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없이 쓰는 글
이야기란 무엇인가?
정확히는 내가 써야하는 이야기는 과연 어떤 이야기인가?
일단, 허구여야한다. 설령 그 이야기 곳곳에 작가의 삶이 녹아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 경험의 인용이 아닌 투영이어야 한다. 혹은, 인용이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반드시 허구여야한다. 작가가 나서서 이것은 실화입니다, 라고 인정하는 순간 독자들의 몰입도나 집중력은 올라갈지 몰라도, 이야기의 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일기나 수필이 되어버릴 테니까. 이야기는 반드시 지어낸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재미있어야한다. 이야기의 근본은 재미다.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듣는 청자, 읽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없는 이야기는 존재할 수가 없다. 자기 만족으로 글을 쓰고 만들 수야 있지만, 그렇더라도 자기 자신이 독자가 되는 셈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함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히 재미가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익숙한 구도를 따라가든, 혹은 시작부터 클리셰를 깨고 뒤통수를 치든, 방법이나 그 가는 길이 어찌되었든 간에 재미가 있어야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야기의 존재 의미는 분명하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궁극적인 목표를 하나 더 설정해야 했다. 사랑. 이야기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을 느끼개 해야한다. 그것이 가족간의 사랑이든, 성적인 욕구를 포함한 사랑이든,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한 전 인류적 사랑이든 간에 말이다. 이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상통하는 점이다. 사랑이 점점 메말라가는 세상에서 사랑을 외치고자 글을 쓰는 것이니, 그 글을 통해 만들려는 이야기에도 당연히 사랑이 깃들어야 할 것이다.
참고할만한 작품은 차고 넘친다. 많이 느끼고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 많이 읽고 있는가? 하다못해 글이 아닌 작품이라도 많이 누리고 있는가? 아이가 주위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며 뒤집고 되집고 기다가 일어나 걷는 것처럼, 나도 그런 이야기와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느끼고 있는가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책은 예전만큼 읽지 못하고 있다. 글이 두 줄 이상으로 가면 난독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몸이 근질근질하고 손가락도 둔해진다. 얼른 눈을 돌려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고 영상을 켜보고 싶어진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은 없으면서도 누가 어디서 무슨 사고를 쳤는지, 누가 어떻게 욕을 먹고 있는지는 그렇게도 알아보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갈망은 늘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비단 책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영화와 드라마, 웹툰이나 게임을 통해 매번 새롭고 놀라운 발상의 이야기들을 접하고 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게임 쪽이 훨씬 더 그런 경향이 강하다. 오히려 요즘의 영화나 드라마는 새로운 이야기보다 다른 매체에서 히트한 각본을 가지고 평이한 작품을 만들기에 바쁜 것 같다. 하지만 일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항상 높은 곳을 목표로 해야 평이한 결과라도 나오는 법이다. 마치 활을 목표지점에 정확히 쏘기 위해서는 그보다 높은 곳을 조준해야하는 것처럼, 평이한 결과를 목표로 한다면 그 작품을 마치는 위치가 어디쯤이 될 지는 뻔한 법이다.
아, 굳이 다른 작품에 대한 비판을 지금 할 필요는 없다. 타산지석. 굳이 입 밖으로 그 문제를 내뱉지는 말고, 열심히 메모해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 진부한 캐릭터, 뻔한 연출,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재밌게 만들 방법은 충분히 많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설령 내가 오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짜낸 소재가 어딘가에서 들어봤던 소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이 다르게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유의미한 자학이 될 것이다. 요리가 그렇지 않은가? 재료가 같더라도 발상과 기술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음식이 되는 법이다. 그림도 그렇다. 같은 색연필로 학생과 대가의 차이는 명확하게 벌어지곤 한다. 음악은 어떠한가? 또, 운동은? 그렇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자. 남 탓은 조용히, 내 탓은 완성한 다음에. 내 탓은 하루에도 수백 번을 하는 법이니, 내 탓보다는 오히려 사랑하자. 그래, 이 작품에, 내 요리와 그림과 음악에 사랑을 쏟는 것처럼, 내 실력과 내 자신을 사랑하자.