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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Jun 01. 2024

귀가

A씨 이야기

회사는 악한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악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법적으로는 잘못이 없더라도 도의적인 부분에서는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도의적인 부분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책임지지 않아도 악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A씨와 동기들을 채용했던 회사의 방침과 그 이후 처우 개선에 신경 쓰지 않는 회사의 태도 역시 도의적인 부분에서도 잘못이 없는 것인가? 법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잘못이 없다면 그것은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악은 아니되 선한 행동도 아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회사의 행위가 악했다면, 그것에 눈감고 복종하는 것 역시 악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라는 거악과 혼자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으로 직원들이 단결하여 함께 싸워야 할 텐데, 노동조합마저 회사의 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단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먼저 회사를 다니던 직원들에게 싸울 의지가 없다면? 아니, 오히려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것이 이전에 다니던 직원들이라면 우리는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     


또한, 만약에 회사의 행위가 악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무조건 맞서는 것이 선일까? 누군가의 폭행에 맞서고 동일한 폭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때로는 맞고 법에 처분을 맡기는 것이 선한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참아주는 행위가 선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전무이사의 말대로 그 부당함을 바꿀 수 있을 권한을 얻을 때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내가 당한 것이 나에게는 악이지만 회사에는 선이라면 그것은 누가 옳은 것인가? 우리가 꾹 참고 다니면 회사에게도, 공생 협약을 체결한 직원들에게도 ‘전환’ 방침은 선이라고 볼 수 있는가?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부당함으로 회사와 다른 직원들에게 이득이 돌아간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는 선이 되는 것인가? 만약 내게 악한 것이 회사에게는 선이 될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할 수 있다면 누구의 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인지도 모른다. 공개 채용이라는 방법으로 제안을 던졌고, 우리가 선택해서 입사를 했으니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 것인가? 선발 과정에서 회사가 어떤 식의 말을 했든, 법적으로 뒷받침되는 발언이 아니었다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해서 외치는 처우 개선은 거악과의 숭고한 싸움이 아니라 그저 돈이나 더 달라는 치기 어린 투정에 불과한 것인가?     


회사가 돈이 없다, 힘들다는 말이 진짜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도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주고 싶지만 정말로 여건이 힘들어서 불가능한 상황일 수도 있다. 비록 신임 이사진들의 차량을 새로 바꿨다고는 하지만, ‘전환’을 바라보고 입사한 직원들의 급여를 올리기에는 예산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가치의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A씨 본인도 자신의 후배들이 ‘삼 년 뒤 전환’이라는 조건 없이 높은 초봉으로 입사했을 때 화를 내지 않았는가? 그 분노에 대한 동기는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시기와 질투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A씨는 홀린 듯이 지하철을 타고, 걷고, 버스를 갈아타고,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내의 품에 안겼다. 바닥은 아직 차가웠지만 아내의 품은 따뜻했다. A씨는 아내를 꼭 안은 채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숨을 쉬었고, 아내는 그런 그가 팔을 풀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괜찮냐는 물음도 없이, 고생했다는 말도 없이 아내는 그저 A씨를 꼭 안고 있었다. 지금 당장 A씨가 유일하게 모든 것을 잊고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었다.     


“마?”     


이제 혼자서도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한 A씨의 딸은 어느새 그의 바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올려다보던 아기는 A씨가 안아 들자 씩 웃었다.     


“잘 있었어? 우리 딸, 아빠, 해 봐. 아, 빠!”

“엄마, 엄마. 엄마.”     


아빠에게 안긴 채 엄마를 찾던 A씨의 딸은 돌연 굳은 표정으로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고개를 몇 번 돌리며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녀는, 갑자기 A씨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댔다. 그녀는 그렇게 눈을 감고 아빠와 이마를 맞대고 가만히 있다가 다시 고개를 뒤로 빼고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이게 뭐야? 당신이 가르친 거야?”

“아니?”     


A씨도 아내도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 잇지 못하는 사이, 그들의 딸은 다시 한번 아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당긴 뒤 이마를 맞댔다. A씨는 눈을 감은 채 자꾸만 웃었다. 하지만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그의 두 눈은 자꾸만 제멋대로 눈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세상의 그 모든 일도 우주에서 보면 그저 소박한 하나의 점에 불과한데, 그 소박한 점이 수천 개는 더 모인 커다란 우주조차 이 아이의 행동 하나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울어도 웃어도, 넘어져도 기어도 사랑스러운 존재,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 작은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 눈물을 닦아주려 머리를 맞대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왜 서로를 미워하고, 왜 그리도 서로를 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만 하는가? 그저 손을 잡는 것, 머리를 맞대는 그 작은 행동이야말로 소박하고 쉬운 일인데, 어찌하여 우리는 더 어려운 길로 돌아가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가?     


A씨의 딸은 마침내 발버둥 치며 자신을 내려달라고 졸랐다. 바닥에 내려온 그녀는 아직 서투른 걸음걸이로, 자신의 장난감이 마구 어질러진 거실로 뛰어갔다. A씨는 아내의 어깨를 잡아당겨 꼭 끌어안았고, 그의 아내는 자신의 딸이 했던 것처럼 A씨와 이마를 맞대며 한참을 미소 짓고 있었다.     


“고생했어, 여보.”     


A씨는 웃으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입으로는 웃고 있으면서도 A씨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아직도 A씨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사실만 곱씹을 뿐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으며, 또 어떠한 것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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