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퇴직유랑기 #18. 학교를 계속 다녔더라면

겁많은 퇴직자의 유럽 5개국 8도시 여행기

by 봄단풍

나의 퇴직유랑기 #18.



유심칩을 미리 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그 때 들었다. 킹스크로스 역이 참 넓기도 넓고 입구도 많아서, 둘 다 스마트폰 메신저로 연락을 하면서도 어딘지 찾아내는데 한참이 걸렸다! 우리나라처럼 입구에 번호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있었지만 우리가 마음이 급해서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연락해가며 걸어다니다보니 서로 용케 찾아낼 수 있었고, 해리포터 스튜디오가 있다는 Watford Junction 역을 가기 위해 함께 열차에 올라탔다.


King's cross 역에서 Euston 역으로, Euston에서 다시 Watford Junction 역으로. 유스턴에서 Watford junction으로 가는 열차는 노선도가 주황색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Overground라고 적혀있었다. Watford Junction 까지는 정거장 수가 꽤 많아서 그대로 가면 30분에서 40분 정도가 걸렸는데, 서울의 9호선처럼 급행열차도 종종 오는 모양이었다. 올 때 우연히 탑승한 급행열차는 대략 15분 정도가 걸렸다.


열차로 가는 동안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각자 서울에서 뭘 하다가 여행을 왔고, 연애는 하는지, 어떤 연애를 했는지……. 어딜 가나 남자들끼리 만나면 똑같은 것 같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이 분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을 하다가 퇴직하고 오셨다고 한다. 퇴직 후 여행이라는 게 생각보다 드문 경우는 아닌 듯 했다.

“아직 졸업을 안 해서……. 다녀와서 복학하려구요.”


군대를 다녀오고, 일년 휴학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번 후 이번 방학을 노리고 여행을 온 거란다. 그리고 이제 복학. 나보다 두 살 어린 스물 다섯이었지만, 급할 게 없는 나이이긴 했다. 부러웠다. 나도 졸업하기 전에 휴학을 한 번 쯤, 혹은 일년 쯤이라도 했더라면 이런 방황을 덜 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퇴직을 방황이라 규정할 수는 없지만, 퇴직 후에 아무런 계획도 없으니 방황이라면 방황이 맞긴 하려나.


나이 때문에 학교 가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시길래, 걱정할 필요 없다고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내 또래 중에도 아직 졸업 안 한 사람도 많으며, 스물 다섯도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결국 그 분도 못내 끄덕거리며 위로를 받아들였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싹 씻겨 내려가지는 않은 듯 했다. 만약 내가 아직 학교에 남아있었다면……. 재미있었을까, 하루하루 초조해하며 취업박람회를 찾아다니고 있었을까?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돌아보면 참 바쁘기도 많이 바빴다. 사년 동안 성적 장학금을 한 번도 탄 적은 없었지만, 매 학기 졸업학점을 계산하며 꾸준히 18, 17학점을 수강한 덕에 마지막에는 9학점만 들었는데도. 한 학기 동안 영화를 만드는 수업 때문에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조모임을 했고, 쉬는 시간마다 자소서를 쓰고 친구와 함께 첨삭하느라 바빴다. 과목이 적어 오히려 시간이 많았던 중간고사 기간에는 토익 및 면접 스터디로 시간을 보냈고, 그 와중에 취미로 들어간 동아리와 학회에서의 활동도 간간히 참여했다.


참 생각할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회사에 들어간 이후에는 학교에서 하는 것도 없이 바쁘게 시간을 허비한 것만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면 그래도 즐길만큼 즐겼다는 생각도 들고. 계산 가능한 수치로 남은 것은 3점대 초반의 아슬아슬한 학점인데, 그마저도 비전공과목의 학점이 전공보다 더 높았다. 기억에도 많이 남았고.


나는 어떻게 지금의 전공을 택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도합 1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교육을 받은 다음에도 전공 선택은 영 확실치 않았다. 단순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아니라, 내가 도대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잘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 그리고 성적을 바탕으로 어른들이 ‘넌 아직 어리니까’ 점수를 바탕으로 학교와 전공을 골라주시면, 나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그 지시에 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어른들을 비판하자니, 이미 우리나라에서 대학과 전공은 다양성의 기준이 아니라 계층 구분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 분야니까 이 쪽에 저명한 교수님이 있는 이 학교의 이 전공을 가겠어, 가 아니라, 이 대학의 이 학과가 높고 나는 지원할만한 성적이 되니 여기에 들어가겠어, 라는 느낌. 이미 시스템이 그러하니, 어른들의 다소 일방적인 지시 역시도 결국 그 아이를 위한 조언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꽤나 진심어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퇴직유랑기 #17. 하이드 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