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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글을 써야할까?

퇴고없이 쓰는 글

by 봄단풍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어릴 적 마음을 울렸던 글 쓰기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파인딩 포레스터라는 영화로, 여태까지 이 작품을 말했을 때 아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문화적 허영심을 고취시키는 데에는 그만한 조건의 작품도 없다.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서라도, 영화 자체도 잔잔하니 재미있었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좇던 그 때의 내가 이 작품에 마음이 울리게 된 건, 어쩌면 정말로 운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영화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었다. “생각하지 마.” 생각은 나중에 하는 것이다. 일단 써. 일단 써라. 마음이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수정은 그 다음에 머리로 하는 거다. 글을 쓰기 위한 첫 단추는 일단 쓰는 것이지 생각이 아니야.


그렇다, 누군들 직관적으로는 다들 아는 사실이다. 인생을 바꾸는 시작은 방 정리로 시작하는 것이고, 시험 공부의 시작은 책상 정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 실천으로부터 그 모든 장대한 여정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지구로부터 화성까지의 거리만큼 장대한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 일단 써야지, 하고 백지를 펼쳐놓으면, 오른 손이 하는 일은 펜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돌리는지 고민하는 것, 그 뿐이다. 컴퓨터를 키고 워드프로세서를 열어두면, 두 손이 하는 일은 최대한 마우스로부터 멀어지려고 애쓰는 것, 그 익숙한 게임의 아이콘을 건드리지 않도록 내면의 씨름을 하는 것, 그 뿐이다. 장면 구상을 위해 음악을 찾고 있노라면, 또 다시 두 손이 하는 일은 다양한 릴스와 쇼츠를 건드리지 않도록 각자의 이를 악무는 것, 그 뿐이다.


이야기. 내가 쓰고자 마음 먹은, 내가 써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은 이야기다. 분명하다.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때론 기분 좋은 미소 하나로 마무리할 수도 있으면서, 때로는 갑론을박 토론과 언쟁을 유발하는, 작가를 원망하게 만드는 결말의 이야기, 어찌되었든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적어도 이 세상에서 한 명 정도의 취향에 맞출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 이야가, 내가 쓰고 펼쳐가려는 이야기에 사랑이 깃들어있기를. 왜냐하면, 누군가 작금의 세상을 지켜보고 있다면 가장 원할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단 지금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이든 오년 전이든, 십년 전이든 혹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든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나서기를 꺼리며 각자의 세상으로 숨어들었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앞에 나서기 시작하며 교활한 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따라하기 좋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여기저기 옮기는 말에, 보통의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말에 현혹되어 치고 받고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세상. 그렇다, 이 세상에 필요한 건 분명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하라고 외친다면 누가 귀를 기울여 주겠는가.


누구나 홀릴 수 있는, 잠시나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전투를 잊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에 사랑을 담아낼 수 있기를. 때로는 순대국밥 같은 음식에, 또 때로는 근사한 저녁 식사에, 또 가끔은 연로한 부모님께서 힘들여 차려주신 집밥 같은 음식에, 심각한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영양소를 꾹꾹 눌러담을 수 있다면, 그러면 좋겠다. 내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가 되기를, 앞으로 쓰는 이야기들에 그런 것들이 가득 가득 담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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