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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Sep 11. 2023

육아와 나들이



결혼 전 가끔 백화점이나 아울렛, 쇼핑몰을 놀러가면 아이들이 많아서 놀라곤 했습니다. 발디딜 틈 없는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무섭기도 했고, 엘리베이터는 유모차가 한 두 대만 들어와도 사람이 들어가기 곤란해져서 답답하기도 했고요.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고 아이들은 점점 줄어간다던데, 대체 왜 내가 놀러가는 곳에는 아이들이 이리도 많을까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이를 잃어버릴까 무섭지는 않은지, 아이들과 놀러가려면 산이나 바다를 가지 왜 도심 속으로 오는지.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야 저는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아이를 위한 준비가 잘 된 곳은 그런 곳들 뿐입니다. 정해진 층에 아이를 위한 휴게실이 있고, 기저귀를 갈 수 있고 아이를 간단히 씻길 수 있는 세면대가 있는 곳.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유식이나 분유를 먹일 수 있는 공간은 백화점, 복합 쇼핑몰 정도는 되어야 마련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위한 공간이 없는 곳으로 나들이를 가려면 필연적으로 준비물이 더 많아지게 되는 법입니다.


혹자는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안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나오기가 힘들면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될 일이지 무리해서 나올 이유가 무엇이냐,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갓난 아이는 어차피 기억을 하지 못하니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이런 이야기는 대중교통에서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라도 탈라치면 ‘부모의 욕심’이라는 날 선 비판도 감내할 각오를 해야합니다.


사실 나들이가 온전히 아이만을 위한 일은 아닙니다. 고된 육아를 감내하려면 부모에게도 가끔 숨 돌릴 틈도 있어야 하는 법이고, 그러면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수는 없으니 결국 같이 나가는 길 뿐인 셈이죠. 그마저도 갈 수 있는 공간은 제한되어있으니 주말마다 나들이를 가도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이를 위한 준비도 되어있으면서 부부가 함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은, 언젠가 별에 닿을 것을 기대하며 사막 한 가운데를 걷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놀러 나온 아이에게 쏟아지는 작금의 비판은 아이로부터 생길 수 있는 부정적 외부효과에서 기인합니다. 이를테면, 아무 곳에나 다 쓴 기저귀를 버리는 행태라든지, 비행기 안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로 인해 겪게 될 고충 등이 해당됩니다. 스트레스 해소, 숨 돌리기, 뭐든 좋은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말라는 뜻이죠. 당연하게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이는 아이, 아무리 총명하더라도 사회화 과정 중에 있는 아이가 다른 사회 구성원이 보기에 아름다운 행동만 골라서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 부모가 책임감있게 타이르고 가르치며, 다른 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죠.


그리고 부모가 이렇듯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전제 하에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부모가 아니더라도 모든 일은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것이 부모의 욕구라고 본다면,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역시 각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놀러 나가는 것이니까요. 사색, 쇼핑, 만남, 도망 혹은 도피, 어떤 목적에서든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욕구 충족을 위해 움직입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요. ‘부모의 욕구’라고 해서 특별히 더 비판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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