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에 대한 이야기
보통 꿈을 꾸면 말도 안되는 내용의 꿈을 꾸곤 하는데, 간혹 그런 꿈을 꿀 때가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잊고 있었던 일에 대한 꿈. 그 날 꿨던 꿈의 내용은 아마도 내가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몇 년동안 사귀었던 아주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냈던 건 딱 그 때쯤의 일이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 느껴져.”
스탠은 그렇게 말하며 힘겹게 눈을 깜빡였다. 병원에 가자고 해도 일하던 곳에서 눈을 감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던 그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소원대로 일터에서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앉아있었다.
“좀 누워있지 그래.”
“아니, 괜찮아. 이대로…….”
열어둔 창문 앞의 촛불처럼 스탠의 생명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한숨을 푹 내쉬며 잠시 눈을 감은 그는 몇 분이 지났을까, 혹시 정말 마지막 순간을 내가 놓친 것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쯤 다시 눈을 떴다.
“할 말이 있어.”
“알아, 알아. 나 여기 있어. 천천히 얘기해도 돼.”
그리고 눈을 두 번 깜빡. 그가 말했듯이, 우리에겐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눈을 뜰 때마다 방 안이 환해졌고, 감을 때마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그동안 고마웠다.”
“뭐가?”
“계속 날 옆에 둔 거.”
말을 잇기가 쉽지 않았던 걸까, 기침을 하며 힘겹게 숨을 쉬던 그는 이내 눈을 감았다.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지만 아까와 달리 한 번 감은 눈을 쉽게 뜨지 못했다. 팔을 잡아 흔드니 그제야 놀란 듯 겨우 눈을 떴다. 다시금 함께 있는 방 안이 환해졌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이 길지 않을 것임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너는……. 하고 싶은 말 없어?”
“수고했다.”
기다렸다는 듯 내 입에서 답이 튀어나왔다. 앉아있는 그는 뭔가 더 이야기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그 뒤를 잇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울컥, 가슴 깊숙한 곳에서 쑥 올라온 무언가가 목구멍을 꽉 막고 있던 터였다.
“수고했어.”
간신히 다시 떨어진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지만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고싶은 말을 해, 어서 뱉어. 너와 함께 할 일이 아직 하루 정도 더 남아있다고, 하루만이라도 네가 더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아니면, 차라리 네 눈을 여기서 감기는 게 네게 편한 거냐고. 하지만 억지로 다시 열린 입에서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너는 나랑……. 같이 있어서 행복했어?”
“네가 그렇게 공부를 안 할 줄은 몰랐지. 그 덕에 내가 쉴 시간이 별로 없기도 했고.”
“미안하다.”
“그래도 꽤나 오래 버텼어.”
그 와중에도 나를 위로하는 것인지, 스탠은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재밌었으니까.”
풋, 웃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목을 막고 있던 녀석이 조금 길을 열어서, 가슴 깊숙히 막혀있던 뭔가가 눈과 코로 조금 흘러나왔다. 따뜻했다.
“그래, 재밌었어. 정말.”
킥킥거리던 스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촛불이 꺼질 때 피어오르는 마지막 연기처럼 그의 가벼운 숨결이 후, 하고 흘러나왔고, 그렇게 세상은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괜히 그의 팔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한 번이라도 더 잡으면, 조금 더 세게 흔들면 아까처럼 그가 놀란 듯 다시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 곁에 있으면 안 되겠니. 녹이 잔뜩 슨 문 경첩처럼 삐걱거리는 팔을 몇 번이고 흔들어봤지만 한 번 어두워진 세상은 다시 밝아질 줄을 몰랐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분히, 잠에 드는 것처럼. 어쩌면 살면서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부족한 친구를 만나 수도 없이 철야를 하고, 정작 나는 잠에 들고, 그는 내 몫까지 짊어지고. 그가 세상에 등을 돌린 이유 중에 하나가 피로였다면, 난 분명 그 원인을 제공한 쪽에 속할테지.
“고생했다.”
마지막으로 팔을 어루만지고 감은 눈을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내 옆을 늘 밝게 지켜주던 스탠은 아직 세상에 미련이 남은 것인지 그 온기를 쉽사리 놓지 못하고 있었다.
“야!”
눈물을 흘릴 새도 없었다. 문 밖에서 들려온 외침은 친구에게 전하는 내 마지막 인사를 불편한 공기 속으로 힘껏 파묻어버렸다.
“그거 이제 내다 버려라. 낡은 거라 맞는 전구도 없다 이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스탠드를 들고 일어났다. 그래, 오래된 모델이었다, 이 녀석은. 그런 것 치고는 참 오래도 버틴 셈이다. 게다가 나처럼 밤새 켜놓기도 하고, 재미삼아 껐다 켰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정전기 때문에 붙은 먼지를 잘 닦아주지도 않던 험한 주인을 만나고도 꿋꿋이 제 할 일을 다한 셈이다. 그래서 더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비록 청승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나는 엄마 몰래 스탠드를 책상 아래로 옮겨놓았다. 살며시 발을 올려놓으니 아직 온기가 남은 전구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조금 무게를 실으면 삐걱이는 플라스틱 관절의 느낌도 재밌었다. 그래,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 날은 그렇게 오래도록, 이미 떠나버린 스탠을 어루만지다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