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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Oct 04. 2023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오프닝에서 관객을 설레게 하는 문구 중에 하나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했다는 그 짧은 문장은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더 묵직하게 관객의 마음 속에 가져다놓습니다. 보는 사람들은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되고, 보다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죠. 때로는 이 문장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훌륭한 각본으로 관객들을 새로운 세상에서 헤엄치게 만든 뒤에, 그 문구 하나로 커다란 충격을 더해주는 장치로 사용되는 거죠.      


저는 시작과 끝에 모두 그런 내용을 적어뒀으니, 굳이 따지자면 그저 노파심이 많은 편에 속합니다. 실제로 저같은 바보도 육아를 하니 힘 내시라고, 실제로 저 같은 바보도 육아를 하고 있으니 도전해보시라고. 그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 책의 첫머리에 썼던 것처럼 육아는 그 자체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앞서 여러 가지 두려움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가장 두려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면 어떡하지? 혹은, 내게 그런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아이로 인해 내 삶이 달라지게 될 것은 분명한데, 그 때문에 내가 불행해지면 어쩌지, 그런 두려움.      


아이로 인해 하고 싶던 일도 참아야 할 때가 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아이가 내리는 선택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육아를 시작하면서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아질텐데, 내가 아이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도 어른스럽지 못한데, 여태 아이 같은 부분이 있고 실수도 많은 사람인데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둘째치고, 역시나 이런 아이 같은 두려움이 제 머릿속을 가장 광대하게 차지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다행스럽게도 아이를 만나는 순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 외의 다른 두려움은 여전히 호시탐탐 제 마음의 주도권을 뺏으려고 제 주위를 어른거리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아이로 인해 내가 불행해지면 어떡하나, 그런 두려움은 아이의 탄생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물론 이 마음의 변화는 쉽게 근거를 대면서 증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가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글을 쓸 일도 없었고, 야근을 하고 지친 날에도 힘겹게 노트북을 두드리지도 못했을 것이고, 야근을 하면서도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힘을 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이가 없었다면 아내와 제가 서로의 수고에 감사하며 밤마다 손을 따뜻하게 잡고 인사를 건네는 일도 더 적었을 테고, 아이가 없었다면 둘이 함께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며 가슴 벅찬 사랑의 말을 나누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하루하루 안전하고 건강하게 마무리하는 것 자체가 이렇게나 마음이 놓이고, 눈물겹게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감사. 육아를 하면서 제가 정말 나누고 싶은 감정은 그렇습니다, 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사랑과 이런 아이를 허락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 아내와 아이에게 감사하며, 또 이런 글을 읽고 스쳐지나가시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이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또 이미 그 사랑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많은 분들이 다시금 용기를 되찾으셨으면, 그래서 그 많은 분들 중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에게 이런 감정을 또 나눌 수 있었으면, 그래서 우리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이 무어냐 묻는다면     


사랑이 무어냐 묻는다면,

나는 잠든 그대의 저절로 움직이는 입술이라 할테요,

환자복을 입고 수척한 그대 볼에 피어나는 홍조라 할테요,

인상을 구기며 진통제를 누르면서도

내가 누운 소파의 불편함을 걱정하는

그대의 구겨진 눈썹 사이사이 깃든 것을 사랑이라 할테요.

     

구태여 사랑이 무어냐 묻는다면,

나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겹게 기어올라와

목구멍을 단단하게 막아버리는 눈물이라 할테요.

팅팅 부어 좁아진 눈틈 사이로 흥건히 차올랐다가,

세상에 첫 발걸음 뗀 자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씩 웃으며 솟아오른 광대뼈 위로 흘러버리는,

그 눈물 속에 담긴 것을 사랑이라 할테요.   

  

그럼에도 사랑이 무어냐 묻는다면,

이불 속에서 팔에 꽂은 호스를 치우고

힘겹게 맞잡은 두 손에 담겨 있다 할테요.

배를 째는 고통, 수술실의 두려움,

상상력을 잔인하게 만드는 걱정과 근심,

그 모든 것을 눈 앞에 두고도 담대하게 하는

아주 작은, 맞잡은 두 손 안에 담긴 것을 사랑이라 할테요.     


그것이 어디 있냐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을테요.

그것은 부재(不在)나 부정(否定)이 아니라,

가로저은 두 눈에 담긴 모든 곳에 있다는 뜻으로

사랑이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다는 뜻으로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으로 답할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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