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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Oct 08. 2023

사랑과 눈물


요즘은 왜 그리도 눈물이 많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원래 잘 울긴 했습니다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유독 더 심해졌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이요 이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이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곤 합니다. 그것도 사실 전부 아이와 부모의 사랑에 관련된 내용이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아이가 생기고 나서 공감대의 깊이가 달라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사랑과 눈물이 함께라는 말은 예전부터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사랑으로 힘들어서, 때로는 사랑으로 감동을 느껴서, 때로는 사랑하는 그 마음 자체로 우리는 눈물 흘리곤 합니다. 그리고 육아에 들어서는 특히나 그런 말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이로 인해 눈물지을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하루를 마치는 날에는 항상 내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거든요.


제가 처음 그 감정을 느꼈던 때는 아이를 초음파가 아닌 제 눈으로 직접 본 첫 순간이었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수건에 돌돌 말려있던 제 아이를 본 순간, 정말 희한하게도 목구멍이 뜨거운 뭔가로 막힌 것처럼 금세 울컥하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하루 종일 떼를 쓰고 울고 보채던 아이가 알고봤더니 열이 나고 있었을 때, 그 이후 병원을 오락가락하다가 마침내 열도 내리고 쌕쌕 숨 쉬며 평온히 잠에 들었을 때. 그 때가 눈물로 사랑을 깨달은 두 번째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건강한 미소로 버둥거리고 있을 때는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웠는지요.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로 인해 몇 번이나 눈물짓고, 몇 백번이나 이 아이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어렴풋하게 사랑은 곧 눈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건대 육아는 아니었지만 육아와 비스무리했던 감정의 흐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의도는 선하고 의욕은 넘치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사람들의 미움을 받던 아이.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선한 의도에 넘치는 의욕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로서는 더욱 귀하게 여겼던 아이였는데, 문제는 표현이 서투르다는 점, 그리고 가끔 선하지 않은 의도로도 의욕 넘치는 표현을 발산했다는 점,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아이였습니다. 심지어 제 자신도 아이를 미워할 때가 있었고, 몇 번이나 화를 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 결혼 후에 연락이 자연스럽게 뜸해져서 지금은 가끔 서로 생각이 날 때 연락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서로에게 더 애착을 가진 사이도 아니고, 그저 지나치면서 알게 되고 다시 멀어진 평범한 관계. 그럼에도 이 아이가 다른 소중한 관계들만큼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그 길게 투닥거렸던 그 시절이 어쩌면 사랑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도를 넘어선 행동에 혼을 내고, 다시 다음날에는 같이 밥도 먹으면서 웃기도 하고. 속으로 몇 번이나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지난 번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소식에 허탈하게 웃다가 화도 내고.


어쩌면 내가 그 당시, 그렇게 고민하고 고생하느라 힘들었던 그 당시에 더 열렬하게 화를 내고 다그쳤다면 지금과는 또 많이 달라져있을까 궁금합니다. 사람 사는 것이 항상 지나온 일에 대해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궁금해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유독 그 아이에 대해서는 내가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달라졌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만큼 사랑은 힘들고 쉽지 않은 것이고, 그 덕에 그로 인한 눈물이 더욱 귀해지며, 그 때문에 실로 사랑의 결실이 위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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