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에 대하여(2)
…….
“박차장님?”
“어 왜?”
본래 다른 부서 사람의 목소리는 튀기 마련이다. 일하면서 잘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니 귀에도 금방 꽂힌다. 그 날 내가 파티션 위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그런 이유였다.
“오늘 담배 태우셨어요? 아니면 지금 같이 가실래요?”
“어우, 일 좀 하려고 했더니.”
박차장님을 기지개를 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다른 팀의 대리였다. 나보다 일 년 정도 먼저 들어왔다는 그 분은 딱히 회사에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업무차 메신저를 검색하다가 가끔 보게 되는 이름. 그런데도 박차장님과 허울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더 짜증이 났다.
“담배를 피워야하나?”
“피우든가.”
결국 남과장님과 단 둘이 나선 점심시간에, 나는 그렇게 짜증을 표출했던 것이다.
“아니, 군대랑 똑같다니까. 담배를 피우든 술을 마시든 해야 좀 친해지고 그런가 봐요.”
“야, 그건 인정해 줘야지. 건강 버리면서 친목질 하겠다는데.”
듣고 보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술이든 담배든, 회사 내에서 다른 부서원들과의 친목을 위해 뭐든 한다면 그것도 나름의 노력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분한 건, 적어도 술담배를 하는 저 사람들이 특별히 박차장님과 친해지려고 안 피던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하다보니 맞아서 친해진 거지.
“근데 나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그게 왜 화가 나는 거야?”
“아니 그렇잖아요. 나는 매번 예의를 갖추는 데도 무시당하는데, 같은 부서도 아닌 사람들은 서글서글하니 친하게 지내니까.”
남과장님은 쌀국수 국물을 그릇 채로 들이켰다.
“그럼 네가 서글서글하게 해봐. 뭐 능청을 떨든.”
“박차장님이 그런 게 먹히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야, 생각해봐.”
남과장님은 휴지로 이마와 목 뒤의 땀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박차장님이 그게 먹히는 사람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건데?”
생각해보니 그건 그렇다.
“내가 너무 예의를 지켜서 그런가?”
“그럴 수 있지. 사람이 또 너무 바르기만 하면 선 긋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
남과장님은 얼마 남지 않은 국물을 깨끗하게 들이켰다. 딸그락 소리가 나도록 숟가락을 그릇에 얹은 그는 새로운 휴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너도 그냥 편하게 한 번 들이대 봐. 시도해보는 거지 뭐.”
“어떻게요? 박차장님이 말 걸 때는 뭐 시키거나 혼낼 때밖에 없는데.”
“그러면 징징대보든가. 너무 힘들어요, 혼자 못해요 뭐 그렇게 있잖아.”
“에이, 그걸 어떻게 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그 때부터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할지, 어떻게 능청을 떨고 어떤 말로 박차장님의 높은 벽을 허물지. 하지만 아는 것과 계획하는 것, 그리고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어서 웬만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그 강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참 얄궂게도, 막상 그 시도하기 어려운 일들에 도전하는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우 주임, 그 때 말했던 결산자료 정리는 다 됐어?”
“아, 그거 그 때 금요일까지 달라고 하셔서요. 아직 정리중입니다.”
“금요일?”
퇴근시간이 다 된 저녁, 차장님은 그렇게 되묻고는 슬쩍 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이어진 대답.
“내일 오전까지 줘. 부장님께 미리 확인 받게.”
“예? 내일 오전이요?”
“거의 다 된 거 아냐?”
“아뇨, 아직 좀 더 봐야합니다.”
하지만 박차장님은 당신의 대답을 바꿀 생각이 없어보였다. 자켓을 걸치고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한참 대답없이 퇴근 준비를 하더니 내 옆을 스쳐지나가면서 어깨를 한 번 툭 쳤다.
“내일 오전 열 시까지 해 줘.”
그 순간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가슴 한 쪽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저절로 오므려지는 손을 꽉 쥐고, 나는 내게 등을 보이고 복도로 나가는 박차장님을 불러세웠다.
“왜요?”
뱉어놓고 아차싶었다. 마음의 소리와 실제 밖으로 꺼내놓은 소리가 달라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뭐?”
하지만 때로는, 생각과 판단이 다다르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곤 한다.
“이거 금요일에 달라고 하신 게 바로 지난 주였잖아요. 갑자기 오늘 퇴근시간 다 되어서 내일 오전에 달라고 하시는 거면 그냥 오늘 집에 가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뭐 인마?”
“아니 솔직히 맨날 일찍 오라고 하시면서 차장님도 5분 전에 겨우 오시잖아요? 어쩌다가 제가 차장님보다 늦게 오면 뭐라고 하시고. 저는 차도 없고 집도 차장님보다 먼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회의자료 보내놓으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미리 검토하신 적 한 번도 없으시면서. 그리고……,”
“야, 우수하!”
박차장님의 외침에 나는 말을 멈췄다.
“너 지금 나랑 뭐 해보자는 거야? 어?”
박차장님의 목소리가 커지자마자 잠깐 피어올랐던 불씨는 금세 꺼져버렸다. 아마 이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긴 한데, 나는 그렇다. 아마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고, 벌써 여기저기 파티션 너머로 내밀어지는 귓구멍들이 부담스러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그냥 정말 궁금해서요.”
“궁금해?”
박차장님은 잠깐 숨을 돌리고 나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나는 황급히 다음 할 말을 쥐어짜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어떻게 된 건데요?"
"그냥 피곤해서 그랬다……. 뭐……. 유야무야 넘어갔어요."
"그냥 그렇게 넘어간 거에요?”
“네. 간신히 간신히. 넘어간 것도 아니죠. 두고 본다고 하셨으니까.”
주리씨는 쿡쿡 거리면서 웃었다. 휴게실 문가에 서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그녀는, 한참동안 날 보면서 그렇게 웃더니 이 모든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해버렸다.
“수하씨, 질투하는구나?”
“남과장님도 그 얘기를 하긴 했는데, 아니에요. 절대로.”
“박차장님이랑 친해지고 싶은 거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매번 볼 때마다 타박에 잔소리만 하는 사람이랑 왜 친해지고 싶겠어? 회사의 윗 사람이니까 억지로 얼굴 보고 사는 거지. 다만, 그런 사람이 정작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는 별 탈 없이 지낸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울 따름이었다. 꼭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나는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설명했지만, 주리씨는 씩 웃을 따름이었다.
“박차장님도 이런 수하씨 모습을 보면 좋을텐데.”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전히 웃고 있는 주리씨를 보면서 나는 겨우 마지막 한 마디를 뱉을 수 있었다.
“인정받고 싶은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지만, 정작 내 깊은 속을 보고 있는 듯한 주리씨의 눈을 보고 나는 황급히 종이컵을 내렸다.
“수하씨, 질투해본 적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또 다시, 그 큰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그렇게 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