, 이 축축함 속에서도 누군가 어떻게든 피워낸 담배 냄새. 그리고 길 위에 나란히 서서 목을 축이는 나무의 향기와, 칙칙한 도심 곳곳에 숨어있는 흙이 서서히 젖어가는 냄새.


여름이었다. 동풍이 조심조심 녹여낸 겨울의 발자국도 모두 지워지고 드디어 꽃이 피었나 했더니, 어느덧 그 꽃도 모두 지고 파릇한 잎과 그 사이사이 숨은 풀벌레들이 노래하는 여름이 다가와 있었다.


“아직도 비가 싫어요?”


주리씨의 말에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내가 눈을 뜨기 전부터 한참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주리씨는 그 큰 눈을 깜빡이며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절로 나오는 웃음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싫어요.”


주리씨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그 때쯤 얼굴이 축축해진 것 같은데, 열어뒀던 창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와, 너무해. 나 그래도 되게 노력한 것 같은데.”

“거의 성공할 뻔 했어요.”

“아쉽다. 어쩔 수 없죠.”

“주리씨는 어떤데요? 비 오는 날이 좋아요? 맑은 날이 좋아요?”

“전 둘 다요.”


나는 살짝 몸을 뒤로 빼고 주리씨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또 다시 눈을 깜빡이면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눈을 마주 깜빡이면서 간신히 대답을 끄집어냈다.


“그럴 수도 있죠.”


주리씨는 내 대답을 듣고도 나를 한참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밥솥처럼 쿡, 쿡쿡, 하고 조금씩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것 봐. 수하씨는 다르다니까요.”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뭐.. 뭐가... 왜요?”

“보통은 뭐라고 해요. 둘 다 고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나는 여전히 눈만 깜빡이면서 서 있었다. 그 사이 주리씨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가, 조금 지나서 다시 내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볼게요. 수하씨는 여행을 하면 휴양이 좋아요, 관광이 좋아요?”

“여행이요?”


곧바로 튀어나오려고 했던 대답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였다. 입사 이후에는 휴양이든 관광이든 즐길 수 있는 긴 휴가를 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었다. 기껏해야 오전 반차, 건강검진이 있다면 하루 연차 정도.


“둘 다요. 지금 가라면 휴양지를 가고 싶긴 한데.”

“음, 그러면 조금 더 쉽게. 수하씨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먼저 들어요, 선율을 먼저 들어요?”

“어……. 그 때 그 때 다른 것 같은데요.”


주리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를 한참 쳐다봤다. 마치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씨익 웃었다.


“저도 그래요.”

“오.”

“그런데 보통 그러면 뭐라고 하더라고요. 하나를 정해야지 다 좋은 게 어디 있냐고. ‘휴양지가 좋아, 관광지가 좋아? 둘 다 좋다고? 그런 게 어디있어. 둘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게 있겠지. 하나만 골라봐.’ ‘가사가 좋아 선율이 좋아? 둘 중 하나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게 있을 거 아냐?’”


그녀는 벽에 기댄 채로 다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내게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창밖의 세상으로 향해있었다.


“사는 게 무섭다고 하는 이유가 선택을 너무 강요해서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선택들.”

“그렇죠.”

“하지만 세상에 뿌려진 아름다운 것들은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을수록 많이 누릴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맑을 땐 맑아서 좋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휴양지를 가면 쉬어서 좋고, 관광지를 가면 볼 게 많아서 좋고.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감사할 것도 많아지는 거죠.”


그녀는 다시 눈을 내게로 돌렸다. 또 다시 사르륵,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흐르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무섭다는 세상도 어떨 때는 아름답기 마련인데, 어떻게 세상 모든 것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확정할 수 있겠어요?”


주리씨의 눈이 깜빡였다. 그 작고 짙은 속눈썹이 꼭 커튼을 쳤다가 걷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커튼이 열린 그 커다란 눈망울 안에는 칙칙한 휴게실과 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담겨 있었다.


“그래서, 수하씨는 지금은 어때요? 비가 싫어요?”

“네. 싫어요.”

“아직도?”

“그래도 지금 이 휴게실은 좋네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다시 한 번 창밖의 냄새가 서서히 가슴에 스며들었다. 흙냄새인지 물냄새인지, 빗 속에 푹 젖어버린 세상의 냄새가 코 아래에 자리잡을 때쯤 나는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불 꺼 놓은 휴게실도 좋고, 비오는데 열어놓은 창문도 좋고. 바깥에 조용한 복도도 좋고, 빗소리 들리는 것도 좋고.”


주리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그 눈빛에 쓸데없는 용기가 생겨서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아직 비는 싫어요.”

“단호하시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주리씨는 어느새 미간을 아주 살짝 찌푸린, 장난꾸러기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래, 달라야 더 딱 들어맞는 법이잖아요.”


그녀는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잠에 드는 것처럼 씩 웃으며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벽에 기대 서서 눈을 감은 그녀를 보고 내가 혹시 지금보다 더 큰 용기를 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주리씨는 다시 손가락으로 열려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우리는 그렇게 열어 둔 창문을 두고 함께 눈을 감고 한참을 서 있었다. 빗소리, 비내음, 소리와 냄새가 휴게실을 가득 메운 그 시간이 영원하길 기도하면서.


하지만 회사 휴게실은 그렇게 넋 놓고 있기에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곧 나와 주리씨는 각자 핫초코와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불을 켜놓은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서로 다른 층으로 헤어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씩 웃더니 속삭였다.


“저는 비가 좋아요.”

“저는 비가 싫어요.”


나는 주리씨의 눈을 들여다봤고, 그녀도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서로의 눈에서 ‘그래도…….’로 시작하는, 같은 문장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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