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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r 17. 2023

아이를 낳은 후 두려웠던 것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라고들 합니다. 하나의 큰 산을 올랐다고 해서 남은 인생이 전부 순탄하게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죠. 산 뒤에는 또 다른 산, 그 뒤에는 또 다른 산. 때로는 더 높을 때도, 운 좋게 더 낮을 때도 있지만 산은 그 각자의 이유에 따라 오르기가 힘든 법입니다. 아무리 낮은 산이어도 오를 때 땀이 나지 않는 산은 없으며, 아무리 완만한 산이어도 신발이 헐지 않는 산은 없는 법이죠.     


그래서 마침내 사랑의 결실로 제 딸을 만났을 때, 저는 감동에 취할지언정 이것으로 남은 인생이 편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넘어야 할 산 중 꽤 큰 산을 넘은 것은 맞지만, 분명 그 다음에 이어질 다른 산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 두려움은 사실 사랑하는 사람의 배가 점점 불러올 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막연했죠.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내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을까, 등등.     


역설적이게도, 그 두려움은 아이를 만난 즐거움을 최고로 만끽하고 있을 때 비로소 명확하게 나타났습니다. 산의 정상에 올라서서 경치를 즐길 때에야 비로소 다음 산의 모습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러다보니 그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먼저 아이를 낳고 찾아온 즐거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다음의 즐거움이 뭐가 있냐고 하면 물론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출근하기 전 침대에 누워서 저를 알아보고 꺄르륵 웃는 모습만 봐도 너무 행복하고요. 일하다가 틈만 나면 사진첩에 저장된 동영상을 돌려보곤 하는데, 초단위로 변하는 표정변화를 외울 정도로 들여다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퇴근 후, 지친 아내의 품에 안겨서 더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도 사랑스럽고, 목욕 후에 제 품에서 몇 시간이고 낑낑거리고 우는 아이의 모습도, 그러다가 지쳐 잠든 모습도 그저 사랑스럽죠. 밤에 손을 맞잡고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선물해줘서 고맙다며 얼굴을 비비다가 잠드는 아내를 볼 때면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가슴 한 켠에서 순식간에 부풀어올라서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빼놓을 수 없이 또 행복한 순간은 양가의 부모님을 뵐 때입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나보다 더한 행복감을 숨기지 못하고 마음껏 표현해주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뿌듯하고, 훈훈하고, 그리고 잠시나마 아이를 넘겨줄 수 있어서 소소하게 더 행복하기도 합니다. 어느새 제 안부는 뒷전이고 아이가 기저귀는 몇 번 갈았는지, 시원하게 볼 일을 봤는지 확인하는 부모님의 인사도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그리고 다음 산의 모습이 보인 건 바로 그 때였습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만큼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이 나를 기른만큼 내 딸을 기를 수 있을까, 그 정성의 측면에서는 정말로 지지않을 자신이 있지만, 그 결과의 측면에 있어서는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이 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요, 모아둔 돈이 많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요, 그저 열과 성을 다해 몸이라도 써야할텐데 그렇다고 키가 크거나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란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게 두렵습니다. 어렸을 때는 한없이 크고, 학생 때는 한없이 부끄럽고, 군대와 취직을 거치면서 한없이 소중해지고, 마침내 아이를 낳고 나서는 한없이 높고 우러러보게 되는 나의 부모님만큼, 나는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그것이 지금 제게 찾아온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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