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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Jul 21. 2023

또, 꽃이 집니다.

안타까운 소식들을 연이어 접한 다음.


오늘도 꽃 한 송이가 졌습니다. 어쩌면 열 송이, 열 한 송이 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이름 모를 별 하나가 하늘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둠 속으로, 영영 닿지 못할 작은 빛이 되어 사그라들었습니다.


다들 한 번쯤은 인생 가장 찬란한 꽃잎들을 펼쳐보이며 자랑하고 싶은 때가 있을 겁니다.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그러다가 나무도 되어보고, 가지를 널리 뻗어 그 팔 아래 또 작은 꽃들을 피워내고, 마침내는 거름이 되어 또 새로운 찬란한 꽃과 나무들을 펼쳐내고 싶은 것이 다들 가지고 있는 목표가 아닐까 합니다. 각자 꿈꾸는 꽃의 크기나 모양, 종류에 차이가 있을 뿐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이지 않고 휘파람 불며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죠.


때로는 그 씨가 뿌려진 환경에 따라, 때로는 그 자신이 지닌 의지에 따라, 혹은 그 주변에 자리잡은 다른 꽃들의 영향을 받아 각자의 때가 다를 뿐 다들 그 찬란한 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정작 그 찬란한 순간에는 모르다가 다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적어도 살아만 있다면 뿌리 굳건히 내리고 내리는 비에 젖어가면서도 그 줄기 굳건히 세우고 있다면 언젠가는 꽃을 피우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살아만 있다면요.


대체 왜 그 소중한 꽃들이 져야할까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그 꽃들이?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환경이 척박하지도 않았을 터였던 꽃들이 대체 왜, 왜, 벌써 자라기도 전에 거름이 되어야만 했을까요. 오히려, 자기 자신도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으면서도 척박한 곳에서 다른 꽃들을 위해 애쓸수록 더 그런 비극을 겪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덧 제 옆에 아주 작은 새싹을 기르게 되고 나서부터 다른 꽃들의 비극이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구 말마따나 꽃이 너무 많아서 그럴까요? 문제는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씨앗이 항상 뿌려져야 한다는 점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제가 무시한다는 표현을 쓰는 건,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거든요. 마치 다른 사람의 땅을 지켜보는 것처럼 멋들어진 태도로 아무 대책도 의미도 없는 지적을 하고 난 뒤에 뒷짐지고 헛기침하며 셔츠 소매를 가다듬는, 그런 사람들은 뒤로 한발짝 물러서며 또 다시 다른 새싹을 짓밟고 있습니다.


대체 왜 자신의 꽃과 자신의 새싹이 중요한만큼 다른 이들의 꽃과 새싹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까요.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 그 상식보다도 더 깊은 저변에 깔려있는 사람의 존엄과도 관련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작금의 상황들을 지켜보면 정말로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새싹이 제 품에 안기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혼자서는 눈을 제대로 뜰 때까지 며칠이 걸렸고, 한동안은 팔다리도 꽁꽁 싸매서 항상 조심스럽게 들고 다녀야했고, 밥 먹은 뒤에 트림도 하지 못하는 그 새싹을 어깨에 얹고 통통 두드리다가 게엑- 소리 한 번에 뛸 뜻이 기뻤던 그 때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푸푸거리며 투레질을 시작했을 때는 곧 아빠-라는 발음을 하진 않을까 설렜고, 팔을 휘저으며 제 뺨을 때릴 때는 이제 스스로 기어다닐 힘도 생기겠구나, 기대감에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몇 발자국만 나가면 보이는 저기 저 아이들도 저와 같은 감동을 느끼며 누군가가 기른 새싹들입니다. 목 마를까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바람에 조금이라도 비틀거리면 노심초사하면서 기른 새싹들이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줄기를 위로 뻗어가며 자라는 그 아이들은, 내가 그러했든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키워낸 소중한 존재들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자란 꽃들한테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왜 어떤 꽃들이 시들고 안타깝게 져야만 땅을 갈아엎을 생각을 하는 걸까요, 그 전에 수많은 신호들이 있었는데. 왜 항상 그런 희생이 있어야만 땅을 관리하려는 생각을 하는 걸까요? 그저 모든 꽃이 소중하다는 마음만 있었더라면, 희생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으로라도 줄일 수 있을 거잖아요, 단 한 송이의 꽃이라도 더 피워낼 수 있었잖아요.


속이 상합니다. 이제 슬슬 통잠을 자기 시작한 아이의 새싹-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평소에는 솔솔 오던 잠도 오늘 밤은 오히려 가슴이 뛰고 쉽게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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