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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Oct 08. 2023

발톱깎기




혼자 발톱을 깎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손톱을 깎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의를 요하거든요. 깔끔하고 싶다는 이유로 가장자리를 너무 깨끗하게 깎아내면 나중에 내성발톱이 되어 생고생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흰 부분을 많이 남기자니 애초에 발톱을 깨끗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많이 벗어나게 됩니다. 가장자리는 남기면서 흰부분을 깎자니, 깔끔하게 발톱 조각을 수거할 수 있는 각도를 내기가 힘이듭니다.


그렇게 겨우 예쁜 각도를 찾아서 발톱을 다듬다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 더, 조금 더 깎다가 발톱 아래 살을 건드리기 일쑤고요. 이미 너무 짧아져버린 발톱과 그 아래 삐져나온 살에게 ‘미안, 깨끗하게 하고 싶어서 그랬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문답무용,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감각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찌릿한 통증이 변명에 대한 대답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도 애초에 자세가 불편합니다. 의자에 앉아서 하자니 발톱이 너무 멀고, 받침대를 가져다 쓰자니 골반이 아프고요. 바닥에 앉아서 하자니 나이가 들수록 배가 나와서 무릎을 굽히는 것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아직은 적당히 숨 참고 굽히면 발톱이 손에 닿긴 하지만 발톱의 모양을 세세하게 다듬는 건 또 그 이상의 또다른 언덕이 되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발톱은 수시로 깎아야합니다. 금이 가거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이걸 떼어내야 하나, 자라날 때까지 덜렁덜렁 붙이고 다녀야 하나하는 고민부터 시작해서, 자다가도 뜨끔하는 고통에 깨어나야할지도 모릅니다. 혹시 출근할 때 꽉 끼는 구두라도 신었다 하면 나중에 한 발가락에서 쌍둥이로 자라는 발톱을 구경하게 될 수도 있고, 여름에 시원하게 다니려고 샀던 덧신에 숨구멍이 뚫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같이 지내는 사람의 몸에 의도치않은 생채기라도 나면 미안함과 자괴감에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게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에 반해 임신한 아내의 발톱을 대신 깎아주는 건 훨씬 쉬운 일입니다. 양 손이 자유로운 덕분에 아내의 발가락을 내게 편한 자세로 고쳐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바로 발톱 앞까지 가져가서 세세하게 훑어볼 수 있는 건 덤이죠. 물론 부끄러우니 자세하게 보지 말라는 아내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다시 고개를 들어야하지만, 업무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인 세팅이 수월하니, 그 이후의 작업이 수월해지는 건 말하나마나 한 일입니다.


“다듬기까지 해?”

“이거 튀어나와서 안 돼. 나중에 분명히 걸려.”


그러다보니 마음에 우러나오는 추가 서비스도 자연스럽습니다. 내가 내 발톱을 자를 때는 보이지 않던 자그마한 흠결도 볼 수 있으니,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추가 작업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그 고객이,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라면 이야기는 다시 달라집니다.


“잠깐만, 잠깐만! 아니 그, 움직이면 안 되는데.. 아이코, 소리 지르지 말고!”


예전에는 아이가 자는 시간, 혹은 아이가 분유를 먹는 시간을 노려 발톱을 자르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곧 아이의 자는 시간은 절대로 방해해서는 안되는 불가침의 시간이 되어버렸고, 밥을 먹는 시간에는 아이가 도무지 가만히 있으려하지 않습니다. 분유통을 넘겨주고 밑에서 깔짝거리는 아빠로부터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평소에는 발을 간지럽혀도 얌전하던 아이는 이리저리 발을 피하고 휘두르면서 소리도 지르곤 합니다.


“내가 잘못 잘랐나? 괜찮지 이거, 잘 자른 거지?”


더군다나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피라도 맺혀있는 것이 아닌 이상 내가 너무 짧게 자른 것인지 아닌 것인지 확인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조금만 자르자니 또 금방 그로 인한 생채기가 생길까봐 걱정이 됩니다. 혹시나 내가 모양을 못나게 잘라서 발톱이 이상하게 자랄까봐 걱정이 드는 것은 덤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이마와 등에 땀이 맺히고 다 끝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럼에도 내가 해야하는 것은, 아이가 직접 자르는 법을 아직은 모르니까요. 결국 아이의 발톱도 다른 사람이 해야 훨씬 잘 자를 수 있는 것이긴 합니다.


 그러고보면 발이란 건 꽤나 역설적인 신체부위입니다. 우리는 발을 통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길을 걷고, 나아가서,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개척하며, 목적지로 마음 먹은 곳에 조금씩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궁극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죠. 그리고 그렇게 험한 길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는 발은 그 끝에 달린 몇 조각의 발톱때문에 걷지 못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발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자그마한 발톱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다듬어야 훨씬 편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자신의 발톱을 쉽게 관리하는 방법은 대화의 방법과도 같고, 관계를 정립하는 방법과도 비슷하며,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과도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 방법이라함은 내가 먼저 허리를 숙이고 다른 사람의 발톱을 다듬어 주는 것이겠죠. 제가 임신한 아내의 앞에 쪼그리고 앉고, 누운 아이의 발 위로 땀을 흘리는 것처럼, 언젠간 이 아이도 다른 사람을 위해 불편한 자세로 땀을 흘리게 될겁니다. 부디 그로 인한 불평보다는 그것을 가능케한 사랑에 감사하길 바라며, 저는 오늘도 아이의 자그마한 두 발을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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