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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y 23. 2024

시험

A씨 이야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어. 출산 휴가를 못 쓰게 하다니.”  


몇 개월 후, A씨의 딸이 뒤집기를 할 정도로 자랐을 때도 여전히 그의 아내는 화가 나 있었다. 몇 번이나 그녀를 달래려고 노력했던 A씨는 더 이상 변명을 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딸에게 장난감을 건네며 그녀의 행동에 집중하는 척했다.     


“결혼을 안 해서 모르시나? 출산한 직후에 남편이 얼마나 필요한데.”

“그러니까 말이야.”     


A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의 아내는 딸을 안고 현관문 앞까지 A씨를 배웅했다. 평소에도 항상 A씨의 출근길을 배웅하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무게감이 평소와는 달랐다.      


“준비는 잘했어요? 오늘이 시험이잖아.”     


A씨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어떤 문제인지도, 누가 채점하는지도 모르는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저 논술형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A씨의 아내는 그에게 다가와 마주 보고 서서 어깨를 주물러 줬다.  

   

“괜찮아요. 잘할 거야. 당신은 항상 잘하면서 괜히 걱정만 많이 하더라.”

“나도 모르겠어, 이번에는.”     


몇 달 전 공생 협약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할 일이 명료해진 대신, 그것을 해내지 못했을 때의 부담감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의 아내는 그런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이마를 마주 댔다. A씨는 똑같이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멀리 보지 마.”

“그럼. 그래야지.”

“당신은 잘할 거야. 그리고 시험 좀 망치면 어때? 내년에 통과하면 되지.”     


A씨는 평소보다 오랫동안 아내와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아무리 대고 있어도 긴장감은 도무지 잦아들지 않았다. 꼭 꺼지지 않는 불을 냄비 아래에 받쳐둔 것처럼 그의 심장은 점점 더 세게 뛰고 있었다. ‘전환 시험’이라는 것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후 지난 3년간 그를 꾸준히 괴롭혔던 짐을 한 번에 덜어내느냐, 아니면 1년 더 안고 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준비는 많이 했지? 나 A씨 평가도 후하게 줬어. 나중에 결과 나오면 나한테 큰절해. 혹시라도 떨어지면 A씨가 준비를 안 한 거야. 내 잘못 아니다?”     


벌써 함께 일한 지 일 년이 넘어가는 부서장은 생색인지 응원인지 모를 말로 A씨를 오전 내내 붙잡아뒀다. 시험 당일 오전에는 공부할 시간을 주겠다던 그녀였지만 그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A씨는 그녀의 태도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기 10분 전, 그는 아슬아슬하게 시험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간담회도 항상 점심시간에 진행하더니 시험마저 점심시간 중 딱 50분을 활용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세미나실 입구에서는 직원 여러분을 응원한다는 쪽지가 적힌 작은 꾸러미를 나눠주고 있었다. 작은 초콜릿과 사탕이 하나씩 들어있는 꾸러미였다.     


“답안지 교체는 없습니다. 받으신 시험지에 잘 작성하시고, 앞에 시계 보이시죠? 시간 관리 잘하세요.”     


시험 장소는 가끔 외부 초청 강의나 사내 연수를 할 때 사용하던 중형 세미나실이었다. 100명까지 들어간다던 그 세미나실에 간격을 두고 열을 맞춰서 서른 명 정도의 사람이 앉으니 금세 시험장 구색이 갖춰진 느낌이었다. A씨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아내의 이마를 떠올렸다. 지금 당장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니다. 쓰는 일.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생각지 못했던 그 어떤 문제가 나와도 50분 동안 열심히 손으로 쓰는 일이다. A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의 이마와 딸의 얼굴을 떠올리고, 시험 시작을 알리는 진행자의 안내와 함께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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