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단풍 Sep 25. 2023

앨범



아이의 밤잠이 통잠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아이가 새벽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게 됐을 때부터 아내가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항상 육아로 지쳐있을테니 스트레스도 풀고, 저는 저대로 아내가 다녀오는 사이 집에서 자유시간을 누리고요. 원래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다면 항상 컴퓨터로 달려가 진행하던 게임의 다음 챕터를 이어갔을테지만, 요즘에는 자꾸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무얼 하느냐하면 불과 몇 개월전부터 찍었던 동영상을 순서대로 봅니다. 이미 완결까지 봤던 웹툰을 정주행하듯이, 아이가 세상에 처음 나온 순간부터 차례대로 동영상을 재생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숨도 힘겹게 쉬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는 머리에 땀을 흘리면서 젖을 빨고, 분유를 먹고, 방구도 뿡뿡 뀌기 시작합니다. 속싸개에 팔다리를 전부 감싸고 애벌레처럼 제 어깨 위에서 새근거리던 녀석이, 스크롤을 한 두 번 내리자 어느새 손싸개를 하고 그르릉- 하면서 목을 긁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크롤을 몇 번 더 내리면 어느새 아기 의자에 앉아서 이유식을 달라고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고요.


아이가 자는 사이 그렇게 혼자 영상을 보다보면 혼자 웃기도 하고, 슬쩍 눈물을 닦아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찌만 항상 혼자 있을 때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을 유치하다고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아이 영상을 보면 혼자 있어도 저절로 그런 표현들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제가 감수성이 풍부한건지, 아니면 주책맞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회사일과 팍팍한 세상에 말라버린 눈이 그나마 촉촉해지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고맙기도 합니다.


참,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감사합니다. 지금도 제 양친이 거하는 집에는 제 어릴 적 사진이 가득 담긴 낡은 앨범이 있습니다. 정작 제가 제 어릴적 모습을 보면 대부분 부끄럽거나 못나게 보이곤 합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서야 이렇게 앨범을 만들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지, 혹은 그 정성이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지, 그 외에는 사실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의 영상을 돌려보고 있자니 부모님이 앨범을 만든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도 없고, 영상을 기록에 남기기도 어려웠을 그 시절에 이렇게 사진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어두셨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분명 부모님께서도 몇 번이나 돌려보고, 넘겨보고, 그렇게 애지중지 보관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작은 결심을 해봅니다. 정말로 그리 큰 결심이 아닙니다. 이제 아내가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기 전에 같이 몇 개월 전 아이의 영상을 돌려봐야지, 하는 결심입니다. 입도 제대로 못 벌리고 톡 튀어나온 콧구멍으로 새근새근 숨을 쉬는 아이의 모습부터, 세상이 떠나가라 울다가 이유식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 요즘의 모습까지. 오늘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또 앞으로 자주 함께 돌려보기로 결심해봤습니다. 

이전 10화 사랑과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