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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Oct 04. 2023

육아의 일과

육아를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참 빨리 지나갑니다. 하루가 빨리 지나가면 한 주는 물론이고 한 달도 순식간에 지나가곤 합니다. 왜 그렇게 한 달, 한 주, 하루가 빨리 지나가는가 하면 하루 일과 중 남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제 슬슬 침대를 잡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아이를 안고 냄새를 맡는 것이 아침 일과의 시작입니다.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침 분유를 탄 다음에, 겨우 정신을 차린 아내와 바톤을 터치하고 아침을 먹습니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 뒤에서 까꿍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웃음을 구걸하다가, 아내와 서로 조심히 잘 지내고 저녁에 보자는 인사를 나눈 뒤 회사로 향하면 이미 마음은 아침 기저귀만큼이나 무거워져 있습니다.     


퇴근을 하자마자 아이를 안아들고 냄새를 맡는 것이 마무리 일과의 시작입니다. 요즘에는 절 기억해주는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활짝 웃는 아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화장실로 데려가 목욕을 시킬 때 웃으면서 물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또 고마운지 모릅니다. 물론 욕조에서도 자꾸 일어나려고 애쓰는 건 그리 고맙지 않습니다만, 그런 아이를 겨우겨우 씻긴 뒤에 옷을 갈아입히고 얌전히 마지막 분유를 물리면 마무리의 절반이 지나간 셈입니다.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한 명이 아이를 재우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저녁을 준비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취침시간이 늦어져가는 아이를 겨우 재우는 데에 성공하면, 아내와 고생했다며 감사의 포옹을 나누고 느릿하게 저녁을 먹습니다. 보통 그렇게 되면 빠르면 아홉시, 늦으면 열시 반까지 시간이 흐릅니다. 이제는 뒷정리의 시간입니다. 아내와 손을 나누어 설거지를 하고, 아이가 하루 종일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닦고 정리합니다. 그녀가 기어다니던 매트 바닥도 깔끔하게 닦고 나면 이제 이유식이 남았습니다. 다음 날 아이가 먹을 이유식을 준비하고, 또 준비하면서 나온 새로운 설거지거리를 닦고 정리합니다. 보통 여기까지가 밤 열한시, 열두시 정도가 됩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 육아는 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까봐 지금은 또 달라졌다는 글을 얼른 끄적거려 봅니다. 사람은 점점 발전하는 법이고 요령은 점점 날카롭게 다듬어지는 법이라, 아내도 제가 퇴근하기 전에 미리 과업을 줄이는 노하우가 생겼고, 저는 저대로 남겨진 과업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아이가 이유식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가면 더 줄어들겠죠.      


저도 육아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걸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막상 하다보니 어느덧 아내와 서로 다리를 포개어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내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에는 아이가 다칠까봐 안는 것도 무서워하던 사람이 이제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분유를 타기도 합니다. 둘이 같이 다지고 쪄서 만든 이유식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깔끔하게 닦아 반짝거리는 거실을 보면 괜히 어른이 된 것 같아 보람차기도 합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을 넘어 의리까지 생긴다는 것에 공감하며 하루의 마무리를 하이파이브로 하기도 하고요.     


살아가는 것이 늘 그렇습니다. 눈 앞에 알 수 없는 일들이 첩첩산중으로 닥쳐온다고 해도, 산을 하나씩 넘다보면 어느새 전보다 튼튼해진 다리와 심장이 무아지경으로 다음 발걸음을 옮기고 있곤 합니다. 꽉 들어찬 빨랫감을 하나씩 넓게 펴서 텅 빈 건조대에 널다보면 어느덧 바구니는 텅 비고 건조대는 꽉 들어차 있곤 하잖아요. 이걸 언제 다해, 내가 해낼 수는 있을까? 이게 육아라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모릅니다.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일단 기저귀가 젖었으니 벗기긴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벗겼더니, 또 볼일을 보기 전에 얼른 입혀야겠어서 입혀봤습니다. 배고파서 우니까 밥을 먹어야겠는데, 밥을 어떻게 만드느냐 봤더니 이렇게 저렇게 되더라고요. 자야하니 씻겨야하고, 자고 일어나면 놀테니 청소도 해야했고요.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당장 눈 앞에 당면한 것을 차례 차례 처리하다보면 어느새 능숙해진 자신의 새로운 모습과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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