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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Aug 01. 2023

보내는 일


혼자서는 밥도 못 먹고 트림도 제대로 못하던 녀석이 어느새 젖병을 두 손으로 잡아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잡는다기보다 두 손에 젖병을 얹어서 어떻게든 혼자 먹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참 기특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젖병을 두 손에 꼭 안고 나서도 괜히 손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애쓰는 모습이 눈물나도록 소중하고 귀여워서 괜히 꼭 끌어안고 싶어지곤 합니다.


물론 그 평화도 분유를 먹는 동안만 허락된, 가요 두 곡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합니다. 제 손 한 뼘만한 젖병을 다 비운 뒤에는 느닷없는 전방 십초간 함성 발사가 이어지곤 합니다. 아빠도 엄마도 목소리 큰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그 성량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 울음 소리를 듣고 있으면 놀랍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하고 그저 놀랍기만 하고 그렇습니다.


“이제 없지, 다 먹었지? 어디로 갔나, 다 배로 갔네~?”


소용없습니다. 배가 뽈록 튀어나오도록 분유를 먹어도 그 서러운 울음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식에 분유까지 먹어도 가끔 배가 부른 날이 아니면 우리 아가씨는 젖병이 빌 때마다 그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립니다. 어쩌면 이제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이자 슬픔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좀 더 갖고 있을래?”


젖병을 치울라치면 안 그래도 서러운 울음소리는 더욱 더 그 세기를 더해갑니다. 그래서 저도 아내도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게 된 것이, 다 먹은 젖병을 빼앗지 않고 잠시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울다가도 젖병을 한 번 더 빨아보고, 다시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울고, 그러다가 또 입에 젖병이 닿으면 혀로 핥아도 보고, 빨아도 보고, 돌려도 보면서 아이도 서서히 평온을 되찾습니다.


“그래, 없어, 없지. 찬찬히 받아들여봐.”


저는 두 팔에 느슨하게 아이를 안아들고, 아이는 두 손에 느슨하게 젖병을 얹어놓고. 서로가 그렇게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입을 맞추는 사이, 세상을 잃었던 아이는 어느새 그 슬픔을 차분히 또 담담하게 어루만지며 평온을 되찾습니다. 그 울음소리에 심장이 쿵쿵거리던 저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도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요.


“바로 떠나보내기 어려우면 그렇게 안고 꽉 쥐고 있으렴. 아직은 따뜻한 그 녀석을 안고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천천히 받아들이렴. 충분히 시간을 갖고 그렇게 보내주면 된단다. 그렇게 그게 이젠 없다는 것도 깨닫고, 없어도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어느새 동그래진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는 아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언제 울었냐는 듯 헤 웃으며 젖병을 엄마에게 건네줍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떠나보내는 일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다 쓴 물건을, 때로는 갖고 있던 꿈을, 때로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기대했던 결과를, 또 때로는 정말 소중했던 사람을. 관계의 측면에서 보내는 경우도 있고 안타깝게도 정말로 다시는 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보내는 일도 있고요. 미련, 후회, 반성, 슬픔, 애도, 남은 것들은 그렇게도 무의미하다고 세상에서 노래하는 것들이지만, 내 마음에 들어오면 어찌나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이 녹록치 않은 세상이 항상 열심히 달리기를 요구하기에,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든 빨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와 젖병을 보면서 오히려 마음껏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되새기고 추억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궁상맞다, 청승 떨지말라, 그렇게 주위에서 중얼거리는 불평섞인 이야기들은 잠시 접어두시고. 마음 한 켠 구석진 곳까지 퍼져있는 기억을 어루만지면서,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마음껏 쓰다듬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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