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다

질투에 대하여(1)

by 봄단풍


“아니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남과장님이 또 그런 질문을 던진 건 이미 지난 겨울의 흔적은 지워진 지 한참 지난 여름의 한복판이었다. 자그맣게 피어나던 꽃들도 어느덧 무성한 잎사귀들에 가려지고, 잊을만 하면 소나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


“뭐가요?”

“주리씨랑. 잘 되어가고 있는 거야?”


한참 일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던 참이라,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잠시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다시 집중하는 것보다는 잠시 노닥거리는 것이 능률 향상에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결국 의자를 뒤로 제껴버렸다. 정확히는, 계속 일을 하다가는 더 쥐어뜯을 머리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였다.


“네, 좋아요. 뭐. 너무 잘 되어가고 있어요.”

“괜히 물어봤네.”

“근데 모르겠어요.”

“뭘 몰라?”

“그냥…….”


나는 지난 두어달 동안 나를 괴롭혔던 문제를 남과장님에게 나눠도 괜찮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아까 쥐어뜯던 머리를 결국 다시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가, 나는 결국 의자에 똑바로 앉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죠?”

“야 이, 놀래라. 갑자기?”


나는 파티션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부서 분위기를 살피고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남과장님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주리씨, 저녁에 뭐해?』

『아니 진짜 왜 맨날 약속이야~』

『완전 인싸야, 응?』

『그러게요. 다음에 팀장님이랑 같이 차라도 한 잔 해요~』


처음 이 고민이 생긴 건 역시나 주리씨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주리씨 주위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주리씨와 가까워지기 전에 나는 엄두도 못냈던 일을,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엄두도 못 냈던 일’이라는 건 당연하게도 그녀에게 말을 거는 일이었다.


『주리씨, 혹시 자료 보낸 거 봤어요?』

『네, 확인 했다고 회신 드렸었는데요.』

『아, 그래요? 그건 못봤네. 』


이 정도는 양반이다. 그냥 업무와 관련된 대화니까. 하지만 문제는 다른 소재들이다.


『머리 자르셨네요?』

『아뇨, 안 잘랐는데요.』

『아, 오랜만에 뵈어서 그런가, 엄청 예뻐지신 것 같아서. 머리 자른 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아하하.』


『주임님, 내일 시간 되면 점심이나 한 끼 할래요?』

『과장님, 내일은 조금 힘들어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같은 과장 나부랭이가 어떻게 감히 주임님한테 말을 놓겠습니까.』

『아하하, 무슨 소리세요.』


사람들은 어쩜 그녀에게도 능청스럽게 말을 걸고 건드리는지. 더군다나 그녀도 넉살이 좋아서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분위기도 띄우고……. 아무튼 이래저래 진주리씨는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조마조마했다. 나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고, 부족한 사람 같았다. 적어도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접근하는 남자들만큼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싶었다.


물론 그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렇다고 일도 잘하고, 사회생활에도 능한 주리씨의 잘못도 아니지. 좋은 사람에게는 어딜가나 사람들이 몰려드는 법이다. 그러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다른 사람의 대화를 듣고, 그걸 못하는 내 자신에 실망해서 혼자 꽁하고 있는 내 잘못이 제일 큰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뻐졌다느니, 밥을 같이 먹자느니, 도대체 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쉽게 하는 거야?


『다음 주 저녁 진짜 못 와요? 우리 13층 젊은 사람들끼리만 가는 건데.』

『그 때는 힘들어요. 다음에 팀장님 껴서 다같이 가요.』

『팀장님, 주리씨가 팀장님 오셔야 회식 가겠대요~』

『아 그래?』

『농담이에요. 이번 저녁에는 저희끼리 갈게요~』


그런데 그렇게 주리씨 주변의 대화를 듣다보니 꽁한 마음이 점점 이상한 곳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팀장님~ 저희 점심 나가서 먹으려는데 법카좀 주세요.』

『누구누구 가는데? 나도 끼면 안 돼?』

『네, 안 돼요.』

『어우, 단호하네.』

『농담이에요. 저희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들한테 맛있는 것 좀 사주려고요.』

『아 그래, 사 줘, 사 줘. 얘기도 좀 잘 해주고.』


처음에는 주리씨에게 향하는 말들에 귀를 기울였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직급 간의 대화에 마음을 기울여 듣게 됐다. 나로서는 입 밖으로 내뱉는다는 상상도 못할 말들을, 사람들은 적어도 두 계단은 더 높은 사람들에게 편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저……. 차장님.’ 그리고 매서운 눈빛에 퇴각하기를 다섯 번 정도를 반복한 뒤에야, ‘혹시 법인카드 좀…….’ 하고 겨우 말을 뗐을 거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상급자한테 카드를 달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나도 끼워달라는 말을 면전에서 저렇게 거절한다고?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직책이 높은 사람에게 할 말을 다 하는 거야?


“그래서, 그게 답답했어?”

“그렇죠. 아니, 저 저희 팀 온지 벌써 삼 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박차장님은 어려워요.”

“나는 쉽잖아?”


남과장님의 말에 나는 픽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건 엄연히 남과장님과 박차장님의 성격 차이다. 그 외의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직급의 차이도 있다. 남과장님은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대리였던 터라 그리 먼 선배로 느껴지지 않기도 했고, 박차장님은 첫 만남부터 차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직급이 두 개 이상 차이나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허리가 굽혀지고 말투도 딱딱해지곤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예의니까!


『어제는 몇 시에 퇴근했어?』

『신입보다 먼저 갔다며? 말이 되냐?』


물론 그렇게 예의를 차린다고 딱히 내가 이득을 보는 것도 없었다. 박차장님에게 아무리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최대한 공손하게 대하고, 높임말을 빠뜨리지 않고 쓰면서 업무차 보내는 메일이나 메신저에도 꼬박꼬박 ‘우수하 올림’ 인사말을 구구절절 적어놔도, 그에게 칭찬을 듣는 날은 드물었다.


『차장님 오늘 컨디션 좋아보이시네요?』

『아 그래? 어제 잠을 좀 설쳤는데.』

『그래요? 평소보다 완전 젊어보이시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 언제 한번 너네 팀이랑 같이 회식이나 한 번 해야하는데.』

『연초에 했었잖아요. 그거 얼마 안 됐는데. 차장님 벌써 까먹고 그러시면 어떡합니까.』

『아오, 이게 진짜 입만 살아가지고.』


오히려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박차장님과는 허울없이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따라해본 적도 있었다. 주리씨 근처에서 들었던 말들과 박차장님을 웃게 했던 다른 사람들의 말을 참고해서!


『차장님, 혹시 머리 자르셨어요?』

『아니? 왜, 뭐 묻었냐?』

『아, 뭔가 평소보다 깔끔해지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뭐 그럼 평소에는 꼬질꼬질했다 이거냐?』

『아, 아뇨. 아닙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다음 주 회의자료 다됐으면 빨리 보내. 내가 내일 모레 보내라고 했다고 모레에 딱 맞춰서 보낼 거야? 되면 되는 대로 미리미리 보내야지. 뭐든 시간에 맞춰서 하려고 하지 말고, 미리미리 하라고, 좀.』

『예, 알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른 여러 말들로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에는 능청을 떨어보려다가 다시 경직된 자세로 허리를 굽히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니 대답 대신 조소에 가까운 웃음만 흘러나오는 수밖에.


“나랑 박차장님이랑 다를 거 있어?”

“사람이 다르잖아요, 사람이.”


남과장님은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틀 정도 면도를 안한 것 같은 그의 턱에서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건 네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랑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건…….”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면 그냥 그 사람들이 사회 생활을 잘하는 거고 나는 못해서 그런 건가?”

“그건 아니지. 그 쪽은 다른 부서고. 너는 같은 부서잖아. 박차장님한테는 가족이지.”

“가족이요?”

“아니 뭐, 그 나이대 분들은 그런 마인드니까.”


남과장님은 다시 자신의 모니터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잠시 동안 그의 이어질 말을 기다리다가, 남과장님이 키보드를 다시 두드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다시 내 책상 앞으로 의자를 끌고 갔다.


“그리고 굳이 모든 사람의 환심을 살 필요는 없지 않냐?”

“깜짝이야. 아니, 그렇긴 한데…….”

“넌 너야. 나랑도 사이 좋고, 주리씨랑도 썸타고. 넌 괜찮은 애라니까? 그럼 된 거 아냐?”

“그냥 질투가 좀 났나봐요.”

“주리씨한테 말을 거는 놈들한테? 아니면 박차장님이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한테?”


어느새 파티션 뒤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남과장님을 쳐다보다가, 나는 눈을 천장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뒤를 돌아서 반대쪽 파티션 너머의 박차장님 머리를 슬쩍 쳐다보다가, 다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남과장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대답했다.


“둘 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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