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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y 18. 2024

출산

A씨 이야기

시간의 특징은 흐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차창 밖 풍경처럼 금세 흐려지고, 아무리 고통스러운 순간도 결국 꾸역꾸역 지나간 일이 되곤 하는 법이다. 이것은 빠듯한 월급, 전환에 대한 걱정, 처우 개선에 관심이 없는 회사와 이 회사에 지원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매일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지는 A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A씨가 어떻게 느꼈는가 하면, 지난 몇 개월 동안 아내의 배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피력해 왔던 소중한 존재가 결국 세상에 나온 것이다.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권유한다던 산부인과 의사는 그의 아내에게 수술을 권했다. 아이의 머리 크기와 아내의 골격 등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했다. 당연히 다른 것보다 가족의 건강을 가장 우려했던 A씨였기에 의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정작 그의 아내가 아쉬워했다. 수술로 출산하게 되면 산모는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아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진 꼭 많이 찍어놔야 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바로 A씨였다. 때문에 그의 아내는 그에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수술이 시작된 지 불과 이십여 분이 지난 뒤, A씨를 찾는 문구가 전광판에 떠올랐다. A씨는 다급하게 수술실 옆의 작은 쪽문으로 향했고, 이윽고 조그마한 카트에 담겨 나오는 그의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그것이 A씨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 안에는 수건으로 돌돌 말려진 그의 아이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옆에서 간호사가 아이의 상태와 몸무게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A씨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문제없이 건강하다는 말을 간신히 머리에 새길 수 있었을 뿐, A씨의 모든 감각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그 조그마한 아이에게로 가 있었다.     


아이는 너무나 작았다. 수건에 돌돌 말려있어서 보이는 것은 얼굴과 손가락, 발가락뿐이었다. 피부는 쭈글쭈글했고, 딸임에도 불구하고 머리털은 얼마 없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희한하게도 울고 있지는 않았다. A씨는 플라스틱 뚜껑에 하얗게 입김이 서리는 것도 모른 채 가만히 얼굴을 대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들려?”     


A씨는 아이의 태명도 부르고, 자장가도 불러줬다. 조용히 꼼지락대던 아이는 자장가를 듣고 나서야 갑자기 입을 벌리고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리는 작았지만, 그 작은 몸을 전부 비틀어서 내는 것 같은 절절한 울음이었다. A씨는 눈가가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다급히 핸드폰을 꺼냈다.     


“미안해,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울지 마.”

“괜찮아요. 울면 건강한 거예요. 아이는 지금 우는 것밖에 못하니까. 아빠 만나서 반갑지? 그렇지?”     


나이가 많은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며 A씨가 사진을 찍는 것을 도와줬다. 이런저런 각도들을 추천해 주고 작은 손톱과 발톱 등을 찍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어땠어? 사진은 찍었어요?”     


몇 시간 뒤 마취에서 깨어난 그의 아내가 묻자 A씨는 말없이 핸드폰 화면을 눈앞에 보여줬다. 그녀는 가만히 누워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보다가, 이내 코를 훌쩍이며 A씨의 팔을 끌어안았다.     


“얼른 보고 싶다.”

“내일부터 볼 수 있대.”     


A씨의 아내는 봤던 사진과 영상을 계속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울다가 웃다가 겨우 다시 잠든 아내를 바라보던 A씨는, 불 꺼진 병실 안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잠든 아내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댄 채 눈을 감았다. 귀에 닿는 조용한 숨소리에 쿵쿵대던 가슴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느낌은 오히려 선명히 남아서 그의 가슴을 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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