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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Oct 09. 2023

코딱지



작고 귀여운데 아주 조금 얄미운 구석이 있는 사람을 비유할 때 코딱지라고 부르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코딱지는 눈곱이나 귀지같은 다른 분비물보다 친숙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누군가를 코딱지라고 부른다면 그건 얄미운 구석보다는 그저 귀엽고 애틋한 마음이 클 때로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그저 아주 작아서 코딱지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아주 귀엽기만 해도 그렇게 부르곤 하죠.


그런데 그 코딱지의 비유에서 얄미운 구석이 더 크게 느껴지는 녀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코딱지 본인, 그것도 아이의 코에 생긴 코딱지 본인입니다. 그 작은 녀석이 우리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하는지 모릅니다. 그 녀석의 존재감은 잠들기 전 아이의 숨소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수상하게 바람소리가 크고, 수상하게 아이가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면 그 날 밤잠은 다 잤다고 봐도 됩니다. 스스로 코를 팔 줄 모르는 아이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면서 엎드려서 힘겹게 잠을 청하다가, 곧 서럽게 울면서 잠에서 깹니다. 그 작은 코딱지 하나 때문에요.


예방하는 방법도 많고 발생 후에 치우는 방법도 많습니다만, 그걸 몰랐던 시절에는 새벽에 여러번 일어나면서 전전긍긍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작 그 코딱지 하나 때문에 온 가족에 이렇게 비상이 걸릴 수가 있나 한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또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다들 코딱지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누구 애는 열이 39도 라던데, 누구 애는 교정기를 끼고 산다던데. 처음부터 비교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에 대해 물어봐서 대답해준 부모의 입장에서는 속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상처보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코딱지를 더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코딱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고요.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요즘에는 서로의 슬픔을 나누기보다 재단하고 계량해서 어떻게든 평준화하려는 태도를 더 접하기 쉬워 아쉽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젠가는 우리 아이도 다른 사람의 코딱지에 대해 들을 날이 올 겁니다. 혹은, 자신의 코딱지에 대해 나눌 날도 올테고요. 그럴 때마다, 아주 작은 코딱지라도 나눠서 든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감사를 상대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또 그 감사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호의를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세상이 아주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깨우치길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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