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바보아빠 육아일기2

by 봄단풍

첫째가 어느 정도 자라고 둘째도 뒤집기를 막 시작할 무렵, 이 때의 육아는 하루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즉, 둘을 어떻게 재울 것이냐, 그것이 매일 육아의 목표가 됩니다. 저희처럼 네 식구가 다같이 한 방에서 자는 경우에는 그것이 특히 더 까다로운 임무가 됩니다. 둘째가 먼저 잠을 자면 첫째가 놀자고 소리지르고, 첫째를 진정시키면 둘째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겨우 둘째를 다시 재우면 잠에서 깬 첫째가 짜증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요. 물론 아이의 성향마다 다르다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쉽지 않은 것이 재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저녁 먹은 다음에 뭐 해야해?”

“어, 목욕하고, 치카하고, 코야해야해.”


첫째는 대답을 참 잘합니다. 두 손을 모아서 자신의 한 쪽 귀에 대고 고개를 갸우뚱, 잠을 자야한다는 몸짓도 바로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그 사이의 간극은 어른인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요.


“목욕하기 싫어.”


첫 관문을 넘으면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하나? 아닙니다. 첫 관문 자체를 어떻게 들어가느냐가 문제입니다. 목욕을 하지 않아 병원에 간다는 ‘꼬질이’ 이야기부터, 목욕하지 않으면 냄새가 나서 호랑이나 늑대, 모기나 파리가 쫓아온다는 무서운 이야기까지, 달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면서 갖은 수를 다 써서 화장실에 발을 들여야합니다. 정말 버티기 힘든 날에는 혼내고 윽박지르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할 경우 대부분 온 몸을 비틀어짜내는 매서운 발성을 견뎌내야합니다. 대체 화장실은 왜 그리도 소리가 크게 울리는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에 우리는 답을 찾아내고야 맙니다. 마치 인류가 한 단계 한 단계 문명을 발전시키며 전 지구적인 문제에 해답을 찾아낸 것처럼,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그 해결책을, 정확히는 해결책 중에 하나를 찾아내게 됩니다.


“아빠가 오늘도 자기 전에 머리 빗어줄까?”

“응.”

“머리 빗으면서 옛날 얘기 해줄까?”

“응!”

“밤에 코야할 때 아빠 팔베개 하고 누우면, 머리 빗으면서 옛날 얘기 해 줘?”

“응!”


입을 열심히 오물거리면서 첫 째가 그렇게 대답할 때, 저는 그 때도 안심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전날 밤 잘 먹혔던 수단이긴 했지만 그것이 오늘도 잘 먹힐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육아란 그렇습니다, 두 개의 점으로도 하나의 연속된 선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경험에서 빚어진 것은 육아에 대한 안심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감동이었습니다.


“흥.”

“왜?”


뜬금없는 아내의 뾰로통한 목소리에 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소파에서 둘째를 안고 토닥이는 아내의 자세에서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포착되지 않습니다. 다만, 둘째와 똑같이 생긴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눈에는 묘하게 날카로운 기운이 어려있습니다. 하필이면 같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런 적의없이 아빠를 살피는 둘째와 대비되어서 더욱 더 무섭게 보입니다.


“왜 그래?”

“그거 내 껀데.”

“아, 당신이 해주던 거야?”


간혹 그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찾아낸 노하우를 내 아내나 남편이 더 잘 사용할 때 오는 묘한 배신감. 그럴 때는 마치 저작권을 뺏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언제부터 이런 감정을 알게 되었냐하면 첫째가 갓난 아기였을 때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온갖 방법을 시도하다가 마침내 두 번 이상 먹히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 그런데 그것을 아내가 훨씬 더 잘하고 아이도 더 환하게 웃는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배신감.


그래서 아내가 ‘원래 내 껀데’라고 했을 때, 저는 당연히 그 감정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첫째가 딸이라서 아무래도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딸의 머리를 빗어주는 것, 그 행위 자체도 누군가에게는 로망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이어진 아내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팔 베개 해주고 머리 빗어주는 거, 원래 당신이 나한테 해주는 거였는데.”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그 때는 왜인지 웃음을 참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밥을 오물거리는 첫째 딸과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저를 째려보고 있는 아내, 그리고 그녀에게 안겨서 멍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혼자 씨익 웃는, 이제 150일이 넘어가는 둘째 아들까지. 저는 그 때 한 번 더 맹세를 속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지 해낼 것이라고, 반드시 이 험한 세상 담대히 살아내고 말리라, 그런 맹세 말입니다.


어쩌면 질투는 나쁜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모든 감정들이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감정이 진실이든 꾸며진 것이든, 누군가로 하여금 그 덕분에 힘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감정을 어떤 방법으로 표출하는가, 그것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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