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단풍 Oct 04. 2023

아이를 낳기 전 두려웠던 것

저는 보통 걱정이 되는 일에 대해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편입니다. 감사가 예정되어 있다면 그걸 안 시점부터 차근차근 자료를 정리해두고, 시험을 준비한다면 바로 진도를 나누어 공부 계획을 짜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그러다보니 결혼을 준비할 때도, 프로포즈에 성공한 바로 그 날부터 결혼식 사회 대본을 구상했던 것입니다. 물론 보통은 예식장이나 스드메를 먼저 예약하긴 하지만요.     


아무튼, 저는 그런 저보다도 훨씬 더 준비성이 철저한 제 아내와 함께 차근차근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지낼 공간을 고민하고, 물건들을 사거나 감사한 주위 분들로부터 받아두기도 하고, 당연히 태아 보험도 놓치면 안되지요. 그런데 도무지 준비가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마음입니다.     


아이가 싫으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혹시 내가 설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어서 아이를 봐도 아무 감흥이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을 한 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초음파 사진을 보고 난 뒤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그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생겨난 자그마한 것이 심장을 쿵쿵 울려대면서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나는 걸 본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이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마음이 준비가 안 된다는 것이 대체 무슨 소리냐 하면, 바로 제 자신에 대한 걱정입니다. 내가 정말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아빠가 될 수 있을까? 보통 글이라 하면 그래도 희망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지금의 이 걱정은 도무지 답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이건 그 오래 전부터 늘상 세워야했던 자아 정체성의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사랑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것. 아직도 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사랑할 수 없으니 이런 일에도 자신이 생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도 그럴 것이, 참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당사자 본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더랍니다. 행복했던 기억은 빨리도 흐려지고 불행했던 기억은 그보다 더 빨리 사라지긴 하는데, 문제는 내가 부끄럽고 창피했던 기억입니다. 그런 기억은 도무지 그 때의 느낌이 흐려지지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랬고, 내가 왜 그런 말을 했고, 내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지금의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 그리고 그런 순간들에 대한 기억은 비오는 날 와이퍼가 방금 닦고 지나간 자동차 앞 유리처럼 너무도 선명하죠.     


사실을 말하자면 결혼하기 전까지는 바로 그 부끄러운 기억들을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끄러운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준 덕분에 항상 노력을 하게 됐었거든요. 다시는 이런 건 하지 말아야지, 아, 이런 적도 있었지, 이런 일은 정말로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적어도 남들 눈에 튀지 않는 정도로는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억들이 전부 아이를 향한 제 마음을 무겁게 붙잡고 늘어지고 있습니다. 난 이토록 부족한 사람인데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요.


어쩌면 지금의 걱정도 제가 넘어야 하는 하나의 산인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 그 부끄러운 기억들을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건, 그걸 거울삼아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 단순히 그런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일인 것입니다.     


‘이런데도 날 사랑해?’     


거울 속의 내가 그렇게 묻습니다. 넌 그래도 나를 사랑 하겠냐고. 아내에게는 언제든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것을 내 자신에게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 떠오르더라도 그래 그런 적도 있었지. 근데 그것도 나야. 고생했다, 너는 그 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야, 하고 토닥이면서 안아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결혼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여는 것이고, 아이를 기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이런 고민들을 뛰어 넘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때 내 자신을 껴안고 포용할 수 있을 때에야 나는 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사랑하고, 그렇게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전 01화 바보가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