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에 대하여(3)
내게는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이 있다. 나보다 키도 조금 크고, 몸무게는 두 배 가까이 나가지만 그렇다고 뚱뚱하지는 않다. 지난 명절에 드디어 3대 500을 넘겼다면서 자랑스러워했던 걸 보면 갈수록 근육이 더 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형은 나보다 많은 면에서 더 나았다.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같은 책을 시작해도 형이 나보다 훨씬 더 빨리 읽었고, 농구를 해도 형이 다섯 번을 넣으면 나는 한 번을 넣을까 말까했다. 심지어 형은 피부도 나보다 하얬다. 똑같이 햇볕 아래에서 놀고 들어와도 형의 얼굴은 빨개졌다가 다시 하얗게 돌아오는 반면, 나는 빨개지지 않는 대신 그대로 까맣게 익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형이 훨씬 어린 나이에 풀었던 어려운 문제를 나는 한참이나 고민하면서 겨우 풀어내곤 했던 것이다. 똑같이 책을 봐도 형은 이야기의 세세한 설정까지 외우고 있는가 하면 나는 줄거리조차도 가물가물하기 일쑤였다. 더 약이 오르는 건,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도 형은 바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봐.”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어렸을 때의 내가 보기에는 그냥 형이 잘난 척 하는 것처럼 보였을 따름이었다.
“어른한테는 인사 좀 해라.”
“다른 사람하고 얘기할 때는 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하지 좀 마.”
“아 밥 먹을 때 다리 떨지 말라고.”
그리고 그 ‘잘난 척’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가 아닌 다른 영역에도 발을 넓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단한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엄격한 태도로 전달하던 잘난 척은, 시간이 지나고 형과 내가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짜증으로 변해갔다. 당연하게도, 그런 태도로 전해지는 교훈을 내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해가 갈수록 형과 투닥거리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사람은 피곤한 일은 결국에는 피하게 되기 마련인지라, 형과의 치열했던 삶은 점점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은 입시를 준비하다가 입학 후 대학을 즐기고 군대를 가기까지 수년 동안 자신의 삶을 사느라 바빴고, 나는 나대로 형이 밟은 길을 보다 안정적으로 밟아나가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문제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형의 뛰어난 모습을 보고 자란 내게 있었다. 그렇게 쌓아 온 시간 덕분에 모든 일의 기준이 형이 되어버린 것이다. 공부를 해도 ‘형은 이 나이 때 이만큼 알고 있던데’, 운동을 해도 ‘형은 여기서도 공을 집어 넣던데’, 책을 읽더라도 ‘형은 이걸 며칠만에 다 읽고 이런 분석도 하던데’!
“지금은 어때요?”
“지금요?”
“지금은 따라잡은 것 같아요?”
코코아가 담긴 종이컵은 이미 흐물흐물했다. 손가락에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구겨질 것처럼 물렁해진 컵 안의 코코아를 한 모금 마신 나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뇨. 저는 3대 500은 절대 못해요. 할아버지가 돼도 못할 걸요.”
“할아버지가 하면 큰일나요, 절대 하지 마요. 다쳐, 다쳐.”
주리씨는 텀블러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홀짝였다. 그녀가 입은 블라우스를 닮은 베이지 색의 텀블러에서는 아직도 하얗게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네요?”
“그러게요.”
“지금은 형이랑 어때요?”
나는 코코아를 손에 들고 한참을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가 하면, 보통의 형제가 지내듯 그냥 그저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딱히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불편해하지 않는 사이. 그렇다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처럼 이를 드러내고 아득바득 싸우는 것도 아니고.
“잘 지내요.”
나는 아직 얼음이 녹고 있는 코코아를 한 입에 들이켰다.
“수하씨는 수하씨에요. 형은 형이고.”
이상하게, 평소와는 달리 주리씨의 위로에 오늘만큼은 고개를 가로젓고 싶었다.
“음, 그런데.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형의 동생이고 싶네요. 앞으로도 계속.”
“그래요?”
주리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주리씨를 만난 것도 형 덕분이지 않을까요?”
“그것 참, 고마운 분이네요.”
주리씨는 씩 웃으면서 휴게실 책상에 걸터앉았다. 얼마 전 비오는 날 휴게실에서 만났을 때보다 주리씨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주리씨는 질투해본 적 있어요?”
“방금 형님한테 질투 할 뻔 했어요.”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기려 했지만, 다시 텀블러 뚜껑을 열면서 나를 쳐다보는 주리씨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아까 진아 대리님하고는 뭔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한 거에요?”
“예?”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지만 주리씨는 차분하게 텀블러 뚜껑을 열 뿐이었다. 달그락거리면서 열린 텀블러 뚜껑 아래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사람들 앞에서 나랑은 존칭 쓰고 단답만 하면서, 대리님하고는 얘기를 되게 오래 하시던데.”
“아니 그건 업무차…….”
하지만 대답을 하면서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주리씨 턱 바로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면서, 나는 결국 변명을 포기하고 고개를 떨궜다.
“농담이에요.”
고개를 들자 다시 환하게 웃고 있는 주리씨의 얼굴이 나를 맞이했다.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 다시 뚜껑을 닫은 그녀는 여전히 환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하씨는 아까 형한테 고맙다고 했잖아요? 저도 그 질투에 감사해요. 내가 수하씨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알게 됐으니까.”
주리씨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다리로 휘적휘적 휴게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황망히 바라보는 것으로 배웅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리씨는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휴게실을 나서면서까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차장님도 수하씨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걸 알면 좋아하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